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이 많은 여자

영감과 시상이 떠오르는 점심시간

by mamang


영감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같이 사는 남편은 피식 웃는다.


나는 요즘 시상이 떠올랐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옆에서 그 외침을 듣고 있던 남편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픽 웃는다. 나는 토라진 척 고개를 그 반대로 돌리고 또한 피식 웃는다.


오랜만에 펄떡거리는 재미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신이 나고. 작가와 시인이라는 역할놀이에 흠뻑 빠져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매일같이 시상과 영감을 줍고 마음껏 볼에 넣는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밥을 볼에 밀어 넣던 중 영감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내 코에 흐르는 콧물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코가 녹아내려 콧물을 흘리는 자다. 콧물을 흘린다는 것은 어른들의 사회생활에서는 아주 취약한 부분인데. 지금까지는 그나마 함께 밥을 먹는 선배 중 한 분도 콧물을 자주 흘리는 터라 안심이 되었다.


우리 부서는 팀 구성원들끼리 함께 밥을 먹는다. 콧물 흘리는 선배와 나는 식사를 마치면 그날 각자가 쏟거나 흘릴뻔한 콧물을 체크한다. 여러 차례의 식사가 빅데이터가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콧물을 흘리는 자이며 선배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콧물을 흘리는 자라는 것.


하필 이번 주 내내 선배가 교육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데 나는 홀로 뚝배기 매운탕이라는 맵고도 뜨거운 밥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콧물을 흘리는 자라는 걸 깜빡하고 어르신들의 식사 속도에 맞추기 위해 쓸쓸하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갔다. 매운탕 속의 생선알의 양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내 오른쪽 콧구멍 아래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콧물이 한참을 흘러서 인중 근처에 머무는 중인 듯했고 나는 즉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봤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스으읍 킁킁" 바쁘게 콧물을 콧구멍으로 되돌려 보냈다.


선배가 있었다면 그대의 콧물은 괜찮았는지 묻고 공감하고 웃었을 텐데. 나는 선배의 빈자리를 느끼며 이번 주는 되도록 뜨거운 메뉴를 선정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밥을 마저 맛있게 먹던 나는 콧물 많은 여자와 눈물 많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밥을 볼에 더 몰아넣으면서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눈물이 날 때마다 콧물이 먼저 마중 나오는 바람에 나의 슬픔을 예쁘고 애달프게 표현하는 데에 많은 난관을 만났었지. 하는 회상도 해보고 우는 것도 예쁜 여자들에 대한 부러움도 떠올려보았다.


어느새 어르신들은 식사를 마친 후 핸드폰을 보고 계셨고 나는 다급하게 남은 밥과 반찬을 뚝배기 매운탕에 넣은 후 일어날 준비를 했다.


잠시 길을 잃었다 돌아온 느낌이지만 어쨌든 오늘도 시상도 영감도 함께 떠오른 행복한 콧물의 시간이었다.


오후에도 일은 적당히, 공상은 많이 해야지.


직장인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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