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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l 12. 2020

[리뷰] 퇴사 말고 휴직(최호진)

남자, 파랑새를 꿈꾸다



"가끔은 내가 잘못된 길에 가고 있어도 바른 길로 다시 안내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할 때가 있어. 어릴 때는 그 역할을 부모님이 해주셨는데 말이야."


 몇 년 전, 일상의 고달픔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화 중 큰 형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시간이 꽤 지난 후라 단어의 선택과 그 조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요는 "이제 내가 가족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고, 혹여나 내가 바르지 않은 길로 가고 있다면 누가 나에게 알려주지?" 하는 불안감이었던 건 정확하다.

 평소 형부는 속엣말을 잘하지 않으시기에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꽤나 놀랐던 걸로 기억한다. 함께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큰언니가 놀라지는 않았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형부는 남자 휴직이 드물었던 5년 전, 작은 조카가 태어났을 때 조카를 돌보기 위해 휴직을 하셨다. 평소 큰언니의 꿈을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자였던 형부는 언니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큰 결심을 하셨다. 당시에는 휴직 중인 형부가 집안 살림을 자꾸 사들이는 모습에 주부 우울증 아니냐며 큰언니와 내가 형부를 놀리기만 했었는데, 최호진 작가의 '퇴사 말고 휴직'을 읽으며 그 당시 형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형부는 조직 내에서 뒤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을까, 눈치가 보이지는 않았을까, 당장의 경제적인 부담은 없으셨을까, 가족들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포기들을 해오셨을까. 연령대가 비슷한 최호진 작가의 글들을 읽는 내내 많은 부분에서 큰 형부와 오버랩되어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자주 인용하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이 선택이 내 인생에 어떤 나비효과로 돌아올지에 대해 몹시 궁금해한다. 신중하게 내린 인생 속 결정들이 착실히 쌓여온 요즘에 들어서 선택의 중요성을 많이 느껴서인 듯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리고 새로운 길이기에 무서웠다.


 '퇴사 말고 휴직'의 저자는 본인의 휴직을 넘쳐나는 용기와 패기로 포장하지 않는다. 본인도 두려웠고, 염려되었으며 확신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본디 범상치 않은 사람이기에 나의 어떤 선택이던 그 뒤에 기대하던 성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부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후회할지언정 인생에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아빠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의 중대한 선택의 주체는 '나'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는 나에게만 영향을 미치니 책임 또한 내가 지면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의 인생, 나의 선택, 나의 결과로 귀결되는 그동안의 선택들은 저자가 고민했던 선택에 비해 아주 경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택이 나의 아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느 누가 쉽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 하나의 꽃으로 불리고 싶었지만 나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나를 특별하게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제는 누구와도 대체 가능하다는 것은 내 삶의 에너지를 갉아먹어 버렸다.


 나는 개개인은 유일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본래 대체가 불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개개인의 반응은 동일할 수 없으며, 크고 작은 능력치와 분출할 수 있는 에너지 또한 아주 상이하다. 인간은 본인이 유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대체당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마음속의 두려움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다. 실제로 최근 직장에서 출산휴가에 들어간 동료가 자리를 비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조용히 페이드아웃(fade-out)되는 듯한 현상에 나 또한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누군가가 맡았던 일들을 내가 맡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일이 맡겨지면 그 누군가는 그 일을 해내면 그게 다인 조직에서 대체하고 대체를 당하고 있다. 개성은 업무 처리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원래 하던 대로 하면' 페이드 아웃된 그 누군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다.

 저자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남성 휴직자라는 주홍글씨의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휴직을 결심하고 에너지를 분출해서 무엇이든 도전하고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 잠재력을 깨우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용기 있는 선택을 결국 해냈고, 자신의 가능성을 불태우기 위해, 가족들과 더 행복해지기 위해 휴직을 해냈다.

