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gri - Miserere mei, Deus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떠난 어린 생명들과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폭력의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합니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의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가 남겨진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은 초여름인가 싶을 만큼 공기가 다소 무겁다. 봄이라고 생각하며 창문을 열었는데 먼저 닿는 것은 서늘함이 아니라 살짝 더운 기운이다. 햇살도 제법 강하고, 하루는 벌써 한낮을 향해 서두르는 듯하다. 계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나 4월 16일이 오면 마음은 늘 한 번 멈춘다. 몸은 오늘 아침에 서 있지만, 마음은 어느새 12년 전 그 바다로 가 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기울었고, 배 안에는 아직 피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끝내 생명을 지키는 말이 되지 못했고, 구조되어야 할 시간은 너무 무겁고도 허망하게 흘러갔다. 그날 바다는 많은 생명을 삼켰고, 남겨진 가족들은 이름을 부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속에 서야 했다. 팽목항의 바람은 차가웠고, 부모들의 울음은 한 항구만의 슬픔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두고두고 감당해야 할 통곡이 되었다.
시간은 흘렀으나 어떤 날은 지나간 날이 되지 못한다. 4월 16일은 늘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날이다. 해마다 봄은 다시 오고 꽃은 다시 피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이날은 여전히 멈춰 선 아침이다. 그래서 오늘은 쉽게 말을 더하지 못한다. 잘 다듬은 문장보다 조용한 침묵이 먼저 필요한 날이고, 설명보다 추모가 먼저 앞서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에는 화려한 말보다 낮은 목소리가 더 오래 남는다. 크게 외치는 슬픔보다 조용히 붙드는 기억이 더 깊게 남는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의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 곡은 감정을 밀어 올리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음악이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고통을 설명하려 들지 않으며, 다만 인간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내놓는 기도의 목소리를 남긴다. 그래서 이 곡은 아름답다는 말보다 먼저 깊고, 장엄하다는 말보다 먼저 아프다.
오늘 이 음악은 12년 전 하늘나라로 간 어린 생명들과 지금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라는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함께 추모하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올리게 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죽음이든 억울하게 스러진 생명 앞에서는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은 국경에 따라 다르지 않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의 시간 역시 어느 한 지역만의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과, 폭격과 전쟁 속에서 삶을 빼앗긴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끝내 품에 안지 못한 가족들의 눈물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흘렀으나, 남겨진 아픔의 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살아 있는 우리는 모든 슬픔을 대신 감당할 수는 없고, 모든 상실을 다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잊지 않는 일은 할 수 있다. 떠난 이들의 이름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일, 남겨진 가족들의 시간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일, 그리고 어떤 비극도 너무 빨리 과거의 일로 밀어두지 않는 일은 할 수 있다. 기억은 한순간 북받치는 감정이 아니라,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는 마음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다. 봄은 오고, 햇살은 비추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날은 그렇게 지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4월 16일은 그런 날이다. 이 날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슬퍼하는 데 머무는 일이 아니라, 지켜지지 못한 생명들을 오래 마음에 두는 일이며, 남겨진 가족들의 시간을 쉽게 잊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의 다른 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희생 앞에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이 곡은 지나간 슬픔을 다시 꺼내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조용히 붙드는 음악이다. 12년 전 바다에서 스러진 어린 생명들과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폭력의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며, 남겨진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기억은 애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살아 있는 이들이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기억으로 이어져야 한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는 슬픔을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낮고 절제된 기도의 형식으로,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쳤던 고통과 너무 빨리 잊으려 했던 이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오늘 이 곡은 단순히 아름다운 성가가 아니라, 말보다 오래 남는 추모의 방식으로 들린다.
오늘 이 곡이 그 몫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조용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래 불러야 하는 이름들이 있고, 오래 기억해야 하는 죽음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끝내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야말로 남은 우리가 그들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늦었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예의일 것이다.(마침)
음악감상 :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의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
https://youtu.be/XNknz7PrmoU?si=6jpTREfcXQVeAlx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