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됐네요

눈치를 본다는 것 vs 배려한다는 것

by mamang


나는 눈치를 보는가 배려를 하는가


눈치 보는 것과 배려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주의 일이었다.


비 오는 금요일 오전, 병원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가 있을 곳이 필요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주변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 가 있었을 거다. 잘 알려진 브랜드인 것도 물론이고, 어느 매장에 가던 커피의 맛이나 카페 내부 분위기가 비슷비슷해서 낯선 지역에 잠시 머물러야 할 때 나에게 심적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그날은 비도 오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독서에 조금 집중하려니 어떤 여성분의 목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온다. 한 번 힐끔 쳐다봤다. 깔끔한 투피스 정장에 심플한 토트백을 가져온 우아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아, '통화하시는구나. 그럴 수 있지.'하고 고개를 내려 다시 책을 읽으려다가, 그녀의 목소리로 카페 내부가 쩌렁쩌렁 울리는 바람에 그녀를 다시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사람 구경인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하는 생각에 책을 보는 척하며 힐끔힐끔 본격적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의 몸은 카페에 들어와 있기는 했다. 분명 카페에 들어와 있는 그녀는 카페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그러니까 문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위치해 있었다. 앉아있지도 않고 확실히 이곳은 내 자리. 하는 찜꽁의 제스처도 아닌 애매한 부분이 있어 '위치해있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녀는 바로 옆 테이블에 토트백을 올려만 놓고 그 옆에 서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있다가 올라갈까요? '스타벅스'에서 회의 잠시 하고 가도 괜찮으시죠? 카페인도 필요하고요. 호호

여기까지 통화를 엿 들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을 때) '아, 이 카페 브랜드를 스타벅스로 착각하고 계시는구나.' 했다. 그런데 그녀는


네. 그래요. 그럼 스타벅스에서 봬요. 호호

하고 테이블 위의 예쁜 가방을 다시 챙겨 들고 휙 나가버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카페 직원들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이런 일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장님이 아니기에 아무래도 '손님이 많던 적던 월급은 동일'하다는 생각이었는지 카페는 놀랍게도 그녀의 소음만 빠져나갔을 뿐 아무 변화도 없었다. 나에게만 전화 소리가 들린 거였나? 싶을 정도로 한 명도 힐끗거리지 않았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그녀 덕분에 괜히 내 '눈치력'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통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카페 문을 나설 때까지 내 머리에 떠올랐던 생각들은 대략 이랬다.


응? 무슨 소리지? 전화 소리인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 여자분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싶지는 않다. 그나저나 왜 저렇게 크게 통화를 하는 거지? 무슨 이야기하는지 들어나 볼까? 응? 왜 남의 카페에 와서 '스타벅스', '스타벅스' 저러는 거지? 한 번 휙 쳐다봐주면 목소리를 낮추려나? 응? 나와 눈을 안 마주치시네. 저 직원들이 '스타벅스'랑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지 않을까? 아~ 저분이 스타벅스랑 여기를 헷갈리셨나 보다. 잠깐. 그럼 이 주변에 스타벅스가 있는 거야? 밖에 비가 오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정장을 차려입고 굳이 가는 거면 가까이에 있다는 건데. 아 나도 그냥 조금만 더 찾아보고 스타벅스 갈걸. 응? 저분 나가시네? 그냥 나가시는구나. 스타벅스랑 여기를 헷갈린 게 아니었어? 그런데도 굳이 문안에 들어와서 통화를 저렇게 하고 나가신 거야? 오 마이 갓! 저 직원분들 기분은 상하지 않았으려나?

여자분이 통화를 소리 내어하고 나간 건 정말 짧은 순간이었고 했던 말이라곤 몇 마디 없었는데.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던 생각을 말로 옮겨보니 이렇게 길다는 데에 아주 경이로웠다.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 게다가 결론이 또 다른 누군가의 눈치를 살펴주는 일이었다니.