 자신 안의 가능성을 믿어준 그 스스로가 대단하고 부러웠다. 그 무엇보다 남편의 휴직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줄 만큼 현명함을 갖춘 그의 아내가 부러웠다. 나는 내 남편에게 그런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그의 휴직 이야기 중 그가 새벽 달리기를 시작했던 이야기에서 처음 눈물을 글썽였다. 그가 달리면서 외친 말들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미치도록 나를 사랑한다.

 어찌 보면 흔한 자기 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자기 암시, 확언의 말인데 다를게 뭐 있나 하고 지나갈 수 있는데. 휴직 전까지의 고민, 달리기 전까지의 고민, 달리고 나서의 외침. 일련의 과정들을 위에서 아래로 지켜보는 느낌이 들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알고 싶었을까. 얼마나 달라지고 싶었을까.' 생각했다. 인생에 있어 많은 가장들이 얼마나 미치도록 알고 싶고, 미치도록 힘들까. 또 휴직을 할 수 없는 이들 또한 이 책을 읽고 저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며.


 저자는 휴직의 밝은 면만 독자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치열하게 시간을 쪼개어 사용하기 위한 자신의 고군분투를 가감 없이 공개한다. 또한, 자신의 휴직을 솔직하게 '충동적'이지만 다소 '계획적'이었다고 말하여 휴직을 하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견뎌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버킷리스트, 자기 혁명 캠프, 지리산 단식원 경험을 통해서 휴직 초반, 자신의 열정을 일깨웠으며 때로는 조바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알려준다.

저자는 휴직 기간을 지내오는 과정 또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조바심, 초조함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다.



집에서 엄마가 주 감독이고 아빠는 보조감독이지


 결혼한 친구들과 가사 노동 분담과 육아에 대한 엄마의 비중을 이야기하며 내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다. 엄마와 아이의 애착 사이에서 아빠들은 대부분 몇 발자국 뒤에 물러서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육아와 자녀 교육에서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대부분 엄마들의 노력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노력 덕에 아이들에게 항상 엄마는 선순위, 아빠는 후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자가 마음먹고 실현했던 것처럼 온전한 70일의 휴가를 아내에게 주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오롯이 홀로 '주 감독'이 되어볼 용기를 가질 아빠가 몇이나 있을까. 글의 초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본인이 화를 잘 내는 아빠였다고 고백한 저자는 아이들과의 캐나다 여행, 미국 여행을 온전히 보내며 어린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온 마음을 다해 순간순간 담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이름이 도미닉이야. 나보다 두 살 많은데, 나처럼 종이접기를 좋아해.


저자의 아이들이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캠프 초반 주눅이 들지 않을까 걱정했던 부분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는 이름도 몰랐던 외국인 친구의 이름을 말해주며 캠프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던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모 미소'가 씩 번졌다. 참 빠져들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 그가 얼마나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은지, 능숙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또한 알게 해 준다.




 저자는 책의 챕터 간에 '저자니까 해줄 수 있는' 휴직에 대한 Tip들을 꼼꼼하게 공유해준다. 다양한 휴직 에피소드, 육아 이야기 등을 읽는 중간중간 저자만이 해줄 수 있는 꿀팁들을 배치하여 휴직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자세, 고민해야 하는 것들, 아이들과 여행을 하면서 필요한 팁들을 안내해준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줄을 많이 쳤던 팁은 저자가 인상 깊게 읽은 도서들의 목록과 간단한 서평이었다. 모두 나의 필독서 리스트에 올려놓았으며, 차분히 읽어볼 예정이다.



