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보다 양심이 오래 남는 세상"
1955년 4월 18일 세상을 떠난 아인슈타인을 다시 떠올리며, 위대한 과학자로서가 아닌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그가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양심과 윤리적 문화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떠올리면 대부분은 먼저 천재를 생각합니다. 우주의 질서를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 과학자, 누구나 이름을 아는 상징 같은 인물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 마음에 더 오래 남는 것은 그의 과학적 업적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거대한 지성을 가진 한 사람이 끝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가, 어떤 세계를 더 바람직한 세계로 생각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1955년 4월 18일,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이날이 오면, 저는 과학자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한 인간 아인슈타인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신(神)’이라는 말조차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표현이라고 보았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 역시 유대교를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맹목과 미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차갑게 들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게 이 태도는 종교를 가볍게 여긴다기보다, 인간이 만든 믿음과 제도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순간 얼마나 쉽게 맹목으로 기울 수 있는가를 경계한 태도로 읽힙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깊이 종교적인 비신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만든 교리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경외와 양심, 그리고 도덕적 책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민족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처를 바라면서도, 그 안식처가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고 적대하는 방식으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특별한 존재로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며 인종차별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우월감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태도는 지금 읽어도 묵직합니다. 오늘처럼 모두가 자기 편의 언어로만 세상을 말하고, 자기 편의 고통만 크게 말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의 시선은 한 민족이나 한 국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화주의에 깊이 공감했고, 힘으로 이긴 사람보다 비폭력으로 인간의 품격을 지키려 한 사람에게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말년에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세계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느 한 체제나 이념을 맹목적으로 믿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제도의 윤리성을 먼저 보려 했던 사람입니다. 국가와 권력이 윤리보다 앞설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가를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뉴욕 윤리 문화 협회(New York Society for Ethical Culture) 창립 75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말을 오래 붙들게 됩니다. 그는 ‘윤리적 문화’라는 개념에 자신이 끝내 지키고 싶었던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이렇게 썼습니다. “윤리적 문화가 없으면 인류의 구원도 없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가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과학의 발전도, 국가의 승리도, 종교의 권위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붙들어야 할 마지막 양심이었습니다. 힘보다 먼저 와야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지금의 세계를 본다면, 누구의 명분이 더 옳은가를 따지기 전에 인간이 또다시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깊이 마음 아파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아인슈타인은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가장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사람이, 정작 삶의 기쁨과 위안을 음악에서 얻었다는 사실은 오래 생각할수록 더 인상적입니다. 그는 “내가 물리학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음악 속에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열세 살 무렵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만나며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사랑은 의무감보다 더 나은 스승이다”라고도 말했는데, 그 문장은 음악 이야기이면서도 어쩐지 그의 삶 전체를 설명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실내악은 그의 삶에서 오랜 시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고, 그는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며 세상의 소란과 다른 질서를 음악 속에서 다시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인슈타인의 이런 인간적인 면도 참 좋습니다. 1951년 기자가 차에 탄 그를 촬영하려 하자, 그는 사진을 이렇게 찍으면 유명해질 것이라며 혀를 내민 채 사진을 찍었습니다. 훗날 그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얼굴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장난기 어린 일화로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장면에서도 큰 매력을 봅니다. 세계를 바꾼 지성이면서도 자신을 지나치게 엄숙한 상징으로 두지 않았던 사람, 세상의 시선을 한 번쯤 웃음으로 비껴갈 줄 알았던 사람, 그러면서도 끝내 양심과 음악,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사람. 그런 표정이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더 오래 우리 곁에 남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은 맑습니다. 하늘은 군더더기 없이 열려 있고, 봄은 주말의 얼굴을 가장 환하게 보여주려는 듯 천천히 빛을 넓혀갑니다. 이런 아침에 아인슈타인을 생각하다 보면, 세상을 가장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한 사람이 끝내 음악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새삼 깊게 다가옵니다. 설명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삶이 채워지지 않고, 계산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맑은 봄날의 아침, 오늘을 조금 더 밝고 단정하게 여는 조용한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사람들은 자주 서로를 겨눕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오래된 리듬 속에서 아인슈타인이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양심과 윤리적 문화를 함께 떠올립니다. 힘보다 양심이, 증오보다 공존이 더 오래 남는 세상.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던 세계도 결국 그런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늘 이 아침에도 한 곡의 음악처럼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마침)https://youtu.be/aME0qvhZ37o?si=0Q1Xx1grl1FVG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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