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음악] Chopin - Nocturne op. 9 no. 1
오늘 아침 공기가 제법 날카롭습니다. 달력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영하권에 머무는 기온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습니다. 마음은 이미 봄을 마중 나갔는데 몸에 닿는 기온은 차가우니, 이 온도 차가 유독 더 시리게 다가옵니다.
요즘 SNS를 보면 작고 단단한 봄동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띕니다. 사실 10여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KBS '1박 2일')에서 소개되었던 봄동 비빔밥의 소박한 풍경이 최근 알고리즘을 타고 다시금 주목받는 모양입니다.
언론 보도 역시 활발합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봄동 비빔밥'이 유행한다는 소식부터, 삼성웰스토리 등 대형 급식업체들이 전국 구내식당에 봄동 메뉴를 선보였다는 뉴스까지 이어집니다. 수요가 많아진 만큼 청과물 시장에는 생기가 돌고 가격도 오름세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유행의 화려함보다 제 눈길을 끄는 것은 봄동이 지닌 '강인함'입니다. 월동 배추인 봄동은 추운 겨울의 바람을 이겨내려고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자랍니다. 잎을 오목하게 모으지 못하고 발라당 뒤로 자빠진 채 자라는 그 모습은, 사실 살을 에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낮춘 생존의 방식입니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세포벽을 두껍게 만들고 당분을 합성해 세포에 저장한 덕분에, 봄동은 일반 배추보다 훨씬 아삭하고 답니다.
고려 시대 기록에도 등장할 만큼 유래가 깊은 이 채소는, 잎이 납작해 소똥을 닮았다 하여 ‘봄똥’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된장국이나 겉절이, 전, 그리고 비빔밥까지 우리 식탁의 요긴한 식재료가 되었죠. 소설가 김은호 작가는 난전의 할머니에게서 이 봄동과 같은 강인한 삶의 향기를 맡는다고 했습니다. 차가운 땅바닥에 붙어 자란 그 파란 이파리가 우리의 깔깔한 혀를 다독여주는 건, 그 속에 겨울을 이겨낸 힘찬 생명력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SNS 알고리즘을 통해 번지는 유행이 조금 우려되기도 합니다. 두 달 전 ‘두바이 초콜릿’ 사례처럼, 본질보다는 일시적인 소비로 소모될까 봐요. 하지만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님의 말대로 봄동 검색량이 작년 대비 12배 이상 급증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척박한 계절 끝에서 '생명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투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냉이의 향긋함을 조금 더 좋아했습니다만, 이번 주 토요일엔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봄동 된장국과 비빔밥을 먹으러 가보려 합니다. 땅바닥에 몸을 바짝 붙여 겨울을 견뎌낸 그 단단한 마음을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서요.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를 채워줄 오늘 선곡한 음악은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의 야상곡(Nocturne) 작품번호 9의 1번, 내림나단조입니다.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Chopin)은 20세 초반이던 1830년에서 1832년 사이에 이 곡을 포함한 세 개의 야상곡(Op. 9)을 작곡했습니다. 당시 쇼팽은 고국 폴란드를 떠나 음악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 막 정착하던 시기였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 그리고 청년 작곡가로서의 예술적 열정이 고스란히 이 곡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야상곡'이라는 장르는 원래 아일랜드의 작곡가 존 필드(John Field)가 창시한 것이지만, 이를 예술적으로 완성한 인물은 단연 쇼팽입니다. 쇼팽은 이 작품을 당시 파리 사교계의 유명 인사였던 카미유 플레옐(Camille Pleyel) 부인에게 헌정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기에 쇼팽의 야상곡이 발표되었을 때,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존 필드의 스타일을 너무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쇼팽은 특유의 섬세한 장식음과 자유로운 리듬을 더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확립했습니다. 특히 이 1번 곡은 그의 야상곡 중에서도 가장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로 유명합니다.
https://youtu.be/WnFs85pLmj4?si=m4Z442hpjDxOB8AA
피아노의 거장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를 시작하면서 왼손의 끊임없는 분산화음(Arpeggio, 아르페지오)이 잔잔한 밤물결처럼 흐릅니다. 그 위로 오른손이 지극히 자유롭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11음, 20음, 22음으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음표들의 나열은 마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속삭임 같습니다.
중간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반전되며 대조적인 중간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내림나장조(D flat major)의 화음이 17마디 동안 이어지며,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마치 구름 사이로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밤의 풍경을 연상케 합니다.
결말 부분에는 다시 처음의 주제가 돌아오며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마지막은 우울한 단조가 아닌, 밝고 평온한 장조의 화음(Picardy third, 피카르디 3도)으로 마무리되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쇼팽의 선율을 듣는 아침, 창밖을 보다가 문득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쓴 시 ‘단계(Stufen)’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주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Und jedem Anfang wohnt ein Zauber inne, Der uns beschützt und der uns hilft, zu leben.)"
아직 영하의 기온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땅 밑에서는 이미 봄동의 세포벽처럼 단단한 생의 의지가 움트고 있습니다. 곧 따뜻한 봄이 오지 않을까 기대되는 순간이죠.
어쩌면 봄동은 헤르만 헤세가 말한 험난하고 고단한 환경을 딛고 자란, 그 자체로 신비한 힘이 깃든 채소라 생각됩니다. 쇼팽이 이 곡을 쓸 당시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갈고닦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겨울을 건너며 저마다의 '당분'을 비축해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의 추위는 단순히 낮은 기온이 아니라, 곧 다가올 따스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줄 마지막 여백일 뿐입니다.
루빈스타인이 건반 위를 유려하게 오가는 연주는 고요한 새벽 공기를 조용히 물들입니다. 척박한 땅을 이겨내고 돋아난 봄동처럼, 이 선율이 오늘 하루를 살아갈 작은 생기를 더해주었으면 합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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