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김혼비)
사실 나는 흐리멍덩하게 살고 싶었다. 그야말로 대충대충.
누가 뭘 시키면 한편에 꼬불쳐뒀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슬쩍 꺼내서 하고, 이제 더 이상 미루면 큰일 날 것 같을 때 해야 일의 효율이 생긴다고 나는 정말 그렇게 굳게 믿었다.
이게 뭔지, 저건 어떤 건지 물어봐도 아 그거요, 확인해보겠습니다. 하면 되는 일만 하고 싶었고, 나에게는 딱히 큰 책임이 없는 그런 역할이고 싶었던 것도 같다. 약간 힘을 빼고 눈에 힘을 조금 풀고 머리에 긴장을 하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도 같고. 사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나 보다.
학창 시절 때를 돌아보면 반장보다 부반장이 좋았고(물론 득표수의 차이도 있지만 말이다), 회장보다 부회장이 좋았다. 동아리 회장보다는 총무가 좋았고, 발표도 1번보다는 중간 대가 좋았다.
거기에 더해서 물론 내가 첫째가 아니라 셋째 여서도 좋았다.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앞장서서 실수 없이 뭔가를 해나가야 하고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게 나에게는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뭔가 내 마음대로 마음껏 흐리멍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시험도 없을 거고, 진로 선택과 같이 큰 책임감이 따르는 선택지도 고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언젠가는 독립해서 지금! 당장! 내가 보는 눈앞에서 너는 내가 시키는 걸 해야 해! 하는 듯 지시하는 엄마의 심부름과 잔소리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무엇보다 돈도 내 마음대로 펑펑 쓸 수 있을 것 아닌가!
대학 때까지만 해도 흐리멍덩하게 잘 기억 못 하고, 일을 잘 미루고, 흐릿흐릿하게 조금씩 빈틈이 많아도 어찌어찌해야 할 때는 바짝 해가면서 겨우겨우 살아왔던 나였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26세에 첫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4대 강 조성 사업을 주가 되어 이끄는 공기업이었다.
당시 나는 새끼 감독(공사 감독관 중 가장 어리고 경력이 어린 담당자를 일컫는 속어)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안심을 했더랬다.
'나는 막내니까 시키시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말만 잘 들으면 되겠지. 나는 시키지 않은 일은 찾아서 못하지만, 시키는 건 잘할 수 있어.
나에게는 26년 묵은 셋째 딸의 눈치도 있으니. 후후. 내가 크게 결정해야 할 일도 없지 않을까? 오우! 영원히 막내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과 기대로 잔뜩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분명 시키는 것만 해도 되는 새끼 감독인데,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은 선배님들이 시키는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현장에 나가서(전공이 토목이다) 확인을 해보면 전공 책에서 봤던 내용대로 되어있지 않은 게 태반이었고, 나에게는 FM을 마음대로 바꿔서 적용할 수 있는 유두리(융통성)는 전혀 없었다.
"저기요, 대리님(시공사). 제가 배운 책에서는요 분명 이건 20cm 두께여야 하는데요. 이건 20.3cm에요. 0.3cm 차이가 나는데요.
다시 조정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할 배포도 없었고, "그래요, 제가 확인했으니까 그냥 이대로 가시죠." 하는 확신도 없었다.
그때마다 선배님들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한 뒤 결정을 요청했으니, 얼마나 얼빠진 사람으로 생각들을 하셨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지금까지는 대충 해도 중간은 갔는데 말이지.
삶을 살면서 선택해야 하는 것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
그리고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데다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는 게 주로 흐리멍덩해왔던 나에게 몹시도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흐리멍덩한 나와 비슷한 선배들을 관찰해보니, 낮에는 기죽어있다가 저녁에 피는 장미꽃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거였다.
그분들은 주로 흐리멍덩하고 잠시만(회식 때) 눈을 반짝였다가 다시 다음날 낮이 되면 흐리멍덩으로 돌아온다.
사실 나는 그분들을 벤치마킹하고 싶어 졌다.
업무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쉽게 가는 길인 것도 같고, 회식에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남자들과의 차별화를 성공시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술에 익숙지 않은 터라, 곧 몹시 말이 많아졌다. 내 속에서 창문 하나가 활짝 열린 듯했다. 세계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끔찍하게 오래 나는 영혼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가!
- 데미안(헤르만 헤세)
술이 들어가면 근엄했던 상사 분도 나에게 '정확함'을 바라지 않으며 내가 하는 실없는 말들에도 대충 넘어가 준다.
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열려있는 신여성이다'라고 강조할 수도 있고.(물론 상대방이 기억할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할 바 없으나)
내가 일은 못해도, 회식에서라도 사회인의 본모습을 보이리라. 토목인 아닌가!
나는 여자가 아니라 토목이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다.
