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먼저 끊는 남자(a.k.a. 선비 같은 남자)

그녀의 연애 빅데이터

by mamang


마망 : 오빠 왜 전화를 먼저 끊어?
오빠 : 마망이 할 말 다 끝났던 거 아니었어?
마망 : 아니,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전화 끊을 때까지 기다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빠 : 할 말 다 했잖아. 그럼 끊어도 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마망 : 응 아니 그건 맞지만.. 내가 끊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빠 : 응????


'사랑하는 것' 보다 '내가 지금 사랑을 받고 있는 게 맞나? 아닌가?' 에만 집중을 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너무 멋진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 지금이 바로 그 연애의 풋풋함을 즐겨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에 감사하기보다,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이 사람이 변하거나 나를 떠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불확실한 두려움보다 지금 여기의 확실한 행복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왜 나는 그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불안했던 걸까.


신랑과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몇 주를 꾹꾹 참다가 이야기한 게 있었는데, 내가 전화를 끊기 전에 남자 친구(지금의 신랑)가 전화를 먼저 끊는 부분에 대해서였다. 매사에 친절하고 따뜻하고 사려 깊은 그였는데, 당시 딱 하나 마음에 걸렸던 게 그거였다.(당시 내 속상한 마음을 대변하려면 '끊는다' 보다 '끊어버린다'가 적합한 것 같다)


그 당시 연애를 하면서 '사랑받는다는 증거' 또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증거' 몇 가지를 사랑의 마지노선 마냥 세우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안 해주는 것'이었고, 예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어

늦게까지 술을 마시느라 나를 걱정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회식이나 약속에 가서 자리를 옮기며 연락해주면 좋겠어

집에서 쉬더라도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해주면 좋겠어(이쯤 되면 내가 남자여도 피곤하겠다)


사실 전화를 먼저 끊지 않는 것에 대한 기준은 전화를 먼저 끊는 남자가 있다는 빅데이터가 수집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마련해놓지 못했다. 나는 오빠가 전화를 먼저 끊는 그 몇 주 동안 '전화를 먼저 끊는 남자'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의 온 신경은 '전화를 누가 먼저 끊었는지'에 가 있었다. 어쩔 때는 오빠가 전화를 먼저 끊지 않게 만들려고 "응. 알겠어. 이따 보자" 또는 "잘 자"하고 핸드폰을 귀에서 떼자마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보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가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는 이유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아 쪼잔해 보이는 것을 감수하고 말을 꺼낸 것이다.


오빠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오빠가 전화를 먼저 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장의 빈약한 논리와 근거들을 앞뒤 없이 나열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한다"라고 지속적으로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오빠는 할 말을 다 했는데 왜 수화기를 붙들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긴 채 통화를 계속해나갔고 결국 내 분을 못 참고 내가 훌쩍거리기에 이르렀다.


오빠는 나의 억지 주장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내가 주절주절 하는 말을 찬찬히 잘 들어주고 살펴줬다. 다만, 절대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전화를 먼저 끊는다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설명해줬고 입이 대빨나온 나는 수화기 건너편의 오빠에게 "알겠어.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라고 했다.


불안한 나의 마음은 오빠와 이야기를 해보니 어느 정도 진정되었고 "전화를 먼저 끊는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 습관일 뿐이다."라는 빅데이터로 나에게 수집되었다.


당시 연애 초반이었고 오빠에게도 마망이라는 사람에 대해 빅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았던 터라 오빠의 당황스러움이 지금에서야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선비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친구들이 이상형을 물어왔을 때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오빠와의 결혼이 결정되기 전까지 "지금 연애를 하니 행복하니"하는 친한 친구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나는 연애를 안 하고 있을 때는 내가 쓸모없는 사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인 것 같고 겨우 연애를 시작하면 이 사람이 변하지 않을까, 나를 떠나버리지 않을까 불안한 것 같아.


지난 시간의 나에게 연애의 불안은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예방주사 역할을 해줬다. '연애의 설렘과 함께 방방 떠있다가는 언젠가 추락할 거야. 그럼 무척 아플 거야

고통을 대비하기 위한 추락방지 쿠션이 있어야 해.' 라며 항상 마음 한편에는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또는 '이 사람의 마음이 변했다는 시그널을 찾아내야 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불안한 마음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안정감보다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빠와 결혼을 한 지금, 선비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감정이 들쑥날쑥 인 나와 달리 인내심도 참을성도 많은 오빠가 연애기간의 역경을 견뎌준 게 너무 고마울 뿐이다.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중략) 헌신을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2년 넘는 연애와 10개월의 신혼 기간을 지나왔다. 나는 여전히 사랑에 대한 그의 시그널을 집요하게 찾고 있고 결혼 후 오빠의 말과 행동에 대한 빅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오빠가 식탁 앞에서 하는 잔소리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골고루 먹어서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고, 집에서 바쁘게 구시렁거리면서 집안일을 하는 이유는 나에게 눈치를 주려는 게 아니라 집안일을 본인이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고, 나아가 생색을 내고 싶어서다.


내가 결혼한 오빠에 대한 탐색을 다 할 때까지 자꾸 오해하고 징징거리고 짜증을 내고 때로는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도 선비 같은 우리 오빠가 그 고행의 기간 또한 부디 잘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너를 이런 식으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네가 이것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놓여.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안 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오늘 아침 풍경

오빠 : 뭐해?
마망 : 응 글 쓰고 있어(제목을 본 오빠)
오빠 : 전화 먼저 끊는 남자? 아 뭐야 내 허락도 안 받았잖아!
마망 : (씩 웃으며) 오빠는 나의 뮤즈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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