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의 탄생] '엄마 탓'에서 자유로울 것

내가 닮은 엄마에게 쓰는 편지

by mamang


엄마 요즘 부쩍 추워졌다 그치. 이제 반팔은 집어넣고 긴팔을 꺼내야겠어. 날씨가 추워져서 모기가 늘어난 건지 추운 날씨가 싫어서 모기가 집안으로 들어온 건지. 추석 연휴에 집에 내려갔을 때 우리 가족들은 해답을 찾지 못했잖아. 오랜만에 집에서 티브이도 보고 밥도 먹고 모기도 양껏 잡아보니 기분이 이상했어. 계속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싸고 툴툴거릴 것만 같은데 다시 짐을 싸서 진짜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이상하더라.


혼자 왔다 갔다 했던 집에 내가 장서방 손을 잡고 왔다 갔다 하니까 엄마도 기분이 이상하지? 어제는 함께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나와 오빠를 배웅해주는 엄마 아빠를 보니 기분이 더 이상했어.


"너는 내 성격을 제일로 많이 닮아서 엄마가 젤로 걱정된다야"

엄마가 나를 보면 많이 하던 말이잖아.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어. "엄마 같은 엄마랑 살아서 내 성격이 이렇게 된 거야. 왜 몰라 엄마는." 엄마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엄마를 원망하기만 했던 것 같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효녀인 척하기 바쁜 나인데 마음속으로는 그랬어. 항상 모든 게 엄마 탓인 것만 같았어.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내 성격도 엄마와 지내면서 겪어온 엄마의 우울이 많이 묻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


대학 졸업반 때 즈음부터인가 엄마의 우울함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 어릴 때는 엄마에게 용돈도 받아야 하고 책값도 받아야 하고 엄마에게 기생해서 살아가야 하니 엄마의 대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아. 엄마랑 다툰 날이 하필 돈을 타야 하는 날에 딱 걸리면 그렇게 난감했어. 자존심을 버리고 항상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잖아. 우리가 다투게 된 진짜 원인은 찾아내려 하지 않고 말이야. 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민망하니 조급한 마무리를 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엄마와의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잘 배우지 못한 것 같아. 평상시의 엄마는 부드럽고 친절했는데 화가 나면 무척이나 무섭기도 했거든.


그런데 엄마, 사람은 참 간사한 것 같아.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고, 동시에 대학도 졸업하게 되니 엄마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 때로는 싫고 화도 났었어. "누구나 본인만의 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엄마의 우울을 나약함으로 깎아내렸던 것 같아. 그리고 엄마의 들쑥날쑥한 감정들을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어. 엄마에게 돈을 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생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오니까 엄마를 회피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더라.


갈등 상황이 생기면 굳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어진 거야. 그러면서 점점 더 엄마에게 내 감정을 설명하고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어. 대화를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많이 줄었잖아. 엄마는 "예전에는 네가 참 애교도 많고 착했는데" 했지. 그리고 내가 엄마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회피할 때마다 예전이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어. "엄마. 내가 옆에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그때는 왜 나만 못살게 굴었던 거야."라고.


엄마. 내가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게 더 좋은 일일까?

아직 답은 찾지 못했어. 다만, 내가 나를 알아갈수록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 안심은 된다고 해야 할까.




사실 나는 엄마의 사회생활을 항상 평가절하했던 습관이 있었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종종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워도 다른 힘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 고백할게.


그러다가 나도 돈을 벌기 시작했지. 취직하고 처음 1년 동안은 일주일 중 2번만 쉬는 게 얼마나 억울했는지 몰라. 어쩌다가 주말 비상근무를 할라치면 엄청나게 화가 났어. 왜 나만 이래야 하나 억울하고 심통이 났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그런 상황에 내가 엄마를 떠올렸어. 나는 일주일 중 2번은 쉴 수 있는데 32년을 어떻게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일을 해올 수 있었을까.


직장 생활 3, 4년 차에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 직함이라도 남는데, 엄마는 남는 게 뭘까.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걸고 해 본 게 있을까. 엄마는 32년 동안 뭘 남겼을까. 물론 생각만 했지 엄마한테 물어볼 용기는 없었어. 그래서 혼자 궁금해다가 말았지.


그즈음 엄마는 32년 식당 생활을 마치게 되었잖아. 퇴임식이 따로 없는 엄마를 위해 친구에게 부탁해서 마지막 영업일날 사진 찍었던 거 기억나? 친구들이 준비한 꽃과 감사패를 받고는 엄마가 울어버렸잖아. 엄마의 고향과 아빠의 고향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 붙였던 식당은 이제 우리 가족들의 핸드폰 번호 뒤 네 자리로 남아있어. 돌이켜보니 퇴사를 해서 직함을 남기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인 것 같아.




