절약을 위해 포기해야 할 1순위
애들이 커갈수록 돈이 많이 든다. 학원비와 의류비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식비의 대폭적인 증가!!!! 사춘기에 곧 접어드는 첫째는 밥양이 두 배는 는 것 같다. 채소파 둘째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급증한 나머지 신메뉴를 시켜놓고 한 입만 먹기도 한다. 첫째는 늘 배고파, 둘째는 (신메뉴) 먹고 싶다를 연발한다. 언제부턴가 첫째는 '화이트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킹스베리와 화이트딸기가 2년 전 동네마트에서 팔았다. 그때 두 팩을 사서 집에서 맛품평회를 했는데 그 맛이 생각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신품종을 좋아한다. 우리 집 과일값에 신품종은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품종에 대한 집착은 10여 년 전 나의 일과 관련 있다. 당시 6시 내 고향 메인작가를 했을 때였다. 무엇을 찍든 어디를 가든 농산품이 등장한다. 문제는 농작물엔 제철이라는 게 있다. 제철에 노지에서 보이는 건 다 비슷한 품종이다. 이는 바다도 마찬가지. 농업도 어업도 계절을 거스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후배작가들은 컨펌을 받기 위해 신품종을 들이밀었다. 신품종은 노지보단 비닐하우스가 많았다. 환경을 바꿔줘야 신품종이 생산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새로운 종자의 도입이다. 외국종자를 들여와 국내에서 키우는 것.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작업방식의 변화를 주면 새로운 품종이 태어난다.
사설이 길었다. 중요한 건 이런 신품종들이 네임을 달고 마트에 진열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 집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먼저 품종을 헤아보면, 딸기만 해도 국내종자라는 설향, 타이백, 금실 딸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포도도 이젠 그냥 포도가 없다. 캠밸, 델라웨어, 샤인머스캣, 블랙 사파이어나 크림슨(아예 수입종)까지. 멜론도 황구멜론, 노을멜론, 백자멜론 등 종이 다양하다. 사과는 엠비사과가 맛있고, 토마토는 스테비아 대추토마토가 달다(일부러 당도를 높였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기존에 알던 과일들이 새로운 네임을 걸고 맛의 변화를 줘 네임을 달고 마트에 등장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환호한다. 그중 화이트딸기는 비주얼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올 겨울엔 마트에서 보기 어려웠다. 가격대가 일반 딸기보다 2/3 가량 비싸다. 두 배까진 아니지만, 비싸다. 오히려 좋아를 속으로 연발하며 아이들에게 안 판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등장했다. 이번엔 만년설 딸기라는 타이틀로 등장한 것이다. 화이트딸기와 유사하게 겉면이 빨갛지 않다. 속은 빨갛지만, 겉은 흰색과 빨간색 사이 그 어딘가의 색깔. 가격은 500g에 11.800원. 옆에 진열된 같은 양의 팩딸기는 7.890원. 약 4천 원도 비쌌다. 장바구니를 들고 배회를 했다. 살까 말까 고민했다.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만년설딸기 진열대 앞에 섰다. 한 아주머니는 옆에 진열된 팩딸기를 두 개 구입했다. 가성비를 고려할 때 맞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고민을 하는가. 과일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과일이 건강의 척도가 되는 시절도 아니다. 팩딸기를 사는 게 더 이득이다. 옆에 아줌마는 두 팩을 구입했다. 옳은 선택이다. 가성비를 고려해 절약이 내 소비의 모토가 아니던가. 만년설 딸기를 포기하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결국 마트를 한 바퀴를 돌고 돌고 다시 나는 만년설딸기 앞에 섰다. 딸기 두 팩을 사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가정 경제를 고려해 절약해야 한다. 쓸데없는 소비를 줄여야 한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문제는 호기심이었다. 만년설딸기라는 신품종 앞에서 과연 어떤 맛일까? 속살은 어떤 색깔일까? 기존 딸기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호기심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잘라낸 싹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나오듯 궁금해졌다. 아이들도 궁금해할 것이다. 당장 먹겠다고 소리 지르겠지. 언젠가 남편에게 아이들이 신품종에 너무 예민하다, 새로운 과일을 너무 좋아한다,라고 푸념했더니 그게 다 엄마의 영향 때문이란 걸. 생각 보니 우리 집 식탁의 대화 중 하나가 식재료나 음식에 관한 것이다. 첫째에게도 '오므라이스 잼잼'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기도 했다. 음식의 역사와 인류사는 정비례하듯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아이스크림의 콘과자는 와플에서 유래했다는 것과 오레오문양의 변천사, 중국에선 생닭을 팔 때 머리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판다는 것 등. 이런 음식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엄마로 인한 영향 때문일까.
결론적으로 나는 만년설딸기를 구입했다. 전화를 통해 이 소식을 첫째에게 알려줬더니 빨리 집에 오라고 성화였다. 둘째는 보자마다 분홍색인데라며 화이트딸기와는 다른 품종임으로 인식한듯하다. 겉을 자세히 보면 분홍색과 주황색 사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장희딸기 품종의 변이라고 한다. 절약을 앞세웠지만 결국 호기심 앞에 무너졌다. 저녁 식탁에 오른 만년설딸기는 아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첫째는 기존 딸기와 맛에 차이를 찾아내기 위해 곱씹고 있었다.
"새콤한 맛이 더 강하네"
새콤하다는 건 아직 더 숙성시키라는 의미기도 했다. 하나 먹어보니 식감은 조금 달랐다. 겉은 좀 더 말랑했고, 과육은 좀 더 단단했다. 호기심을 충족시킨 두 아이. 첫째는 접시를 비웠고 둘째는 남겼다. 더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두 아이의 입맛을 저격한 건 아닌 모양이다. 며칠 후, 타이벡딸기를 사 왔다. 둘째는 접시를 비웠다. 첫째는 남겼다. 알고 보니 우리 집 과일값의 비밀은 두 놈들의 입맛 차이였다. 둘의 입맛을 동시에 공략하기란 만만치 않다. 둘의 입맛을 모두 고려하려니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둘다 잘 먹기만 하면 지갑에서 슝숭 돈이 나가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됐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