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찬사보다 간절했던 아버지의 한마디

Mozart,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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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렸던 모차르트.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던 그는 잘츠부르크에 있는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매번 편지를 띄웠습니다. 새로 작곡한 곡들에 대해 상세히 알리고, 자신의 공연에 보낸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도 가감 없이 전했죠. 서른을 바라보는 거장이 되어서도 그는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는 아들의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늘나라로 떠나기 2년 전, 아들 모차르트가 있는 빈을 방문한 아버지 레오폴트는 마침내 아들의 성공을 눈앞에서 확인했습니다. 그가 빈에 와서 처음 본 연주는 아들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초연이었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 특유의 밝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내면의 고뇌와 아버지와의 불편했던 관계를 암시하듯 어둡고 묵직한 긴장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빈의 멜그루베 카지노(현 엠버서더 호텔)에서 열린 초연이 끝나자, 공연을 감상한 요제프 2세 황제는 "브라보 모차르트!"를 외쳤습니다. 그날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이 '세계 최고의 작곡가'로서 모든 청중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공연 당일은 최고의 작곡가 하이든의 프리메이슨 가입 환영식이 있던 날이라 모차르트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다음 날 하이든을 집으로 초대해 현악 4중주 파티를 열었지요. 아버지 앞에서 하이든은 제1바이올린을, 모차르트는 비올라를 맡아 새로 작곡한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후 하이든은 레오폴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 앞에서 정직한 인간으로서 말씀드리건대, 당신의 아들은 제가 만났거나 이름을 아는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모든 작곡기법에 능통할 뿐 아니라 아주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대 가장 존경받던 원로로부터 들은 이 극찬에 아버지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불편했던 관계가 한순간에 녹아버린 마법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어린 아들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한 레오폴트는 자신의 경력을 접고 아들을 데리고 전 유럽 왕실을 순방하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모차르트는 7살부터 10살까지 유럽 주요 도시의 최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당시의 음악 조류를 모두 익힐 수 있었습니다. 도시마다 다르게 발전한 음악의 장점을 두루 섭렵한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음악가'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탄생한 것이죠. 그래서 모차르트는 틈만 나면 "제일 먼저 하느님, 그다음은 아버지"라는 말로 존경을 표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잘츠부르크 궁정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타향에서 활동하는 아들을 못마땅해했습니다. 당시 잘츠부르크 통치자였던 콜로레도 대주교에 대한 분노로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사직서를 냈습니다. 당시 궁중 음악가의 계급은 하인이었기에 대주교는 모차르트의 거취 선택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그는 명령을 거부하고 빈에 머물렀습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동의 없는 결혼 강행은 두 사람 사이를 더욱 차갑게 얼어붙게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축복을 간청하며 '대미사 C단조'를 작곡해 잘츠부르크를 방문했고, 성 피터 성당에서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아내 콘스탄체가 소프라노로 참여한 연주였음에도, 아버지는 끝내 며느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팽팽했던 냉전이 풀린 대미는 아버지 레오폴트가 빈을 방문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1785년 3월 10일, 빈의 부르크테아터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가 초연되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곡의 2악장 안단테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예전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의 느린 악장에서 사용했던 '왼손 셋잇단음표 패시지'를 의도적으로 차용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오마주였던 셈입니다.


음악 속에 담긴 아들의 진심을 알아챈 아버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7년간의 갈등 끝에 드디어 아버지와 화해를 이룬 기쁨이 그 선율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달을 더 빈에 머물다 잘츠부르크로 돌아갔고, 그것이 생전 부자지간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아버지 레오폴트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그 2악장 안단테를 골랐습니다.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곡을 어떻게 오마주 했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신다면, 뜨거운 부자의 정을 한층 깊게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Mozart -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K. 467, 2nd Mov.

https://youtu.be/cFX8e1hwmwE?si=hxORGqnf5FFOdjbF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남긴 수많은 보석 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K. 467) 2악장은 유독 눈부신 광채를 내뿜는 작품입니다. 특히 2013년 선토리 홀에서 정명훈의 지휘와 조성진의 피아노가 만났던 그 전설적인 무대를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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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악장은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삽입되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곡이죠. 곡이 시작되면 현악기가 아주 낮고 부드럽게 셋잇단음표의 리듬을 깔아줍니다. 이는 마치 이른 아침, 호숫가에 얇게 내려앉은 안개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그 위로 조성진의 피아노가 첫 음을 내딛는 순간, 공기는 순식간에 투명해집니다.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깊은 슬픔과 평온함이 기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피아노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마치 소중한 보석을 하나씩 내려놓듯 조심스럽게 선율을 이어갑니다.


