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남동생이 태어나는 기분
백두산 천지에서 야호
혜원은 그날도 식당 방 내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순자의 식당은 혜원의 집과 학교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한 개 100원짜리 소시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거나, 피카추 모양 돈까스에 소스를 발라 먹으며 문방구를 가득 채운 친구들을 구경했다. 혜원은 학교에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배회하다 여유 있게 식당에 가는 그 이른 오후를 좋아했다.
혜원의 담임 선생님은 퇴직을 앞둔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는데, 매일 같이 지난 방학 때 다녀온 백두산 천지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혜원과 친구들은 백두산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아닌지도 잘 몰랐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의 관심 없는 멍한 눈빛에 헛기침을 하고는 백두산 천지에서 손수 찍어온 비디오를 틀어줬다. 비디오가 시작되자마자 너무 본격적으로 배낭을 멘 어른들이 나타났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건 뭐든 넋을 놓고 바라보던 혜원과 친구들은 다짜고짜 산 중턱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여정에 집중했다.
화면 속 어른들은 뭔가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 선생님은 비디오 가득 앞사람 뒷모습을 찍어왔다. "금방이야. 곧 나올 거야." 아이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선생님은 여러 번 강조했다. 잠시 뒤 드디어 백두산 천지가 등장했다. 뭔가 뒤집힌 아이스크림 같기도, 계란 노른자가 너무 큰 계란 후라이 같기도 했다. 혜원과 친구들은 백두산 천지에서 여러 어른들이 야호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박수를 쳤다.
혜원은 내실에 누워 오늘 본 백두산 천지와 소리 지르던 어른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자 가방 옆에 삐죽 나와있는 공책 같은 것이 보였다. 혜원은 옆에서 졸고 있는 순자에게 물었다. "엄마. 산모 수첩이 뭐야?" 순자는 분홍색 얼굴을 하며 부끄러워하듯 "곧 동생이 태어난다는 말이야."라고 말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 순자의 배는 놀랍도록 크고 빠르게 부풀었고, 순자는 더 이상 혜원이 좋아하던 검은색 원피스를 입지 못하게 되었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서 혜원의 성별은 미리 알지 못했고, 여자인 혜원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순자는 발전한 기술 덕에 몇 개월 이르게 아들 낳을 자의 당당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순자의 배가 점점 더 커지면서 혜원은 괜히 심술부리는 일이 늘었다. 순자가 거실 소파에 옆으로 누워 있으면 혜원은 실수인 척 순자의 배를 깔고 앉았다. 그때마다 순자는 화들짝 놀라며 찰싹 혜원의 엉덩이를 때렸다. 혜원은 머쓱해서 바닥에 주저앉았고 태어날 동생이 제발 여동생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몇 개월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이 태어나자 고모할머니, 작은할아버지, 이모할머니 등이 갑자기 전국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돌아가며 혜원의 손을 잡고 "우리 혜원이가 터를 잘 팔아서 남동생이 태어났다." 하며 친한 척을 했다. 누군가 혜원에게 오백 원을 선심 쓰듯 건넸는데 그걸 받으니 그래도 기분은 조금 좋아졌다.
다음 날 학교에서 백두산 천지 선생님이 나를 불러 물어봤다.
"그래. 동생은 태어났냐?"
"네. 남동생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용돈은 줬냐? 터 잘 팔았다고?"
"네. 오백 원 줬어요."
"오호 그래. 넌 오백 원짜리 인생이구나."
백두산 천지 선생님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백두산 천지에 대한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혜원은 자리에 돌아가 여전히 앞사람 뒷모습뿐인 백두산 천지 비디오를 봤다. 여전히 오르고 오르고 계속 오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으로 가득했다. 혜원은 순자, 상영, 복덕에게 남동생의 탄생은 아들이 없는 산을 내내 오르다 드디어 그 정상에서 아들을 만나 야호를 외치는 것일까 생각했다.
혜원은 이제 막내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갓 태어난 신생아의 귀여움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귀여움을 빼앗긴 누나 혜원은 지난 8년이 너무 짧게 지나갔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지 않을 막내딸의 호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