눈치 보는 여자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저 사람 기분이 안 좋은가? 왜 그러지? 내 탓인 건가?'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친구들하고 함께 있다가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가족 구성원이 딱 2명인 단출한 우리 신혼집에서도 나는 참 많은 생각을 떠올리고 흘려보내고 다시 떠 올리고를 반복한다. 이 정도면 거의 망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신랑이 내가 설거지해놓은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으면 이런 의식의 흐름이 발생한다.

(주방에서 그릇 정리하는 소리. 달그락달그락달그락)
공대여자 : 오빠 뭐해?
오빠 : 응. 그릇 정리해. 왜?
공대여자 : 아니. 화난 줄 알고.(내가 설거지하고 그릇을 정리 안 해서)

참고로 나는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회사에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의도하지 않은 큰 소음이 발생하면 어맛! 앗! 하는 등의 자체 의성어를 내어 '나는 화난 게 아니다, 내가 의도한 소리가 아니다.'라는 나름의 시그널을 보낸다. 집에서 문이 쾅 닫히거나 사물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뜻하지 않게 내게 되면 '미안' 또는 '화난 거 아니야'를 의미할만한 이야기를 하고 지나간다.(그런 말 없이 내가 물건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면 정말 화가 난 거다. 나와 비슷한 눈치를 많이 보는 소심쟁이 부류는 화가 난 상태에 대해 삐졌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아주 많이 서운해한다. 나는 진지한데 말이다.)


생각이 많은 여자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쭉 적어 내려가 본다. 어제 마무리를 하지 못해 오늘로 넘어온 일이 대부분이다. 업무 특성상 동료들과의 상의를 통해서 결정 내려야 할 일들, 팀장님이나 부서장님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전화 상대방과의 대화가 잘 풀리지 않거나 언쟁이 벌어지게 되면 나는 그 동료와 오늘 협의해야 할 일을 저 사람에게 어떻게 꺼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동료의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 오늘의 일을 내일 더 나은 기분의 동료와 상의하기로 한다.

팀장님에게 보고드릴 문서를 정리하다가도 화장실에 가시는 길인 것 같아 '이따 말해야지'하다가 팀장님이 돌아오시면 '방금 자리에 오셨으니 5분만 있다가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동료가 팀장님과 회의를 하고, '저 회의 마치시면 가야지'하면 점심시간이고 '1시에 바로 가면 좀 그러니 10분만 있다 가야지'하면 다른 업무협의를 하고 계시고 이 사정, 저 사정 다 보다 보면 5시 30분이 넘어가고, 퇴근 직전이니 말씀드리기 뭐한가? 하고 다음날로 넘어가게 되는 과정들을 반복한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뭐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나 혼자 속을 끌였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 상황에 놓이면 나는 또 별수 없이 눈치를 보고 앉아있게 된다.


눈치 본다 VS 배려한다


이 정도가 되니 일상에서 내가 '배려해 준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눈치 보는' 것들이었는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이었는지. 그렇다면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이고 내 머릿속이 시끄럽지 않으려면 둘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어깨가 쪼그라들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게 된다는 건 눈치를 보는 것인가. 어깨를 조금 펴고 턱을 들어서 여유 있는 시선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배려해 준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나는 적어 내려감과 동시에 어깨를 움츠렸다가 눈알을 굴렸다가 턱을 들었다 내렸다 해보며 행동이 마음가짐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관찰해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눈치 봐준다'라는 말은 없고 '배려해 준다', '배려한다'라는 말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배려받는다'라는 말을 있는데 '배려당한다'라는 말은 없는걸 보니 '눈치'는 '눈치 보인다'처럼 수동적인 어감이 자연스러운 것과는 아주 대비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눈치는 수동적이고 배려는 능동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러게 말이다. 눈치는 누군가가 줘야 내가 받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눈치를 봐왔다고 생각했던 그 '눈치'들은 누가 줬던 걸까.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는 눈치는 내가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었던 그저 그런 상황 들일 뿐이지 않았을까. 상황들이 내 앞에 놓여있었을 뿐이지 눈치를 주는 사람도, 눈치를 보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눈치를 셀프로, 그것도 수동적으로 보고 있었던 상황이라니.



