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써버리겠다
당신에게는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다
3개월 휴직을 한 후 회사에 복귀한 지 3주 차가 되었다.
나는 복귀 첫 주를 꽉 채워 적응하는 데에 썼다.
회사 동료 및 부서장이 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싶었다.
복귀 둘째주는 점차 업무의 폭이 넓어졌고 내 자리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일 처리를 하면서 다소 산만하고 눈치를 많이 보던 휴직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으며 간신히 평점심을 유지했다.
팀장님은 복귀기념으로 부서 직원 다같이 점심을 함께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좋은 일로 휴직한 게 아니라 민망하기도 하고 아직 낯가리는 중이라 식사 중에 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부서원들의 일정을 조율하다보니 복귀 2주차가 되어서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고 나는 부서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했다.
"몸은 어떤가?컨디션은 몇프로정도 돌아온 건가?특별히 챙겨먹는 약이나 음식은 없나?" 등등의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하며 불편하게 식사를 했다.
식사 말미에 부서장이 나를 빤히 보며 이렇게 말했다. "공대여자. 살쪘어?"
스무명 남짓한 우리 부서 직원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나는 "네. 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왜인지는 모를 어떤 이유로 부서장은 멋쩍어하며 "그러게. 왠지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부서장이 말을 덧붙였고 나는 "아 예." 하고 대답했다.
부서장의 몸 관리 잘하라는 상투적인 격려와 함께 식사 자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공개적으로 외모에 대한 평가를 들어야 했던 나는 잔잔하고 담담한 나의 대응에 몹시 만족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망신 주려 한 부서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남편에게 늘여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를 예전처럼 다시 함부로 대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보호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3주차, 바로 이번주가 되었다.
이틀 전 오전, 탕비실에서 차를 타고 있는데 부서장이 탕비실로 들어왔다. 가볍게 목례를 한 나는 하던 일을 마저하고 있었다. 부서장은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대여자. 머리 왜 잘랐어?"(나는 복귀 전 긴머리를 짧은 단발로 잘랐다.)
"아. 네 이제 알러지 때문에 염색도 못하게 되서 겸사겸사 잘라봤습니다." 내가 잔잔한 어조로 답했다.
"아. 그래. 근데 시골여자 같애."
"아. 예." 나의 반응이 무덤덤하자 부서장이 덧붙인다.
"사람들이 그런 말 안해?"
"남자분들은 별말 없고 여자분들은 잘 어울린다고 하세요. 시어머니는 앳되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나는 불필요하게 디테일하고 정성스러운 답변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구만. 암튼 진짜 시골여자 같아." 부서장이 굳이 한번 더 그 사실을 강조했다.
"아. 예." 나는 다시 가볍게 목례를 했고 부서장은 내려진 커피를 들고 탕비실을 나갔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나의 보호막에 균열 하나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이제 막 출근을 씩씩하게 해낸 나는 화장실에 가서 개인정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중년의 여자 선배 한분이 화장실에 왔다가 나를 그냥 지나친다. 그러다가는 다시 휙하고 몸을 돌리더니 나에게 얼굴을 드리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지난주에 이미 한번 마주친 분이었고, 몸이 좋지 않아 휴직을 했다가 복귀했노라며 대략적인 사정을 말씀드렸던 분이었다.
지난주의 대화가 상세히 기억나는 나와는 달리, 그분은 나의 사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의 인사를 받은 그 분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응? 살이 쪘네?"
그분의 표정에는 뭔가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건가 하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나와 굳이 눈까지 마주친 상태에서 표정까지 덧붙여 또박또박 말하는 그분 덕분에 굳이 전달받고 싶지 않은 내포된 의미까지 느껴졌다.
덤덤하고 잔잔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너무도 무방비 상태였다.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칼을 마구 휘두르고 지나가버린 듯한 느낌에 아침이라기에는 너무 끔찍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아. 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나는 대답했다.
"그게. 약을 먹고 있기도 하고. 붓기도 아직 덜빠지고." 나는 구구절절 핑계와 이유를 둘러대던 나를 뒤로 하고 그분은 "수고해요" 하고 화장실을 떠났다.
그 순간 지난주까지 내가 가졌던 나를 보호하는 보호막이 없어진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서 단단하게 버티고 있던 마음 근육도 함께 말이다.
나는 결국 이렇게 휘둘리고 마는 것인가. 그들은 과연 나를 어떤 이로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그들의 분류기준에 따라 편한 사람의 경계를 벗어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의 부류로 분리되어 버린 게 아닐까 하고 곰곰 생각했다.
"휴직전에 공대여자가 이런 저런 말을 다 잘 받아줘서 그럴거야. 지금은 달라졌다는 걸 보여줘. 집에와서 울더라도 할 말을 다 하고와!" 남편이 말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쓸때에는 잘 느껴지는 나의 살아있는 감정이 참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역시나 사회생활에 적응하기에는 몹시 불편한 성격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복직을 앞두고는 이런 상상을 많이 했다. 나에게 상처주는 누군가를 써버리고 후련해진 마음으로 다른 써버릴 상대를 찾는 상상 말이다.
비록 나는 어제 조금 울었지만, 오늘 그들을 써버리겠다. 그들에게는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으니까.
* 글의 제목은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의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