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할게.'
짧은 문장으로 건넨 약속은 쉽게 잊히고 미뤄졌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앞선 문장들을 질책하며 글자를 지우고 편지지를 구기다가 미뤄버리고 말았다. 영화 클래식을 보면서 그 순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가는 주희와 준하처럼 애틋한 적은 없었지만 나 역시 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강원도에 살았다. 갑작스레 형편이 힘들어지자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내 생의 첫 기억은 이때부터라 마음만큼은 강원도 태생이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 글자를 읽고 쓰는 일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편지를 썼다. 첫 편지는 어버이날이었을까. 어떤 편지를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떤 말을 이어갈까 고민했던 마음만큼은 새록새록하다. 강원도 소년은 일기와 받아쓰기로 연습한 글자로 편지를 썼다.
자주 놀아주던 친척 누나에게,
처음으로 좋아했던 친구에게,
서울에서 혼자 묵묵히 일하는 아빠에게,
일하느라 나를 챙기느라 늘 바빴던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고 어찌어찌 찾아낸다 해도 어떤 말을 써야 할지 고민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삐뚤빼뚤한 글씨가 들통날까 두려워 연필을 꽉 쥐고 천천히 적어야 했다. 고생스러운 과정을 지나 보내고 나서야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고생 끝에는 늘 답장이 왔다. 짧은 문장이라 할지라도 기쁨의 크기는 늘 넉넉했다. 연필 자국이 남은 손가락과 편지를 쓰느라 고심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편지를 쓰려고 했나 보다. 수줍은 내게 편지는 늘 제때 말하지 못한 말을 전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다. 나는 남겨둔 마음을 꼬박꼬박 적어 보냈다.
그럼에도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 강원도를 떠나면서 '편지할게.'하고 약속했던 친구들과는 연락을 이어가지 못했다. 주소가 잘못되었는지 돌아오기도 했고, 답장이 없기도 했으며 주소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연락이 되던 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마저도 전학을 가면서 다른 친구들과는 연락이 닿질 않는 모양이었다. 인생의 첫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렇게 끊어지고 말았다.
몇 년이 흐른 뒤에는 편지를 쓸 일이 줄어들었다. 휴대폰과 이메일과 채팅으로 더 이상 말을 전하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남겨진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종종거리며 기다리지 않아도 금세 답장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기쁨 또한 빠르게 찾아왔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으로 다양한 사람과 말을 주고받았지만, 아쉽게도 어릴 적에 만난 친구들에게만큼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하지 못한 말은 끝내 내게만 남는다. 보내지 못한 편지는 읽지 못하니까.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상대방을 종종 떠올릴 뿐이다. 친구들의 얼굴은 개구쟁이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함께 청설모를 찾으러 산속을 헤매고 올챙이를 보고 배시시 웃고, 바다 앞에서 스케치북을 펼치고 그림을 그렸던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이따금 재생되곤 한다. 그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무얼 하고 지내고, 어떤 아픔이 있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우리가 나누었던 편지들은 어디로 갔을까? 각자의 서랍에 남아있을까? 편지를 보낼 수도 답장을 받을 수도 없는 우리의 이야기의 마침표가 물음표가 되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