나를 괴롭히는 건 결국 '나'


내 머릿속 생각의 흐름들이 주로 눈치를 보는 상황들에 있다 보니 혼자 있건 누군가와 함께 있던 내 머릿속은 항상 쉴 새 없이 의식의 흐름들을 엮어냈다. 계속 무언가를 왜곡하고 비틀어서 생각하고 상대방이 의도한 것을 내가 다시 비틀어 생각한 후 내 방식대로 받아들인다. 요즘 바로 어떤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연습하고 있는데, 매일 연습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감정은 습관이다'라는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에게 익숙한 감정에 다시 스스로를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나는 왜 나쁜 남자만 만나게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나쁜 남자'에게 상처를 받고도 다음 연애 상대를 찾을 때 또 그런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나에게 익숙한 감정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비슷한 류의 감정의 연속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계속 눈치 보게 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내려놓는다. 어떤 상황의 원인을, 그러니까 기본 세팅을 나로 두고 모든 문제가 나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둔다. 나에게 문제의 발단이 있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한다. 나는 내 앞의 상황을 왜곡하지 않고 나 자신을 '눈치 봐야 하는 사람'이 아닌 '배려해 주는 사람'으로 다시 정의 내려야 한다. 어깨를 구부정하고 쭈뼛거리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대신 어깨를 펴고 턱을 조금 들어 올리고 여유 있는 표정과 함께 상황을 조금 뒤에 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사물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때문에 힘겨운 것
-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




그렇게 됐네요


지난주에 했던 친한 회사 선배 한 분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공대 여자 : 선배 저 3개월 쉬어보려고요. 어서 회복해서 건강하게 돌아올게요.
선배 : 에구 몸도 마음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음 여려서 큰일이야. 그나저나, 공대여자! '그렇게 됐네요'라고 말하기 매일 100번 연습해봐요. 그리고, 공대 여자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해요.
공대 여자 : ㅋㅋㅋㅋ 그렇게 됐네요. 아 정말 감사해요 ㅋㅋ 오늘부터 100번씩 할게요!

선배가 말해준 '그렇게 됐네요'를 입속으로 되뇌어보니 뭔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가슴이 뻥 뚫린다고 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특히 회사에서 주는이도 없는 눈치를 열심히 보며 주눅 들어 있던 지난날들에 작별인사를 하려고 한다. 내가 회사와 일상에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우선 '눈치를 보는 게' 아닌 '배려를 해준'것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리기로 했다. 어깨를 조금 더 펴보기도 하고 내친김에 턱도 조금 더 들어볼까 한다.

그러니 이제 이것저것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했던 눈치 보던 나는 잠깐 한쪽에 모셔둘 예정이다. 무엇보다 평소 '배려심'이 많아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난처하지 않을까 여러 상황들을 놓고 생각해보니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배려해 주지 않았더라고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이왕 마음먹은 김에 '그렇게 됐네요'라고 입속으로 연습해본다.

이젠 내가 노력해도 별 수없이 벌어지는 일들까지 우왕좌왕하며 안절부절 못하지 않으리라. 눈치는 보지 않되 내 행동의 주체가 되어 배려해주며 지내야지. 그래도 별 수 없이 잘 풀리지 않은 일들은 내 탓이 아니니 겁먹고 주눅들지 말자. 그냥 '그렇게 됐네요'라고 입속으로 말해보자.(아직은 입 밖으로 말할 용기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큰 발전 이리라.) 문이 의도치 않게 크게 닫혀도 '미안, 그렇게 됐어.' 회사에서 나를 책망해도 적당히 어깨도 펴고 턱도 들고 '그렇게 됐네요'하고 생각하며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지.

그에 파생되는 말로는 '그러게요', '그러네요'가 있을 거고, 상황에 따라서 비슷한 태도를 내비칠 수 있는 말로는 '글쎄요'라는 애매한 자세를 취하는 말도 있겠지.

나와 비슷한 소심쟁이나 눈칫밥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른 이들은 마음속으로나마 '그렇게 됐네요' 하며 마음속의 단단함을 채우는 연습을 하자. 언젠가는 소리 내어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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