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ndler's list - John Williams
1919년 오늘, 제암리 학살과 2차세계대전 유대인들의 희생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메인 테마를 함께 떠올리며, 한 세기가 지나도 끝나지 않은 무고한 죽음과 전쟁의 비극을 돌아본다. 제암리에서 홀로코스트, 그리고 오늘의 중동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음악이 남기는 애도의 의미를 생각한다.
오늘은 제암리 학살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 일본군은 주민들을 교회 안에 몰아넣고 사격한 뒤 불을 질렀고, 이어 마을까지 태웠다. 국가유산청과 우리역사넷은 이 사건을 3·1운동 이후 일제가 자행한 대표적 민간인 학살로 설명한다. 기록에 따르면 교회 안에서만 스물세 명이 숨졌고, 인근 고주리에서도 추가 희생이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진압이 아니었다. 식민 권력이 민간인을 향해 행사한 계획적 폭력이었다. 그리고 제암리는 그 잔혹한 폭력의 한 장면일 뿐, 그 뒤에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진 더 넓고 깊은 탄압과 희생의 역사가 놓여 있었다.
이런 날에는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오래 망설이게 된다. 너무 아름다운 음악은 현실을 가리는 것 같고, 너무 비장한 음악은 오히려 죽음을 감상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의 메인 테마를 떠올린다. 이 영화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연출했고,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가 유대인 약 1,100명을 나치의 죽음으로부터 구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브리태니커와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은 쉰들러를 홀로코스트 시기의 대표적 구조자로 기록하고 있다.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나는 먼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이 영화 앞에서 얼마나 무겁게 주저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미국영화연구소(AFI)와 보스턴대(BU) 자료에 따르면, 존 윌리엄스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스필버그에게 “이 영화에는 나보다 더 나은 작곡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필버그는 “알아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잖아요”라고 답했다. 이 대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이 영화와 음악이 짊어진 무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윌리엄스에게 이 영화는 잘 쓰면 되는 영화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이 비극에 충분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대부분 흑백으로 찍혔다. 브리태니커는 이 작품이 흑백으로 촬영됐다고 설명하고, 스필버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를 화려하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쉰들러 리스트」는 극적 장식보다 기록의 질감에 더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 냈다. 흑백의 건조한 화면은 관객에게 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절제한 채, 죽음과 두려움과 침묵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정면으로 보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음악은 화면 위를 지배하지 않고, 다만 감정이 끝내 숨을 곳을 잃을 때 천천히 스며든다.
존 윌리엄스는 이 영화를 위해 자신이 잘하는 방식의 화려함을 앞세우지 않았다. 메인 테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Itzhak Perlman)의 연주로 완성되었고, 이 선율은 장엄한 승리의 음악이 아니라 슬픔과 애도의 음악으로 남았다. AFI는 이 음악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위한 역사적 비가로 설명한다. 그러니 이 곡은 한 영화의 OST라기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참혹함을 끝내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서약처럼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빨간 코트의 소녀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내게 가장 마음이 무거운 장면은 마지막이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쉰들러에게 반지를 선물할 때, 그는 자신이 탄 자동차와 옷깃의 배지를 바라보다가 무너진다. “이 차를 팔았다면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배지 하나로도 한 명은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순간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을 구한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더 구하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 끝내 가벼워지지 못하는 한 인간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장면 가운데서도 이 대목이 유난히 오래 남는 이유는, 생명을 구한 사람의 영광보다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과 브리태니커가 전하는 쉰들러의 업적은 분명 위대하지만, 영화가 끝내 남기는 감정은 승리보다 자책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음악을 제암리와 함께 떠올린다. 교회 안에 갇혀 죽은 사람들, 불타는 마을에서 도망치다 총에 맞은 사람들, 남편과 아버지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가족들, 그리고 아무런 죄 없이 식민 권력의 보복에 짓밟힌 평범한 농민과 신자들이 있었다. 제암리는 역사책의 한 항목이 아니라, 민간인의 죽음이 어떻게 외세의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장소이다. 그런 점에서 제암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반일 감정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의 생명이 언제나 가장 먼저 희생된다는 역사의 법칙을 똑바로 보는 일에 가깝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암리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데에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기록이 있었다는 점이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이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는 제암리와 수촌리의 참상을 직접 확인하고 사진과 보고서로 남겼다. 국가보훈부 자료는 그가 3·1운동을 기록하고 제암리 학살을 국제사회에 알린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또 정책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영사 커티스 일행과 영국 영사관 관계자들 역시 현장을 조사했다. 이들의 증언과 기록이 없었다면 일본 당국은 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현장 책임자가 군법회의에 회부됐음에도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전한다. 제암리의 진실은 희생자들의 피 위에만 남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한 사람들의 양심 위에도 남아 있다.((***제암리 학살사건관련 글은 아래에 붙여놓았습니다.))