엄마가 내 나이 때쯤이었을 때 엄마는 어땠을까. 대충 셈을 해보니 엄마는 이미 내 나이에 딸 셋의 엄마가 되었겠더라. 참 징그럽고도 무서운 이야기야.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이야. 그러다 보니 나보다 어렸던 과거의 엄마에게 아주 많이 빚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어렸던 나는 나와 같이 어렸던 엄마에게 뭘 바랬던 걸까.


엄마 아무리 봐도 나는 정말 엄마와 성격이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아. 말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금방 울먹거려서 서운하고 속상한 것을 편지로 적어놓는 것도 비슷하고. 부당하거나 속상한 일을 겪고 나서 소심한 나머지 그 일에 대해 바로 항의를 하지 못해. 골똘히 혼자 고민하다가 어느새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언제 소심했는지 싶게 감정이 폭발해서 상대방에게 황당한 감정을 선물하지. 그리고는 나중에 되려 혼자 미안함에 잠식돼서 또 슬퍼지고 말잖아.


사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알아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나의 감정으로 인해 주변 사람은 물론 나 자신까지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말이야. 그 후로는 내가 화가 나고 마음이 힘들 때면 화난 엄마를 앞에 둔 어린 나를 생각해. 내 주변 사람들도 어린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나에게 느끼고 있을까.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면 엄마의 세심함과 따뜻함은 간직하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따뜻함을 잃지 않고도 심신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뜻밖의 보물을 찾은 기분이야. 세심하고 예민한 엄마니까 알아차려줄 수 있었던 부분에 많은 이득을 보며 살아왔던 것 같아. 나처럼 상처 받고 고생하지 말라고 우리를 잘 배운 여성으로 길러줬으니까.




엄마는 32년을 꼬박 쉬지도 못하고 식당을 했잖아.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 생생한 몇 가지 일들이 있어. 식육식당이었던 우리 가게는 단골도 많고 인기도 좋아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잖아. 아빠는 단골 중 한 명이 "내 차 운전 좀 해라"는 심부름도 했어야 했고. 엄마는 회식하다가 술을 많이 처먹은 아저씨한테 포옹을 당하기도 했어. 그리고 평소 잘 대접해드리려고 엄마가 신경을 잔뜩 썼던 미화원 아저씨들께서 식사를 하러 오신 적도 있었지.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은 누룽지를 엄마가 주방에 "누룽지 2개요" 하고 전달하니까 미화원이라고 무시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는 욕도 다 주워 들어야 했잖아. 나는 옆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듣고 보기만 했던 관찰자였는데 말이야, 몇몇 사건들이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박혀있어.


아주 가끔, 요즘은 조금 자주 이런 생각을 해. 나와 정말 성격이 비슷한 엄마는 어땠을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내가 사회초년생 시절 엄마에게 가끔 그랬잖아. "내가 얼마나 우악스러운 사람들하고 일을 해야 하는지 아냐"라고. 사회생활을 해온 시간이 쌓이고 쌓일수록 그게 얼마나 오만하고 우스운 주장이었는지를 알게 돼.


아침 식사 장사를 했던 엄마는 이른 새벽에 혼자 문을 열고 있어야 했잖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장사 준비를 위해 셔터를 열어놓으면 모르는 사람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올 때가 있다고 했어. 그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이야. 식당을 한다고 은근슬쩍 깔보는 사람들 이야기도 했지. 들어오는 사람을 걸러 받을 수 없던 엄마에 비하면 말이야, 나는 사무실에서도,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걸러진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나는 이런 내 직업이 어떤 면에서 엄마의 일보다 어렵고 우악스러운지를 내세울 수 있는 논리가 하나도 없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참 부끄러운 거 있지.


"이 세상에 완벽한 케어를 받으며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없다." 내가 친구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야. 어릴 때 각자의 가정에서 어떤 역사가 있었든 간에 지금의 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왔거든.


그런데 남일에는 쉽게 나오는 말이 나한테 써먹기는 어려운 법이잖아. 겉으로는 부모 탓하지 않는 깔끔한 자녀인 척했는데 나야말로 엄마 탓, 아빠 탓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성격의 50프로 정도는 유전이라더라. 나는 운 좋거나 운 좋지 못하게 엄마의 성격을 그대로 50프로 모두 이어받은 것 같기도 해. 나에게 좋은 일 일수도 나쁜 일 일수도 있겠지만 이제 나머지 절반만큼은 나 하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어.


내가 자라온 엄마라는 환경을 탓하는 데에서 이제 조금 자유로워지려고 해. 그래야 나도 내 성격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는 나와 아이가 겪는 갈등을 조금 용감하게 볼 수 있을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아직 엄마가 바라 마지않는 손주들에 대한 생산 계획은 없지만,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50프로 가득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엄마 고마워.


자기가 초라해 보일 때 괜히 엄마를 미워해보는 것은 딸들이 자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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