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망 : 오빠 나는 낮잠을 못 잔다? 오빠 : 왜? 마망 : 그러게. 낮에 아무리 피곤해도 누워서 낮잠 자는 게 영 이상해. 그리고 잠도 안 들어.
연애 초반 오빠가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이제 씻고 밖에 나가서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내리 잠을 자는 바람에 내가 퉁퉁 불어 있다가 "오빠는 왜 맨날 잠만 자!"하고 쏘아붙인 적이 있었다.
오빠는 겨우 한 달에 한번 정도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기회였는데 내리 잠만 자고 내 기분을 망친 게 머쓱했는지 "미안해. 오빠가 늙어서 그래." 했다. 나는 안 그래도 퉁퉁 불어 있었는데 농담처럼 지나가버리려는 것 같고, 데이트에 대한 의지박약과 게으름을 고작 4살 많은 나이 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
머리를 말리다 말고 물에 젖은 미역의 꼴을 하고 눈물과 젖은 머리카락을 얼굴에 범벅한 채 엉엉 계속 울었다.
연애 초반에만 해도 내가 울면 너무 기겁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던 오빠는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는 낮잠 안 잘 거라고. 정말 내가 또 이렇게 잠을 많이 자면 나를 때려서라도 깨우라고 했었다. 눈물 콧물을 다시 주워 담고 어찌어찌 단장을 해서는 데이트를 하기는 했다.
오빠는 나의 화산 폭발을 목격한 이후부터는 너무 피곤하고 졸릴 때에는 나에게 부탁하듯이 "마망이도 한숨 잘래? 그럼 분명히 컨디션도 좋아질 거고, 우리는 더 즐거운 데이트를 할 수 있을 거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오빠 나는 낮잠을 못 자. 원래 그래. 진짜야. 그래서 나는 학교 다닐 때 책상에 엎드려서 잔 거 말고는 집에서 누워서 낮잠을 잔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거 같아. 잠은 저녁에 자는 거 아니야?"라며 정색을 했다.
불쌍한 오빠.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온 신경이 '오빠는 변하지 않을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온통 쌓여있었던 것 같다. 오빠가 변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들을 온 신경을 곤두 세워가며 수집했고, 퍼즐을 맞추듯 단서들을 조합해가며 오빠를 심문했다. 내 추정이 맞다며, 요즘 들어 변해가고 있는데 맞지 않느냐. 인정하라! 뾰족해진 입으로 오빠를 쪼아댔다.
한번 생각이 그쪽으로 다 가보면 오빠의 말투(실제 대화에서의 말투는 물론이고 카톡에서의 말투), 태도, 표정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오빠가 데이트를 앞두고 낮잠에 빠져버린 그때의 사건은 나에겐 '데이트가 귀찮은가 보구나'에서 '사랑이 식었구나'로, 종국에는 '이별을 준비해야겠다'로 나의 생각을 저 멀리 옮겨두게 만들었다.
그 외의 평소 생활에서도 오빠의 말투와 오빠가 이야기를 하면서 선택했던 단어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말의 뉘앙스가 이상하다며 말의 앞뒤를 막 트집 잡았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삐죽한 말을 하면 놓치지 않고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묵언수행을 하기도 했고, 맥락 없이 기분이 나쁘다며 전화 내내 툴툴대며 어서 끊고 잠들어야 하는 사람을 붙잡고 전화 고문을 하기도 했다. 전화로 내가 툴툴거리기 시작하면 오빠는 최소 몇십 분은 앞뒤 전후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그 앞 뒤 이야기의 맥락 사이사이에는 이런 사연, 저런 이유가 있었으며 사실 나는 너의 기분을 전혀 기분 나쁘게 만들 의도가 아니었는데, 마망이의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라고 조금씩 나의 뾰족한 감정들은 동그랗게 다듬어 주었다. 어쩌다가 오빠에게 나의 툴툴거림을 받아주거나, 무작정 앞뒤 상황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을 에너지조차 남지 않은 날이면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전화로 길게 설명해야 하는 거 오빠는 너무 힘들어 마망아" 하기도 했다. 이런 날이면 나의 마음은 다시 '그래, 이게 우리의 마지막 통화구나. 이제 오빠의 얼굴을 볼 수 없겠지. 오빠의 사랑이 식어버렸으니 나 따위는 오빠에게 아무런 존재가 아닌 거야.'라고 너무나 멀리 마음이 떠나갔다 간신히 돌아오곤 했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찌 보면 오빠와 2년 넘게 연애를 하고 결혼 후 9개월이 지난 지금, 오빠는 정말 부처인가 싶다.(하지만 나는 교회에 다닌다. 아멘)
주말의 첫날인 오늘은 아침 일찍 채비를 하고 요가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쿨쿨 자고 있는 오빠의 발과 다리를 주물러주며 "요가 다녀올게. 조금 더 자요."하고 인사를 하고 요가원에 갔다. 아침 일찍 부지런히 집 밖으로 나왔다는 뿌듯함에 밥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불렀다. 내 친구 선경이를 선물처럼 만났고, 선경이 옆에 바짝 붙어 함께 한 수련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뿌듯한 마음을 가득 안고 발을 콩콩 굴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 오늘 요가원에 누구 왔었어? 마망 : 웅! 선경이를 만났어! 오랜만에 같이 수련해서 너무 좋았지 뭐야! 오빠 : 오! 좋았겠네? 마망 : 응! 오늘 너무 행복했어!
집에 돌아가니 오빠가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원두를 기계로 드드륵 갈아서 직접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치지직 스티밍 해서 만든 오빠 표 라떼에 이틀 전 큰언니가 우리 집에 오면서 사다 준 티라미수를 숟가락으로 맛있게 떠먹고 있었다. 두드러기 때문에 무서워서 한 달째 땀 흘리는 운동을 못했던 내가 어제에 이어 오늘 또 한 번 용기를 내서 요가원에 다녀온 게 기특했나 보다. 들떠 있는 나에게 이리저리 질문을 주고 내가 신이 나서 던지는 대답들을 요리조리 받아준다. 오빠랑 대화하는 건 참 즐겁다. 오빠가 있는 집에 돌아올 수 있어서 참 좋고 우리 집에 오빠가 앉아서 나를 기다려준다는 게 새삼 더 행복한 오늘이었다. 뭔가 씻기가 귀찮아 미루고 있다가 "지금 씻고 와. 안 그러면 더 귀찮아져." 하는 오빠 말에 "빵 좀 먹고 갈래"하고 미적거리는 기분도 좋았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오빠가 앉아 있는 소파 옆에 비집고 앉아 있다가 몸이 점점 누워졌다. 'ㄱ'자인 우리 집 소파는 한쪽면씩 각자의 자리가 있는데, 소파의 팔을 베고 길게 누울 수 있는 오빠의 자리를 오늘은 내가 차지했다. 오빠가 나를 기다려준 우리 집에 누워 방금 씻은 뽀송함을 가진채 소파에 누우니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오빠가 내 옆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다. 얼마나 길게 잤는지 궁금했는데, 언제부터 잠들었는지를 모르니 시간을 셈하는 건 포기했다. 눈을 뜨고 머쓱하게 "이상하네. 나는 분명 낮잠을 못 자는 사람인데. 허허" 하고 일어났다. 낮잠도 잘 잤겠다 배가 고파진다. 오늘 저녁은 오빠가 김치볶음밥 해준다고 했다.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