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맑아진 아침, 스터디카페에서 듣는 브람스

Piano Concerto No. 2, Op. 83, 3. Andante

by 메이슨

흐린 날이 지나고 다시 햇빛이 든 아침, 스터디카페의 사람들을 보며 오래 버티는 삶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내림 나장조 Op.83」 3악장 안단테(Andante)를 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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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햇빛을 보니 반갑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하늘이 흐려서인지 마음도 괜히 무거웠습니다. 오늘은 맑은 봄날이 될 것 같습니다. 상쾌한 공기도 좋습니다.


요즘 스터디카페에는 학생들이 가득합니다. 휴게실에서는 두세 명씩 모여 잡담을 하기도 하고, 책을 함께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이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이 시기에는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퇴근 뒤 저녁에 스터디카페에서 독서라도 하려면 자리 차지하기 경쟁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험 기간이 아닌 날에는 아침 시간에 어른 한두 명 정도가 100여 석의 공간에서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점심 무렵이 되면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웁니다. 오후가 되면 하교한 학생들이 들어오고, 저녁에는 이곳의 70% 정도가 찹니다. 제가 다니는 스터디카페는 인기가 있는 편입니다. 깨끗하기 때문이고, 바로 아파트 앞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곳에 오는 직장인들은 대개 어학 공부를 합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세무사를 준비하는 것 같고, 어떤 이는 건축사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혼자 소설책과 수필책을 펼쳐 놓고 독서를 합니다. 그러다 글을 쓰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다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죠.


이번 주 시험 기간만 지나면 이곳은 다시 평온을 찾을 것입니다. 사장님은 시험기간에는 매일 무료로 내놓는 빵, 사탕, 커피, 음료가 반나절이면 동이 나서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합니다. 또 그래도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도 많이 찾고, 책을 보는 주부들도 많이 찾는고 합니다.


부동산 중개업과 함께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힘들다"고 "그만 하고 싶다"며 투덜거리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겁니다”라고 답하곤, 요즘 직장인들은 언제든 강제적 퇴직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살얼음판 위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그의 일과 삶을 응원을 해주었어요.


하루는 사장님과 담배를 피면서 얘기하다가 운영비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임대보증금과 시설비만 해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편의시설과 다과, 음료를 조금 넉넉하게 해놓으면 수입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한테는 딱인데, 집이라도 팔아서 해볼까.’


오늘은 자신의 일을 오래동안 지키며 버틴 사람들에 좋은 브람스 곡을 선곡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내림 나장조 Op.83」 3악장 안단테(Andante)입니다. 이 곡은 화려하게 성공을 선언하는 음악이라기보다, 오래 버틴 사람이 자기 안의 고요를 회복하는 음악에 가깝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하는 직장인들,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공간을 관리하는 사장님, 그리고 책 한 권을 펴놓고 자신의 다음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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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가 이 협주곡을 쓴 시기는 1878년부터 1881년 사이였습니다. 1859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초연 당시 혹평에 가까운 반응을 겪은 뒤, 그가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하기까지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1881년 11월 9일 부다페스트에서 브람스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맡아 초연한 이 작품은, 보통의 협주곡처럼 3악장이 아니라 4악장으로 구성된, 거의 교향곡에 가까운 규모를 자랑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브람스가 이 거대한 작품을 두고 클라라 슈만에게 “아주 작은 피아노 협주곡을 썼고, 작고 예쁜 스케르초도 들어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당시 기준으로도 압도적인 규모였으니, 이는 브람스 특유의 수줍은 자기 낮춤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LA Phil)의 작품 해설 역시 이 일화를 소개하며, 그가 묘사한 것은 결코 작은 작품이 아니라 “거대한 마스터피스”였다고 강조합니다.


이 곡에서 피아노는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하이페리언 레코즈(Hyperion Records)의 해설처럼 이 곡은 마치 “확대된 실내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특히 3악장은 누가 먼저 말하고, 누가 기다려주며, 누가 다시 받아주는지에 그 아름다움의 핵심이 있습니다.


https://youtu.be/yTd4FioK_RM?si=pfMcaRuqdsjmF2JV

3악장 안단테는 거대한 협주곡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숨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먼저 노래하는 악기는 피아노가 아니라 첼로입니다.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서 독주 피아노 대신 오케스트라의 첼로가 긴 노래를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구성입니다.


첼로의 첫 선율은 낮고 따뜻합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첼로의 음색은 천천히, 길게, 숨을 아끼며 노래합니다. 그 선율을 듣고 있으면 한 사람이 오래 참아온 말을 드디어 꺼내는 듯합니다. 감정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결코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깊은 잔상이 남습니다.


첼로가 긴 이야기를 마치면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들어옵니다. 주인공 자리를 빼앗듯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첼로가 남긴 말을 정성껏 받아 적듯이 낮고 부드러운 음으로 응답합니다. 그래서 이 악장은 경쟁의 음악이 아니라 '경청의 음악'입니다.


중간부에서 잠시 내면의 불안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브람스는 그 흔들림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해설처럼, 이 곡은 교향곡적 구조와 협주곡적 기교가 완벽하게 결합하여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알고도 차분해진 평온, 그것이 3악장이 도달하는 종착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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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주는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 Zimerman), 볼프강 헤르처(Wolfgang Herzer),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이끄는 빈 필하모닉의 협연입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 따르면 이 영상은 1984년 10월 22일, 빈 무지크페라인 대홀에서 열린 전설적인 라이브 기록입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완벽주의적인 타건으로 유명합니다. 이 연주에서 그는 피아노를 과시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깊게 호흡하며, 첼로의 말 뒤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깊은 응답을 건넵니다.

볼프강 헤르처: 빈 필하모닉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그의 연주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선율을 밀고 나갑니다. 그 담백함이 오히려 브람스다운 성숙함을 더해줍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20세기 음악의 아이콘인 그는 이 연주에서 브람스를 지나치게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습니다. 느린 부분에서는 충분히 머물되, 음악 전체의 호흡이 정체되지 않도록 큰 흐름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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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들으며 다시 생각합니다. 삶에는 때때로 1악장처럼 문을 열고 나가야 할 때가 있고, 2악장처럼 부딪히며 견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3악장 같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첼로처럼 낮은 목소리 하나가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시간 말입니다.


여기 스터디카페의 학생들은 이번 주 시험이 끝나면 조금은 홀가분해질 것입니다. 사장님은 다시 빵과 커피를 채워놓을 것이고, 나는 아마 또 한쪽 자리에서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끄적이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브람스의 안단테를 듣고 있으니 흔들려도 괜찮다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햇빛이 반가웠던 것처럼, 무거웠던 마음도 어느 순간 조금씩 가벼워 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낮은 첼로의 목소리와 조용한 피아노의 응답. 그 조용함이 오늘 아침에는 마음을 평안하게 해줍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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