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덕후 아이에게 낚인 가족 여행의 최후
첫째 생일 겸 여행으로 부산에 갔다.
물론 여행의 절반은 탐조에 할애하기로 하고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의 대부분은 탐조였다.
지난 여름. 남도 여행의 기억이 스멀스멀...
내 평생 솔개를 찾기위해
이토록 애절하게 하늘을 쳐다보다니...
옛날사람인 내게 솔개란...
"우리는 말안하고 살 수는 없나.
날으는 저 솔개처럼..."
80년대 가요(이태원의 솔개) 속에서 익숙했던
그 새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눈엔 온통 '솔개' 뿐이었다.
큰부까가 날아가도, 괭갈이 날아가도
" 혹시 솔개? "
아이는 솔개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문제는 솔개가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에
떡하니 나타나주지 않는다는 것.
다행히도 그나마 다행히도
둔치도에 도착했을 때
초반에 솔개를 만났다.
솔개여~~
조복이여~~
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이후 둔치도를 빙빙 돌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물꿩이나 바늘꼬리도요.. 비롱이까지...
한 마리도 없었다.
둔치도를 떠나기전 검은이마직박구리를
만나는 것말고
새는 없었고, 아이는 절망했다.
이후로 내내 절망이었다.
솔개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맥도는 공사 중이라 새가 아예 없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국회도서관 쪽 공사장.
둘째는 탐조에 지쳐 차에서 잠이 들었다.
남편과 첫째가 도서관 뒤쪽으로 향했다.
기도라도 해야하나
부산에서 조복은 이제 끝난건가...
절망하던 찰나...
전화가 왔다.
솔개 3마리가 나타나 비행 중이라는 것.
솔개여~~
하늘이시여~
우리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렇게 차로 돌아온 첫째의 입이 신나있었다.
그런데 그때~~~
도서관 건물 모서리에 한 마리의 새~~
맹금의 기품을 담은 그 솔개가~~~
가깝게 날아다녔다.
다시 셔터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부산에서는 흔새라는 솔개를 종추했다.
이후 명지갯벌에 가니 큰고니들이 떼로 몰려있었다.
노부저도 이미 도착했고, 물닭들도 바글바글했다.
물수리를 못나서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탐조.
망탐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다음날, 오전 해변 열차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은 많고 열차소리는 시끄러웠다.
첫째는 걷지 못할 정도로
극도로 피로감을 호소했다.
부모입장에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첫째의 몸상태가 심리상태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다.
열차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다시 미포로 향했다.
남포동이니 영도다리니 서면이니 뭐니
다 패스했다.
결국 우리는 다시 명지갯벌로 향했다.
망탐이었다.
국회도서관으로 갔다.
망탐이었다.
기차 시간 이슈로
부산에서의 일정을 정리했다.
오는 길에 감천문화마을을 지났다.
남편이 그냥 가기 아쉬우니
드라이브라도 하자고 해서 갔다.
여행에서 관광지를 가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광지를 가지 않고
그 지역을 즐기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관광지를 가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
복잡한 해변열차를 다시 타고 싶은건 아니지만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다.
관광지란 그런 의미이다.
그냥 가끔 남들 다 가는 곳도 한 번쯤 가는 것.
그래서 내가 지금 여행자임을 증명하는 것.
이렇게만 보면 첫째로 속끓인 것 같지만
사실 둘째도 만만치 않게
엄마에게 고뇌를 안겨줬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부산에 왔으니 돼지국밥을 먹자고 했다.
식당을 찾다가
밀명과 돼지국밥 둘다하는 곳으로 갔는데
(둘째가 둘다 먹고 싶다고 했다.)
가기 전부터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이지라며 노래를 부르던 둘째가
밀면은 하절기메뉴라 안된다고 하니
그때부터 돌변했다.
(나중에 얘기하길 매울 것 같다고.)
밀면이 아니면 곡기를 끊을 기세로
아이는 돼지국밥을 거부했다.
하지만 우리가 간 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 식당가. 죄다 돼지국밥이다.
아니 부산사람들은 돼지국밥만 먹나할 정도로.
밀면은 없다. 오로지 간판에는 돼지가 웃고 있다.
남편과 첫째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나는 원래 돼지국밥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둘째가 곡기(?)를 끊었는데
목에 밥알이 걸릴 것 같아 같이 먹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아이와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줄 알았다는 것.
(이런 생각이 나는 놀라울 뿐)
남편이 김해공항 근방에 밀면집을 찾았다.
둘은 카페에 가고
나와 둘째만 밀면을 먹었다.
호텔조리장 경력과
대한항공 기내식 경력 19년차
조리장이 만든 밀면이라고 했다.
유명인들의 싸인도 벽면에 걸려있었다.
놀랍게도 그곳은 밀면 맛집이 아니었다.
편육이 아닌 수육이 올려진 밀면.
수육이 너무 맛있어 깜짝 놀랐다.
맛보기수육은 이미 품절.
수육 맛집에서 밀면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한
둘째가 밝아졌다.
(이후 식당만 가면 밀면만 먹은...)
생각해보니 나물 좋아하는 채식주의자 아이에게
돼지국밥은 극한의 메뉴가 아니었을까.
(엄마가 만든 시금치나물이 별루라는 아이.
할머니한테 만드는 법을 배워오라던...나물덕후)
여튼 그렇게 우리는 기차에 올라탔다.
여행은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기차에 탔으니
더이상 어떤 에피소드가 나오겠는가.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다!!!!
역에 도착하니
남편이 내게 차키를 찾는 것이다.
오마이갓!!!
나는 여행 중 내내 운전석 옆에 놓인
그 차키가 눈에 거슬렸다.
렌터카에 두고 내린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당장 렌터카를 알아보라고 했고,
남편은 짐을 찾다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 ktx 쪽과 렌터카 쪽에 연락했다.
아이들과 나만 먼저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밤이라
연락은 원활하지 않았지만
결국 렌터카 회사와 연락이 닿아
내일 아침 9시, 직원이 출근하면
차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ktx택배로 차키님이 도착하셨다.)
그렇게 부산여행은 끝!!
내가 원하던 대로 여행지를 찾아다니지
못해 아쉬운게 아니다.
그냥, 모르겠다.
내가 알던 부산이 아니다.
초고층 건물만 가득한 부산,
산등성이까지 점령한 고층 아파트들...
내가 부산에서 본 건 아파트 뿐이었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해운대에 오니 초고층 빌딩, 빌딩...
뭐랄까.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부산의 감성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기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미련한 것 같다.
세월이 흘렀고,
나도 변했고,
이미 과거의 나는 없고,
그때 만났던 사람들도 곁에 없고,
그냥 나는 지금의 나일 뿐
내 역사는 이미 기화된 채
나 역시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초고층 빌딩 속에 있는 나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부산은 더이상 과거의 내가 없는 곳,
내가 알던 곳이 아니다.
도시도 바뀐다.
그 방향은 그 지역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뿐이니...
나는 잠시잠깐 스쳐가는 여행자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