중반부에서 관악기들이 피아노의 선율을 감싸 안을 때면, 고독했던 마음이 따뜻한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조성진 특유의 정교한 터치와 정명훈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울림은 이 곡이 가진 '천상적인 평온함'을 극대화합니다. 마지막 음이 허공에 흩어질 때까지 숨을 죽이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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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의 대화: 피아노 협주곡 21번 전악장 소개

이 곡은 1785년 모차르트가 경제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가장 정점에 있었던 시기에 단 4주 만에 완성한 걸작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Allegro maestoso)

전개와 느낌: '마에스토소(위엄 있게)'라는 지시어처럼, 행진곡 풍의 당당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작합니다. 군대 행진곡처럼 힘차지만, 그 안에는 모차르트 특유의 우아함이 살아있습니다.

감상 포인트: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부분을 즐겨보세요. 피아노가 화려한 기교를 뽐내며 등장할 때,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긴밀한 '밀당'이 일품입니다. 특히 연주자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카덴차(독주 부분)'에서 전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악장: 안단테 (Andante)

전개와 느낌: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극적인 평온함과 서정성의 극치입니다. 1악장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가장 내밀한 고백을 건네는 듯한 악장입니다.

감상 포인트: 약음기를 낀 현악기의 부드러운 떨림과 그 사이를 유영하는 피아노의 옥타브 도약을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마치 중력이 사라진 공간에서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아사이 (Allegro vivace assai)

전개와 느낌: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어 생기 넘치는 축제로 변합니다. 아주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이어지며, 피아노는 마치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듯한 화려한 기교를 선보입니다.

감상 포인트: 모차르트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폭발하는 구간입니다. 피아노와 목관악기가 서로 대화를 나누듯 주고받는 짧은 악절들을 찾아보세요. 연주가 끝날 때쯤엔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속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가 연주한 전곡도 감상해 보세요

https://youtu.be/fNU-XAZjhzA?si=inoUSrswEl1uidwr




해묵은 미움조차 사실은 지독한 그리움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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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부자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청준 작가가 1977년 발표한 소설 <눈길>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도시에서 출세한 아들 '조식'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노모에게 마음을 닫고 살았지만, 아내의 간곡한 물음에 답하는 어머니의 옛이야기를 곁에서 듣게 됩니다.


어린 아들이 새벽 눈길을 걸어 서울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그를 마을 밖까지 배웅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낸 뒤, 자식이 밟고 간 발자국마다 눈물을 흘리며 그 길을 되밟아 돌아옵니다. 자식의 발자국이 눈에 덮여 지워질까 봐, 그 하나하나에 자신의 축복을 채워 넣으며 돌아온 것이죠. 그 새벽의 '눈길'은 어머니에게는 지독한 사랑의 길이었지만, 아들 조식에게는 평생을 갚지 못할 무거운 '빚'이자 외면하고 싶은 고통이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버지 레오폴트가 닦아놓은 천재의 길이 아들 모차르트에게는 빛나는 영광인 동시에, 평생을 짊어져야 할 거대한 심리적 부채이자 굴레였을 테니까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자를 가로막았던 해묵은 미움과 서운함도, 결국 맑게 개인 오늘 아침 하늘처럼 투명한 진심 앞에서 힘없이 녹아내렸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선율을 자신의 곡 속에 몰래 심어놓은 아들의 그 수줍고도 절박한 화해의 손짓. 그것은 세상 그 누구보다 단 한 사람, 아버지에게만큼은 "나를 봐달라"고 외치는 가장 뜨거운 고백이었을 테니까요.


오늘 아침,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따뜻한 봄날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한국이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섬세하고 맑은 타건으로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의 제2주제 안단테를 감상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가족 안의 해묵은 미움조차, 사실은 지독한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기도해 봅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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