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in: Nocturne No.21 in C-Minor
천상병 시인의 맑은 시 「아침」과 쇼팽의 유작 「녹턴 21번 C단조」가 만납니다. 모진 고초와 결핍 속에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했던 시인의 '기묘한 맑음'과 어둠을 지나 아침을 향하는 쇼팽의 '절제된 슬픔'이 전하는 숭고한 위로를 느낍니다.
수락산을 사랑하고 맑은 영혼으로 살다 간 천상병 시인. 한 잔의 커피와 한 갑의 담배, 한 사발의 막걸리, 그리고 버스값만 있으면 하루가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나의 가난은」이라는 시에서 그는 물질적인 결핍에 굴복하기보다, 그 속에 깃든 영혼의 자유를 보란 듯이 노래했습니다. 비록 세상의 잣대로는 가난해 보였을지 모르나, 그는 그 결핍조차 자신의 운명처럼 묵묵히 껴안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33년전 그가 인생 소풍을 잘 즐기고 떠난 날입니다. 우리는 「귀천」이라는 그의 시를 널리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포털에서 검색하면, 많은 지식인이 칼럼에 이 시를 인용하며 인생을 말하고, 죽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천상병 시인을 오래 생각하다 보면, 「귀천」의 맑은 문장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한 사람의 치열하고도 고결한 삶이 보입니다. 그는 맑았지만 가볍지 않았고, 결핍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았으며, 상처가 깊었지만 끝내 세상을 저주하는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매일 2,000원씩 용돈을 타서 썼던 시인 천상병. 그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심성이 드러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매일 아내에게 받은 2,000원의 용돈으로 그는 가게에서 맥주 한 병,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고, 버스 토큰 서너 개와 담배를 샀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어떤 때는 돈이 남아 저축도 해 통장에 100만 원 가까이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돈으로 같이 사는 장모의 장례비 30만 원을 떼어낼 생각을 했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문학청년의 결혼 비용으로 50만 원을 쓸 계획을 세웠으며, 나머지는 처조카딸 결혼 비용으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33년전 오늘 장모의 장례비를 늘 걱정하던 그는 미리 비용을 다 준비해 놓고는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자 장모는 들어온 조의금을 잘 보관한다며 그가 자던 방의 빈 아궁이에 돈뭉치를 신문지에 싸서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천상병의 아내는 날씨가 쌀쌀하고 비도 내려 남편이 추울 것으로 생각해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조의금으로 들어온 수백만 원이 새카맣게 타버렸습니다. 다행히 그 재를 은행에 가져가니 얼마간 보전받을 수 있었고, 결국 그 돈은 장모의 장례비가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의 삶에는 늘 이런 '기묘한 맑음'과 슬픔이 함께 있었습니다. 세상의 계산으로 보면 어처구니없고 허술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 장례 뒤에 남은 돈마저 결국 장모의 장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천상병이라는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고결했는지를 증명합니다.
부산이 고향이었던 그는 서울대 상대에 입학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막걸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단순히 낭만적인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 동백림 사건에 엉뚱하게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고, 중앙정보부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후유증은 그의 몸과 삶에 오래 남았습니다.
치아가 상했고, 말이 어눌해졌고, 정신적 고통도 깊어졌습니다. 그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귀천」의 맑음은 결코 쉬운 맑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순진한 낙관이 아니라,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잔혹한 시간을 지나고도 끝내 자기 안의 깨끗한 자리를 버리지 않은 사람의 맑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그의 시 「아침」이 생각났습니다.
아침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이 짧은 시는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거창한 철학도 없고, 깊은 수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더 오래 남습니다. 아침이 기분 좋다는 말, 오늘이 시작된다는 말, 출발은 이제부터라는 말. 이 문장들은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쉽게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겪은 사람이, 그래도 오늘 하루를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 조용히 자신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립니다.
https://youtu.be/boLupHM2K8U?si=M3gcMH75-OoBNorq
오늘 아침, 이 시를 읽으며 쇼팽(Frédéric Chopin)의 「녹턴 21번 C단조(Nocturne No.21 in C Minor, Op. posth.)」를 감상했습니다. 이 곡의 제목에 붙은 'Op. posth.'는 'Posthumous'의 약자로, 음악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발견되어 출판된 '유작'임을 의미합니다. 쇼팽이 살아생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이 사적인 고백은, 천상병 시인이 남긴 소박한 유품들과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쇼팽의 녹턴은 대체로 밤의 음악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이상하게도 밤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C단조의 어두운 빛으로 시작하지만, 그 어둠은 절망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마음을 더듬고, 조심스럽게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며, 끝내 아침 쪽으로 몸을 돌리는 음악처럼 들립니다. 천상병 시인의 그 '기묘한 맑음'과 쇼팽의 유작 녹턴이 지닌 '절제된 슬픔'은 이 지점에서 완벽하게 교차합니다.