 이 책을 읽는 며칠간 회사에 출근하면서 책의 표지가 보이지 않게끔 가방 안에 신경 써서 책을 잘 넣어놓았다. 괜히 표지라도 밖으로 삐죽 보이게 되면 '퇴사 말고 휴직'이라는 제목 탓에 나나 동료들이나 상호 간에 민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책을 펼친 이후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며 울먹거렸다가 미소를 지었다가 후루룩 읽는 바람에 아주 짧은 며칠만 조심하면 됐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될 잠재 독자들에게 제언하건대, 이 책을 제3장 '새로운 도전 - 휴직의 끝은 퇴사가 아니다'부터 읽어보시길 바란다. 1장, 2장을 거쳐서 3장을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던 나는 3장을 가장 먼저 읽을 걸! 하는 후회를 했다. 3장을 통해 그가 회사에 쏟았던 열정과 애정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고, 그만큼 휴직을 고민하게 되었을 때 쉽지 않을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구나 회사에서 할 법한 고민들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자신의 무기력, 자신감, 그리고 욕심들을 솔직하게 펼쳐낸다. 그리고 좋은 직장, 좋은 직업에 대한 부분에서는 무언가를 업(業)으로 삼는다는 것의 고민 부분은 무척이나 공감했다.


우리 회사가 좋은 직장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직업인지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직업은 '어디에 다니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더 집중한 개념이다.
좋은 직업의 가장 큰 기준은 개인의 만족감이다.
적당히 체념하기엔 불만이 너무 컸고 도전하기엔 두려움이 커서 안주해 버리고 말았다.


 작가는 휴직이라는 시간 동안 직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는 처절하게 노력하고 싶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민의 시간을 용감하게 직면해 나갔다.


모든 것은 내게서 비록 되었다

 또한 그는 회사에서 비일비재하게 겪는 다양한 사례(스테이플러 45도 각도, 학벌에 대한 프레임, 승진에 대한 미련)를 통해서 직장인이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시각에서 풀어내 준다. 회사에 대한 그의 솔직한 조언들을 3장을 통해 미리 예습한 후 그의 생생한 휴직 스토리를 듣게 된다면, 그의 휴직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는 휴직 기간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가기 전, 이제 게임의 법칙을 알아버렸다고 말한다.

에고는 수시로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주변의 가벼운 바람에도 여전히 나는 흔들린다.
하지만 무리할 생각을 없다. 게임의 법칙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성장'이라는 세계에서는 빨리 가려고, 힘을 준다고 더 잘 나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힘을 뺄 때, 마음의 여유를 가질 때 더 성장할 수 있는 게 이곳의 룰이다.

 회사에 복직을 하더라고 자신이 매일 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삽질'을 할 것이며, 그 속에서 '점진적 과부하'를 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꾸준함과 포기하지 않음, 약간 힘을 뺀 상태의 중요함을 이제 실전에서 활용할 차례다.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평강공주 같은 아내다. 바보가 아닌 '똘똘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것은 내 자존심이다. 어찌 됐든 나는 아내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도 아내 덕분에 만들어질 것이다.


 세상에 자신의 아내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자는 아내에게 인정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성과의 척도로 생각할 예정이라고 선포한다. 이는 그만큼 아내의 현명함과 지혜로움이 인정할 만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엄마와 아빠의 역할은 물론이고 아내와 남편은 가정에서는 대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함께 아내와 남편이 서로 지지하고 응원받는 것, 무엇보다 믿어준다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 휴직 끝에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만족하고 이미 감사하고 이미 고요하고 이미 즐거우면서도, 여전히 행복이라는 파랑새 같은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숙제를 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 최인철, '굿 라이프' 중


 그는 그의 아내가 블로그에 남긴 댓글이 진짜 자신의 파랑새였다고 말한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더 자주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휴직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직이라는 선택을 한 후 치열한 고민과 부딪침을 통해서 어떤 것을 알고 싶었는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분출하는지를 알려준다.  애쓰는 것이 아닌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며, '회사에서는 나를 대체할 사람이 있지만, 가정에서는 나를 대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가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을 어떻게 성장시켜 나가는지와 함께 때로는 '그래,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몸에 약간 힘을 빼고 내 가족들을 있는 그대로 더 사랑해 주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을 일러준다.

 작고 확실한 행복을 '소확행'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지난 1년 동안 찾아낸 진짜 파랑새는 '대확행'이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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