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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무기력이 왔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지...

by 마싸


2022년 10월.

그날의 이야기를 하려면 2020년 늦가을 즈음으로 더 되돌아가야 한다.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지금 코인이 난리인데 나도 한 번 해 보라고 말이다.

언니 회사 직원의 친구가 그 직원에게 리딩(사고 팔 종목을 알려주는 것)을 해주고 있고 그 정보를 사무실 직원들에게 공유해 주고 있는데 나한테도 정보를 줄 테니 애들 과잣값 번다고 생각하고 해 보라고.




원체 의심도 많고 일확천금을 바라는 성격도 아니어서(복권 내 돈으로 산 적 없음) 무시하려고 했다가 재미 삼아해볼까 싶어 업비트(코인 거래소)에 가입을 하고 투자금 10만 원을 넣고 시작했다.(나중에는 투자금이 수백만 원이 됨 ㅋㅋ)

처음엔 진심이 아니어서 언니가 주는 정보로 사고팔았다.




그때가 한창 미친 상승장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몇십 %, 아니 백몇 % 이상 오르는 코인들이 수두룩 했고 내가 산 코인이 몇 분 만에 100% 이상 수익을 내는 모습을 봤다.(곧 몇 분 뒤에 다시 10%대 수익으로 내려왔지만 ㅋㅋ)

그 수익률을 봤을 때 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언니가 주는 정보가 아닌 스스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당시 신랑이 목디스크 수술로 휴직 중이었다. 수술 후 어느 정도 거동이 편해지면서 신랑은 모든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 식사 준비까지 다 해 주었다. 회사 다녀와서 누군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 그 생활이 너무 달콤하고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코인으로 월에 자기 월급만큼만 벌면 자기 회사 그만두게 해 줄게"라고 늘 말하곤 했다.




참 열심히 했다...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코인을 공부했다. 차트 분석 책도 보고 유튜브 강의는 닥치는 대로 시청했다. 코인은 24시간 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차트를 봤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보고 회사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차트를 들여다봤다.

어느 코인카페의 네임드(카페 내에서 실력이 좋아 유명한 사람)들이 나의 닉네임을 기억하고 소소한 소통까지 할 정도로 죽순이였다.




변동성이 큰 코인의 특성으로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갔지만 시장이 대체적으로 좋았고 신랑 월급 정도는 벌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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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카페에 남아있는 나의 흔적들 ㅋㅋ









1년간의 인병휴직이 끝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던 신랑이 몇 달 만에 한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있다. 수술을 했고 몇 달 휴직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갔는데 (다른 이유로) 공황장애가 왔다.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했고 회사에 가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다. 둘째가 1학년이 되면 쓰려고 했던 육아휴직을 1년 앞당겨 신랑이 쓰게 했다.




이쯤 되니 점점 불안해졌다. 처음엔 농담이었지만 진짜 내가 우리 집 가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월급으로는 우리 가족 생활하기 빠듯한데 빨리 코인 트레이너가 돼서 월 고정적인 수입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간절해질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차트 분석과 매매 기법을 공부하는 건 재미있었다. 하지만 실전에선 잘 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나만의 매매기준을 만들어 반드시 지키자 해도 결국 순간의 감정대로 하다가 망치기 일쑤였다. 돈을 벌 때도 있었지만 사이버상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21년 11월부터 코인 하락이 시작됐다.

이때 산 코인들이 물려버렸다.(하락률이 너무 커서 팔지 못해 가지고 있는 것)




대부분의 투자금이 묶여버려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싶었을 때 또 건널 수 없는 강, 코인 선물을 하게 된다.



선물은 우리나라 어플에선 할 수가 없어서 외국 사이트에 가입을 했고 또 미친 듯이 열심히 했다.



선물은 한 번 사고 나면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워낙 변동성이 크다 보니까 언제 청산(투자금을 모두 잃는 것)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족 여행을 가는 중에 코인을 사는 바람에 여행 내내 핸드폰 보고 있느라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현타가 오기도 했다.






이제 바로 그날.




최악의 무기력이 덮친 그날 나는 코인을 접기로 결심했다.




선물을 하는데 정확하게 내가 팔면 오르고 사면 내리고 또 팔면 오르고 사면 내리는 것이 반복됐다.

계산을 하고 한 게 아니라 뭐랄까.... 기분 때문에. 정말 내가 감정적으로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시 연습 중이라 큰돈으로 한 건 아니지만 제정신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와.. 나 이러다가 진짜 큰돈 잃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건강은 나쁠 데로 나빠졌고 아이들 케어도 제대로 못해서 늘 미안했다.




코인을 접기로 결심하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2년 가까이 들인 시간과 노력.

그럼에도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

진짜 열심히 하긴 한 건가? 하는 자책감.

코인 한다고 내팽개친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회사 그만두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못해준 미안함.

평생 이렇게 빈약하게 살겠구나 하는 비참함.



여기에 묘한 원망까지 더해졌다.



왜 나만 이렇게 돈 벌려고 아등바등해야 해???



신랑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고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졌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앞서 쓴 글에도 있듯이 최악의 무기력에선 빠져나왔다.

걱정과는 다르게 신랑은 회사를 잘 다녀주고 있고 나도 무기력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때의 일로 나는 코인과 주식같이 변화가 눈에 보이고 쉽게 사고파는 것에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고 쉽게 사고팔 수 없는 부동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부동산 공부를 잠시 멈춘 지금 약간의 무기력이 또 오긴 했는데 ㅋㅋ 부동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풀어보는 걸로..)




코인을 접기로 하고 한동안 쳐다도 안 봤는데 내가 접은 후부터 코인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결과만 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코인을 접은 건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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