쇼팽의 유명한 녹턴들이 지닌 화려한 장식이나 극적인 정서와 비교하면, 이 곡은 훨씬 소박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소박함 때문에 천상병의 아침과 더 가까이 닿습니다. 큰 무대 위의 비극이 아니라, 작은 방 안에서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의 음악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첫 음이 울리면 곡은 곧장 마음의 낮은 자리로 내려앉습니다. 오른손의 선율은 길게 노래하지만 과장하지 않습니다. 울음에 가까운 선율이지만, 울음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왼손은 조용히 박자를 받치며 음악을 앞으로 밀어냅니다. 그것은 커다란 운명의 발걸음이라기보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책상 앞에 앉는 사람의 작은 움직임처럼 들립니다. 시인이 “나는 책을 더듬는다”*고 썼던 바로 그 손끝의 움직임이 이 음악 안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쇼팽의 피아노는 여기서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도 들립니다. 오른손은 사람의 노래가 되고, 왼손은 그 노래가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는 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곡은 슬프지만 무너지지 않고, 어둡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중간으로 갈수록 선율은 조금 더 흔들리며 마음속 슬픔이 고개를 들지만, 쇼팽은 끝내 감정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이 깊을수록 더 낮게 말하는 이 '절제'가 곡을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 천상병 선생님의 시가 그렇듯, 이 음악도 슬프다고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삶을 생각하면 이 곡의 C단조는 단순한 어둠이 아닙니다. 그것은 억울함의 색이고, 가난의 색이고, 몸에 남은 상처의 색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둠 속에는 이상한 맑음이 있습니다. 쇼팽의 선율이 다시 돌아올 때, 처음과 같은 멜로디임에도 마음은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한 번 어둠을 지나온 뒤의 선율은 더 조용하고, 더 멀리서 들립니다. 마치 세상의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이 다시 아침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들립니다.
이 곡을 얀 리치에츠키(Jan Lisiecki)의 연주로 들으면 그 절제된 아름다움이 더 잘 살아납니다. 리치에츠키의 쇼팽은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선율을 지나치게 늘어뜨리지 않고, 음 하나하나를 맑고 단정하게 놓습니다. 그래서 이 곡이 가진 담백한 슬픔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너무 비극적으로 연주하면 이 곡은 쉽게 눈물의 음악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상병 선생님의 삶을 떠올리며 듣는다면, 이 곡은 울음보다 맑음에 가까워야 합니다. 많이 아팠지만 끝내 맑았던 사람. 가난했지만 끝내 남에게 줄 것을 생각했던 사람. 그런 사람의 아침을 생각한다면, 이 곡은 절제되어야 더 깊게 들립니다.
물론 이 곡은 다른 연주자들의 손에서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의 연주에서는 더 깊은 회상처럼 들리고,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연주에서는 쇼팽 특유의 노래하는 선율이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선생님의 아침을 생각하며 듣는다면, 지나친 비장함보다 담담한 연주가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이 곡은 죽음을 말하는 음악이라기보다, 죽음을 알고도 오늘의 시작을 말하는 음악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천상병 선생님은 부모님의 산소에 가고 싶고, 부산에 있는 형제들도 보고 싶었지만, 그곳에 갈 여비조차 넉넉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릉조(少陵調)」 같은 시에서 죽어서 저승에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자신은 영영 죽을 수 없을 것이라는 슬픈 농담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은 웃기지만, 웃고 나면 더 슬퍼집니다.
가난은 그렇게 사람을 작게 만들고, 그리움마저 미루게 합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 가난을 원망의 언어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사람을 보고, 술 한 잔을 보고, 하늘을 보고, 아침을 보았습니다.
쇼팽의 「녹턴 21번 C단조」도 그런 음악입니다. 화려한 승리의 음악은 아니지만, 조용히 숨을 고르고 다시 한 음을 짚으며 다음 마디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시인의 “출발은 이제부터다”라는 문장과 닿아 있습니다.
아침은 언제나 새롭지만 누구에게나 가볍게 오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침은 어제의 상처를 다시 안고 일어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아침을 두고 “매우 기분 좋다”고 썼습니다. 삶이 결코 쉽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말했기에 그 문장은 더욱 위대합니다.
오늘 아침 쇼팽의 녹턴을 듣는 시간은, 천상병이라는 한 사람의 고결한 영혼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누군가의 장례비와 결혼 비용을 생각했던 사람. 세상을 거창하게 이기지 않았지만, 끝내 자기 안의 맑음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지나간 사람.
쇼팽의 녹턴 유작은 그런 사람을 떠올리기에 가장 알맞은 음악입니다. 밤의 음악이지만 끝내 아침을 향하고, 슬픈 선율이지만 그 안에는 기묘한 맑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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