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진중하라(靜重如山) - 충무공 탄신 481주년

흔들리는 세계 정세 속, 다시 새기는 충무공의 지혜

by 메이슨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81주년, ‘물령망동 정중여산’이라는 장군의 말이 떠오른다. 최근 중동 전쟁으로 세계 정세가 흔들리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장군의 말처럼 정부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665248cb-c869-4db6-baa4-4b2c774e9d5c.png

2026년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세상에 오신 지 48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흔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때 전쟁의 영웅, 불패의 장수, 나라를 구한 전설적인 지휘관이라는 수식어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는 것은 승리의 화려한 함성보다, 출전을 앞둔 한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내린 낮고 단단한 명령 한 마디다.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고요하고 무겁기를 산처럼 하라.”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조선의 남쪽 바다는 이미 급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산진과 동래가 무너졌고, 일본군의 북상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경상우수영이 무너졌다는 비보가 전해지던 그때,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와의 합류를 기다리려 했으나 상황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5월 4일 새벽, 전라좌수군만으로 첫 출전에 나섰다. 판옥선 24척을 포함해 모두 85척의 배가 어스름한 바다를 갈랐다.


그 첫 출항은 단순한 전진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 수군에게 일본군은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두려운 상대였고, 경상도 바닷길 또한 익숙하지 않은 낯선 길이었다. 적이 어디서 얼마나 강하게 달려들지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병사들의 긴장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두려움은 본능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휩쓸려 먼저 흔들리는 순간, 진영은 무너지고 승리는 멀어진다.


그때 장군이 병사들에게 당부한 이 문장은 단지 겁먹지 말라는 격려가 아니었다. 싸움에 앞서 감정을 다스리고, 눈앞의 소란에 휩쓸리지 않으며, 철저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라는 지휘관의 철학이었다. 진정한 용맹은 성급함이 아니며, 진정한 결단은 흥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장군은 깊이 통찰하고 있었다.

d95774ea-6f66-4353-80f5-09c80cd3aede.png

오늘, 우리 사회가 이 말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계는 다시금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레바논 공습,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국제 질서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유조선 보호 등을 이유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군함 파견을 요구하고 있으며, 연장된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한 나라의 판단은 산처럼 무거워야 한다. 동맹과의 신뢰도 중요하고 국제적인 책임도 외면할 수 없지만, 그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과 우리 국민의 생명, 그리고 우리 젊은 장병들의 안전이다. 남의 전쟁에 떠밀리듯 나서는 것은 결단이 아니다. 주변의 큰 목소리에 휘둘려 서둘러 선택하는 것 또한 용기가 아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명분과 실리,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안위 사이의 냉정한 균형이다.


장군의 가르침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보고, 충분히 살핀 뒤에 움직일 때는 누구보다 책임 있게 움직이라는 뜻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그는 결코 무모하지 않았다. 적을 얕보지 않았고 부하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기에, 먼저 정보를 모으고 바다의 흐름을 읽으며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의 전승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철저한 정보와 절제, 그리고 책임감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였다.

20221119_164611.jpg

며칠 전 휴대전화 사진첩을 넘기다 오래전 아산의 이순신 장군 묘역을 다녀온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 묘역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단정했다. 나무와 연못, 능선이 차분하게 어우러진 그곳에는 요란한 장식 대신 깊은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장군의 묘가 현충사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묘역은 현충사에서 약 9km 떨어진 음봉면 어라산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현충사와 달리 이곳은 늘 한적하다. 처음에는 그 고요함이 산책하기에 좋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 잠든 자리가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역사연구가 황현필 씨 역시 그의 저서 『이순신의 바다』에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사람이 북적이는데, 정작 우리 장군의 묘소는 늘 혼자였다며 서글픈 소회를 적기도 했다. 조용해서 좋지만 동시에 조용해서 서글픈 그곳. 어쩌면 그 적막함은 우리가 장군을 기억하는 방식이 너무나 단편적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559f7ab2-5e2e-4248-8526-2d0589bd4dd5.jpg

우리가 장군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영웅을 추앙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혼란 속에서 우리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일이다. 강대국의 요구와 국제 정치의 압박이 거칠게 밀려올 때, 우리는 숨을 고르고 본질을 물어야 한다. 이 결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인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얼마나 진중한지를 말이다.


장군의 묘역은 작고 소박했지만, 그곳에 서면 마음이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말이 없는 나무와 단정한 묘역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두려움에 휩쓸리지 말라고,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는 절대 물러서지 말라고 말이다.


충무공 탄신 481주년을 맞는 오늘, 다시금 그 문장을 새겨본다. 전쟁의 시대에도, 외교의 현장에서도, 한 개인의 삶 앞에서도 이 말은 결코 낡지 않았다. 서둘러 휩쓸리지 않고 국민의 안전과 나라의 이익을 가장 앞에 두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가장 올바르게 기억하는 방식일 것이다.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산처럼 진중하게, 우리는 지금 이 파고를 넘어야 한다.(마침)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은 계속되더라"는 말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