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Schubert- Trio No. 2, Op. 100, Andante

by 메이슨

견디는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길은, 교황님의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는 말을 따르는 우리의 태도일 것입니다. 슈베르트(Schubert) 「Trio No. 2, Op. 100, Andante con moto」에 담긴 고독과 인내의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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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날씨는 어제와 다르다. 어제의 더위가 한풀 꺾였다. 흐린 날씨 때문일까. 오늘은 어제보다 덜 덥고, 움직이기에도 한결 나은 아침이다. 이럴 때는 괜히 마음도 서두르지 않게 된다. 밝고 가벼운 음악보다, 천천히 걸어가며 마음을 붙드는 음악이 더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지난 2018년에 방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을 떠올랐다. 노비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군인 신분이 된 뒤, 다시 조선 땅을 밟는 유진 초이가 처음 등장하던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조선에 복수해야겠다며 다짐한 이병헌 배우의 눈빛이 먼저 닿고, 뒤에서 조용히 흐르던 음악이 있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피아노 삼중주(Piano Trio) 2번 2악장 「Andante con moto」이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화려한 슬픔보다, 드라마 속 유진초이처럼 오래 참고 견디며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이 곡이 나에게 들려주는 것은 한마디로 견디는 자의 슬픔이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쓴 것은 1827년,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다. 병과 고독 속에 있던 시기였지만, 그는 그 시간을 음악으로 견뎌냈다. 그래서인지 이 악장에는 크게 울부짖는 슬픔보다, 조용히 안으로 스며든 슬픔이 담겨 있다. 빨리 잊으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아픔을 쉽게 정리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 그 무게를 안은 채로, 안단테, 곧 걷는 속도로 끝내 걸어가게 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곡을 오래 붙들게 된다.


어제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다시 그 생각을 했다. 견디는 자의 슬픔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오래 슬퍼한 사람의 얼굴에는 말보다 먼저 시간이 남는다. 울음을 크게 터뜨리지 않아도, 그 얼굴에는 긴 시간 버텨온 흔적이 보인다. 그 표정을 보며, 슬픔이란 시간이 지난다고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국회에서 이어지는 조작수사 관련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가해를 부정하는 쪽의 말은 또렷하고 단정하게 들릴 때가 많다. 그러나 피해를 겪은 사람들, 그 일을 지켜본 사람들, 그리고 어렵게 증언대에 선 이들의 눈을 보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나는 그 눈에서 견디는 자의 슬픔을 본다. 억울함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사람의 눈, 진실을 말하면서도 다시 상처를 떠올려야 하는 사람의 눈, 그 눈빛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나만의 느낌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눈은 때로 말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세월호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중동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함께 떠오른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이란을 비롯한 곳곳에서 무고한 죽음을 겪은 뒤 남겨진 이들도 결국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이유를 다 묻지 못한 채 일상을 버텨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슬픔 역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곡은 한 시대나 한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전체를 생각하게 한다.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은 고통을 빨리 잊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 곁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2025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남긴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도 그래서 다시 떠오른다. 결국 슬픔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위로가 아니다. 그 슬픔이 헛되지 않도록, 고통 앞에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방관하지 않고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슈베르트의 이 악장은 바로 그런 마음과 닿아 있는 느낌이다. 이 음악은 슬픔을 없애 주지는 않지만, 슬픔을 안고도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곁에서 보폭을 맞춰 주기 때문이다. 오늘 고른 2016년 파리 실연 영상 속 세 연주자도 아주 담담하게 들려준다. 지나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오래 견딘 사람의 시간과 무게를 조용히 전해 준다.


오늘 이 곡을 들으며 다시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중동의 유가족들도, 그리고 지금도 진실을 말하기 위해 증언대에 서야 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는 자기 상처를 증명하느라 삶을 다 쓰지 않아도 되고, 더는 진실을 말하는 일이 또 다른 고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곡이 오늘만큼은, 그런 바람을 조용히 붙들어 주는 음악으로 남았으면 한다. 진실을 말하는 피해자들의 눈에서 보이는 그 견디는 자의 슬픔은, 결코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마침)


https://youtu.be/nioKJNp8ADE?si=UneCwjGUMY8Voh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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