이런 기억이 더 무거운 것은, 이런 종류의 죽음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만 보더라도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고, 의료인력도 희생되었다. 로이터는 4월 8일 하루 공습으로 89명이 사망하고 700명이 다쳤다는 레바논 보건당국 발표를 전했고, 같은 날 다른 기사에서는 250명 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런 숫자의 차이는 전쟁 보도에서 흔히 발생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은 언제나 민간인의 몸 위에 먼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구조대원과 구급요원, 피난하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희생된다.
가자지구 역시 다르지 않다. 최근 로이터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민간인과 구호·의료 인력이 사망한 사례를 계속 전하고 있다. 전쟁은 늘 군사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끝내 남는 것은 집을 잃은 가족,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한 환자, 그리고 누가 설명해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다. 레바논이든 가자지구든, 인간의 생명을 나중 문제로 밀어두는 전쟁은 결국 같은 얼굴을 갖게 된다.
이란을 둘러싼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개입한 대이란 전쟁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낳았고, 중동 전역으로 충격을 번지게 했다. 문제는 전쟁 자체만이 아니다. 그 전쟁을 말하는 언어이다. 정치 지도자가 “문명 전체가 죽을 수 있다”는 식의 표현을 쉽게 입에 올리는 순간, 인간의 생명은 외교와 전략의 배경 소음으로 밀려난다. 지도자의 언어는 칼보다 먼저 세상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최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현재 미국 대통령의 언행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AP와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란을 향해 문명 파괴를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고, 이에 대해 교황 레오 14세(Pope Leo XIV)는 “정말로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반응했다. 이어 트럼프가 교황을 향해 공격적 표현을 쓰고, 자신을 예수와 비슷한 형상으로 묘사한 AI 이미지를 올렸다가 비판을 받은 일도 보도되었다.
지도자는 생명을 지켜야 할 사람이다. 적어도 전쟁을 말할 때는 문명을 파괴하겠다는 언어보다, 어떻게 죽음을 멈출 것인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교황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쟁의 고통을 멈추라고 말하는 종교 지도자를 조롱하고, 종교 상징을 자기 과시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태도는 지도자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강함이 아니라 감각의 둔함에 더 가깝다.
우리는 흔히 학살과 전쟁을 과거형으로 배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늘 현재형으로 되돌아온다. 제암리에서 그랬고, 유럽의 유대인 학살에서 그랬고, 지금 가자지구와 레바논과 이란에서도 그렇다. 침략과 점령, 보복과 응징, 안보와 질서라는 말은 늘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불에 탄 집과 무너진 병원, 아이를 잃은 부모와 부모를 잃은 아이, 그리고 “더 구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뿐이다. 역사는 폭력의 명분보다, 누가 죽었는지와 누가 그 죽음을 외면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마침)
그래서 오늘 이 음악을 듣는다. 「쉰들러 리스트」 메인 테마는 홀로코스트만을 위한 곡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곡은 너무 늦게 도착한 양심, 더 구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끝내 이름조차 다 불러보지 못한 죽음들 앞에서 우리가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곡처럼 들린다. 제암리의 죽음을 생각하며, 가자지구와 레바논과 이란에서 억울하게 쓰러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생명을 지켜야 할 자리에 선 이들이 오히려 생명을 가볍게 말하는 시대를 생각하며, 오늘 아침 나는 이 곡을 듣는다.
2011년 11월, 네덜란드의 공영 방송사 AVRO의 프로그램인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찾습니다(Wij op zoek naar het orkest)'라는 방송을 통해 네덜란드 델프트(Delft)에 있는 리우웬호크 온실(Leeuwenhoek-kas)에서 촬영되었습니다. 희귀병을 앓는 다비다 셰퍼스의 사연과 시모네 람스마의 배려가 녹아든 이 무대의 구체적인 공연 실황입니다.
이 곡의 전개는 단순히 악보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네덜란드 델프트의 한 온실 공연장에서 세 연주자가 나눈 '생애 가장 간절한 대화'와 같습니다.
https://youtu.be/YqVRcFQagtI?si=qML9ijM4rX1ksTs0
이전 제암리관련 블로그 글
[제암리사건]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 사건이 벌어지다 : 증언조차 불온했던 진실의 역사 : https://blog.naver.com/mason_0354/223833301250
[제암리사건] 조선을 사랑한 푸른 눈의 외국인 :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 : https://blog.naver.com/mason_0354/223833311920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