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만져주면 자는 남자

흰머리가 부쩍 늘었어

by mamang


오빠 : 에헴. 승모근이 아프다. 누가 좀 주물러주면 좋겠네?
마망 : 아 뭐야. 아침에 주물러줬잖아.
오빠 : 아니 그건 커피 내려달라는 신호였잖아. 허허. 그럼 이제 커피 안 내려준다?
마망 : 아 뭐야. 으힝. 너무해. 엎드려봐.
오빠 : 오예!


오빠는 승모근이 자주 뭉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분명 승모근만 '아주 조금' 주물러 주라고 해서 승모근을 꾹꾹 눌러주다 보면 나중에는 등판두, 허리두, 허벅지두! 아프다고 한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엄지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오빠 승모근 풀어주다가 내 승모근이 자라나는 것 같다. 며 찢어진 눈을 해가며 마사지를 해준다. 나중에는 내가 귀찮아하니 우리 집의 유일한 바리스타인 오빠가 마사지 없이는 커피도 없다고 해버리니 매번 입은 대빨 나와도 마사지를 해주는 수밖에(유유).


우리는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작년 8월부터 신혼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평일에도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저녁 10시쯤이 되면 마사지로 신경전을 벌였다. 등이 아프다며 내 손을 어깨 위에 올려놓는 오빠와 새우눈을 뜨며 '오빠 마사지해주다가 내 손목에 터널 증후군이 온 것 같다'고 징징거렸다.


마망 : (결국 어깨 주무르는 중)오빠 근육들이 이렇게 아프다고 난리인데 헬스장은 오늘 왜 또 다녀온 거야!
오빠 : 오빤 지금 근육들이 찢어져있어서 잠깐 그러는 것뿐이야.
마망 : 근육이 찢어졌어? 너덜너덜해?
오빠 : 응. 지금 근육들을 찢어놔서 얘들이 곧 회복되면 가서 또 찢어놓는 거지.
마망 : 아 그만 좀 찢어. 오빠 승모근 주물러 주다가 내 승모근이 더 자라나는 것 같아!!
오빠 : 내가 마망이도 주물러 줄까?
마망 : 됐어!


웨딩드레스의 핏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던 나는 결혼식을 2주 앞두고 승모근의 알을 부숴야 한다며 안마 파업을 선포했다. "오빠, 내가 고른 드레스는 목이 짧아보일 수도 있어서 승모가 자라 있으면 안 된다고! 내 승모는 어쨌든 내가 스트레칭하고 괄사 마사지하고, 겨드랑이 치기(림프 마사지), 오일 마사지 등등 셀프로 할 테니까 당분간은 오빠의 마사지도 셀프로 했으면 좋겠어!"라고 외쳤다. 그때 오빠의 공허한 표정이란.




이번 주말도 일정이 없는 덕에 여느 주말과 비슷하게 조용하고 고요한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맛있는 낮잠을 자고 머쓱하게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도 맛있게 먹은 오빠가 낮잠에서 깬 나를 보더니 역시나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한다. 주말마다 내가 먼저 거실에 나와 혼자 놀다가 다시 방에 들어가서 오빠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깨워주고,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을 시작하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하기도 했고, 나 혼자 요가를 다녀와서 너무 좋은 에너지를 만들고 온 게 미안했다. 좋은 에너지를 오빠에게도 나눠주고 싶어 선뜻 "그래,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주물러 주지." 했다.(오빠 방긋)

오빠의 상부 승모근을 꼭꼭! 하부 승모근을 꾹꾹! 광배를 꽉꽉! 눌러주고 기립근을 쭈욱 쭈욱! 밀어 늘려주고 허벅지는 다시 꾹꾹! 종아리는 주물 주물! 아킬레스건은 조물조물! 풀어줬다. 후면 전체를 마사지해줬더니 오빠가 노근 노곤해졌는지 오빠의 큰 눈이 절반쯤은 감긴다.

아주 재우는 김에 확 잠들게 만들어버릴 참으로 오빠의 뒤통수 쪽을 대충 쉭쉭 저어봤다. 오빠는 마사지를 해주면 눈이 반쯤 감기고 흰머리를 찾는다고 내가 뒤통수를 휘젓기 시작하면 눈이 완전히 감기며 잠이 푹 들어버린다. 2주 정도 전에 오빠의 뒤통수를 아무리 찾아봐도 흰머리가 한 개도 없어서 흰머리 사냥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별 기대 없이 대충 휘저어보고 마무리를 하려는데, 글쎄 월척이었다. 최근에 올라온 듯한 흰머리가 대충 봐도 3개 정도 귀엽게 솟아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흰머리를 뽑는 걸 가장 즐거워했다. 엄마는 젊을 때부터 새치가 심해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버리는 바람에 뽑을 게 없었고, 할머니는 흰머리가 워낙 없으셨고, 아빠는 그런 할머니는 닮아서 더더욱 흰머리가 별로 없어서 흰머리를 발견할 때면 항상 너무 설레었다.)


나의 흰머리 빅데이터에 의하면 대부분의 흰머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뒷통수(앞뒤 짱구 할때의 그 뒤짱구 부분!)에 포진되어 있다. 나의 경우 20대에 한번 호기롭게 반묶음 머리를 했다가 뒷통수에 삐져나와 있는 흰머리 하나를 친구가 발견해버린 바람에(분명 20대 초반이었는데.. 허허 나는 엄마를 닮은거?) 다시는 반묶음을 하지 않는다.(물론 나의 경우엔 그랬다)

오빠의 경우 역시 나의 빅데이터에 딱 들어맞는 높은 확률로 80프로의 흰머리는 뒷통수에, 나머지 10프로는 오른쪽 눈썹 윗 부분에 있는 이마와 머리털의 경계 부분에, 나머지 10프로의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 여기저기 알아서 위치해 있다. 오늘 처음 만난 귀여운 흰머리들은 100프로 오빠의 뒷통수에 자리잡고 있었다. 족집게를 가져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씩 뽑다보니 어느새 무아지경으로 7개나 찾아서 뽑아버렸다.

정신없이 다 뽑고 나니 오빠는 이미 쿨쿨 낮잠에 빠져버렸고 나는 7개를 뽑았다고! 자랑할 사람이 없어서 오빠가 일어나면 자랑해야지 하고 귀여운 흰머리들을 자랑스럽게 거실 탁자에 늘어놓았다.


뽑을 때는 몰랐는데 오빠가 너무 짠하게 느껴졌다. 오빠가 맨날 어깨가 아프다고 하는데 그게 가장의 무게인 건가? 내가 요즘 두드러기 때문에 힘들다고 징징대서 오빠의 귀여운 흰머리들이 최근에 자라난 걸까? 다음에 오빠가 안마해주라고 하면 투덜대지 않고 해줘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최근 오빠가 마사지건을 주문하고 신나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마사지를 귀찮아 하는 것 같아서 오빠는 최근에 마사지건을 주문했는데, 마사지건중에 소음도 가장 적고 성능도 아주 좋은걸로 주문했다고 한다. 오빠가 구독하는 운동 유투버의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유투버 : "저는 마사지건을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걸로(폼롤러)로 근육을 풀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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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 (분명 혼잣말인데 다 들림)나는 마사지건 해줄 사람 있는데
마망 : 오빠 뭐라고? 응?
오빠 : 허허

그.. 그래 오빠 마사지 건으로도, 내 손으로도 마사지 많이 해줄게. 흰머리는 많이 나지 마.

(앗 뭐지?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오빠가 이발하고 오면서 수박을 사다줬다. "어깨 주물러줘서 고마워"하며 "다음에 또 주물러줄꺼지?"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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