모두 가족이라고, 어깨동무를 해가면서 폭탄주를 말고 여명 808 생채 실험을 스스로 했으니 지금의 체력을 그때 다 소진해 버렸던 게 분명하다.)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한 번은 사장님께서 현장 순방을 오셨는데, 그날이 하필 내 생일이었다.
어느 센스 있는 직원분이 나의 생일파티를 사장님이 오신 날 함께 하자며 회식자리에 케이크까지 사 오셨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더 흐리멍덩하게 지내고 있던 터라 이 자리에서는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잔뜩 술도 많이 마셔댔다.
드디어 케이크 점화식! 더 신이 나서 탄신일 기념으로 사장님과 셀카를 찍겠다며 사장님과 셀카를 잔뜩 찍어댔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어린 여자 직원의 깡다구 있는 모습에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나의 도발은 멈출 줄을 몰랐다.
화려한 생파를 마치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겨우 앉아서 어제 뭔 일이 있었나.
어제 사장님이 진짜 오셨던 게 맞나. 에고 머리야. 하고 있는데, 사장님 비서실에서 전화가 한통 왔다.
"000 씨 맞으시죠? 비서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찍으신 사진들, 그 저희 사장님과 찍으신 사진들 있잖습니까. SNS에는 올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하고.
이런 경험담은 무용담이 되어 나를 더욱 회식에 몰두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많은 웃음과 추억과 눈물과 사람들이 남았다. 물론 많은 숙취도 실수도 후회도 남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만취 상태로 곧바로 건너뛰기에는, 술 동무와 함께 서서히 취기에 젖어드는 과정이 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이게 내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의 전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을 벽지에 쓱싹쓱싹 계속 문지르다 보면 연필심이 점점 동글동글하고 뭉툭해지는 것처럼, 어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 밖의 대외적 자아로서 바짝 벼려져 있던 사람들이 술을 한 잔 두 잔 세 잔 마시면서 조금씩 동글동글하고 뭉툭해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술이 우리를 조금씩 허술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 아무튼, 술(김혼비)
신기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나의 첫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회사에 합격했을 때였다.
나의 경력을 확인하러 2번째 회사 인사팀에서 1번째 회사 인사팀으로 확인차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때 예전 회사 인사팀으로 계셨던 부서장님이 내가 정말 좋아했던 팀장님이셨다.
인사도, 안부도 자주 여쭤봤었는데 퇴사하고는 연락을 드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합격했다는 연락을 이직한 회사 인사팀에서 받으셨다며, 너무 축하한다고 전화를 주신 거다.
물론 이미 합격이 정해진 상태여서 당락에 결정적이지 않았지만, 그만둔 회사에서 이직 축하 연락을 받다니.
정말 내가 흐리멍덩하게 살길 잘했다. 생각했다.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두 번째 회사에서 5번째 해를 채워가고 있다.
26살에서 29살까지의 무용담들을 추억 삼아 하나 둘 꺼내다 보면 그때 즈음 나의 시간들을 함께 채워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사실, 시작은 하루의 대부분을 대충 하고 아주 짧은 시간만 열심히 살고 싶은 여우 같은 마음에서 시작했지 않나.
그런데, 그런 나의 흐리멍덩함과 잔머리마저도 예뻐해 주는 선배들과 나를 따라주는 후배들이 하나 둘 생겼고 그들과의 시간을 따뜻하게 채워가다 보니 자연스레 하루를 덜 흐리멍덩하게 보낼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더랬다.
사실 나는 내가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 사람들을 이용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주고받는 말과 주고받은 잔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섞여갔었나 보다.
지금도 나를 '사장까지는 할 것 같았던 아쉬운 아이'로 기억해 주는 분들.
지금은 이미 다른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나의 결혼식을 위해 멀리 지방에서까지 참석해 주고 따뜻한 축하를 보내주신 분들.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행복하냐고 물어봐 주시는 분들.
생일 때마다 잊지 않고 나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표현해 주시는 분들. 모두 정말 뵙고 싶은 날이다.
내 인생 대부분에서 나의 흐리멍덩함은 '좋은 게 좋은 거지', 또는 '착한 아이' 또는 '다 좋음' 또는 '아무거나 잘 먹음' 또는 '싫은 게 없음'으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누가 기분 나쁜 말을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누가 나에게 잘못된 정보를 말해줘도 앞에서 지적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자극적이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편안한 사람이라는, 그런 평을 듣는 게 너무 좋았다.
누군가와 음식을 먹으러 갈 때도 항상 나는 '아무거나', 가고 싶은 곳도 '너(친구)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도 '너(친구) 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지금 내 흐리멍덩함이 취향 없음 일 수 있지만, 함부로 대할 수 있음. 은 아니길 바란다.
내 주변에 남아있는 감사한 분들이 나를 소중하게 대해 주듯, 나도 누군가의 흐리멍덩함을 존중해주고 예뻐해 줘야지.
나는 오늘도 당신의 '대충'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