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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Aug 29. 2020

[리뷰]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김원희)

소녀, 아가씨의, 아줌마의 시간을 지난 할머니의 이야기

from 달 출판사 포스트



54년생 우리 엄마는 32년 동안 식육식당을 운영했다. 그녀는 2014년 여름, 식당 문을 닫았다. 엄마 아빠는 올해만 해야지, 진짜 올해만 해야지 해왔던 장사를 드디어 접게 되었고, 나는 '이제 일을 안 해도 되고 매일 놀면 되는 기분은 어떤 걸까.' 하는 막연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번듯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막내딸(나)까지 포함해 한 지붕 아래 백수 5명(나, 남동생, 엄마, 아빠, 할머니)이 나란히 지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집안 백수들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평화로운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어른 백수들이 다들 너무 전투적으로 나름의 일을 만드는 바람에 젊은 백수들까지 어른 백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40년간 시어머니에게 살림을 맡겨왔던 엄마는 그동안 못해본 살림을 해보겠다며 할머니와 한바탕 살림 전쟁을 치렀다. 그녀는 우당탕탕 쉴 새 없이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냉장고를 정리하며 또 다른 날들을 바쁘게 만들기 시작했다. 나와 남동생은 살림 전쟁에서 엄마, 할머니의 음식 중 뭘 더 맛있게 먹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빠는 약초를 캐는 아저씨들과 어울리며 봉고차를 얻어 타고 이산 저산으로 다니기 시작했고 하루가 머다 하고 각종 산나물, 약초, 산삼을 캐가지고 오기 시작했다. 철이 되면 도토리를 몇 포대씩 주워오는데 나와 남동생은 손이 까매지도록 도토리를 까야하는 일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시 팔십 대 후반이었던 우리 할머니는 매번 "이 망할 놈의 도토리!" 하셨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내가 도토리를 까놓으면 다라이(빨간 고무대야)채로 가져다가 믹서기로 잔뜩 갈아놓고 매일 도토리묵을 끓이고 굳히기를 반복했다. 우리 할머니는 항상 같은 멘트를 반복했는데, 매번 "중금속 해소(해독이라고 해야 하나)에 좋다. 이런 거는 돈 주고도 못 사 먹는다." 하며 맨손으로 도토리묵을 들어서는 밥 먹고 있는 나와 남동생 입에 쑤셔 넣어줬다.


우리 가족들은 놀 시간을 줘도 놀지를 못한다며 무슨 일이냐며 나와 남동생은 혀를 내둘렀다.


엄마, 아빠, 할머니는 왜 한가로이 놀기만 하며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김원희 작가님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를 읽고 나서는 우리 집 어른 백수들이 부단히도 열심히 시간을 채우고 싶어 했던 이유들을 하나씩 이해하게 되었다.




김원희 작가는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에서 '할머니'를 담당하고 계신다. 작가님은 본인의 소개를 이렇게 열었다.


이 세상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소녀와 아가씨의 시간을 보내고 아줌마의 시간을 지나 이젠 할머니가 되었지요.


아참,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 아줌마였던 사람은 없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드니 괜히 불특정 다수의 할머니, 아줌마들에게 미안해졌다.(우리 엄마, 할머니 포함)


몇 장 넘기지 않아 할머니의 첫 글을 읽어 보고 나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더 섧고,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인내하고, 더 아픈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것들을 부여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끝없이 해나가야 한다.


정년퇴직을 하는 선배님들에게 "아직은 너무 젊으세요"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했던 내 말들이 입바른 말들이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인생에서 더 이상 슬픈 일, 힘들일이 없고 서운한 일도 없어야 어른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숨기고 있었는데 말이다.




원희 할머니는 차에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밥 먹으라면 먹는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패키지여행' 말고 '해외 자유 여행'을 선택한다. 그녀는 "이 멋스러운 단어가 주는 풍족함 이상으로, 내가 그 어려운 행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더 만족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나이 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낼 수 있는 것, 그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할머니는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할머니'라는 호칭에 갇혀있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발랄함, 특유의 세심한 감성으로 사람 구경을 했던 여러 에피소드를 글로 녹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예상대로 이 책을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읽어버렸고, 정확히 말하자면 7번 울컥했고 9번 피식 풉 큭큭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해외여행을 가서 투어 가이드를 하는 젊은이의 옷이 해져서 터진 것을 내내 마음에 걸려한다. 여행객에게 방을 빌려줘서 생활비를 버는 가난한 유학생 아가씨를 위해서는 그 집에 묵는 내내 딸의 집을 청소하듯 싱크대까지 박박 닦아준다. 헤어질 때는 용돈까지 쥐어준다.


딸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 사흘간 방을 빌려 주고받는 돈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는 사흘 동안 매일 내 집 청소를 하듯이 구석구석 방을 청소했다. 특히 싱크대를 열심히 닦았다.
그냥 여느 엄마의 보살펴주고 싶은 작은 마음뿐이었다.

 

왜 엄마들은 매번 이런 마음일까 싶어 속이 상해서 그만 울컥해버렸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버린 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녀의 방식대로 인정했다. 그리고, 할머니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그녀만의 방법을 찾고 행한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여행을 하면서 판단력과 순발력이 떨어져 버스 시간 한참 전에 정류장에 도착해 있으려고 노력하고 일정을 여러 번 숙지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일상에서 웃지 못하거나 웃어넘길 수 있는 실수들을 이야기하며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젊었더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은근히 책임을 전가하며 상대를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늙은이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판단력도 순발력도 이미 둔해졌음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 든 이를 혹여나 젊은이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젊은이의 한마디에 황홀감을 느끼기도 한다.


막내아들보다 더 어린 스물하나의 젊은이가 환갑이 넘은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We are all friends"라고 해주었다. 그 말엔 어떤 황홀감이 있었다. 청년의 한마디가 60년 굴곡진 인생에 보상처럼 느껴졌다.




물론 원희 할머니도 '할머니'라는 호칭에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할머니라니……. 날 부르는 소리인 줄 전혀 몰랐다. 아무도 몰래 고개 숙여 혼자서 킥킥 웃었다. "아줌마, 아줌마!" 했으면 나는 바로 뒤돌아보았으려나 하고.


"할매 다리 아무도 안 본다."
순간, 내 손바닥이 아들 등짝으로 내리 꽂혔다.
결국, 스타킹을 벗어버리고 집에서 꽤 떨어진 마트까지 찾아가서 새 스타킹을 사 신었다.
그날따라 참 서운하게도, 오래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린 듯한 본인의 모습이 낯설고 슬프게 느껴졌다고도 말한다. 한 번은 TV에 나오는 본인의 모습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얼얼한 기분이 들어 묵은 앨범을 꺼내 보며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던 그녀다.


예전의 그녀는 어디 있는가? 갑자기 그녀가 그리웠다.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있는 오래된 앨범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곳에도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그리워하는 그녀가 있었다. 그리운 그녀를 만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젠가부터 우리 엄마가 "나는 사진 찍기 싫어" 했던 게 생각이 나며 내 눈물도 함께 왈칵 쏟아졌다.


원희 할머니가 목욕탕에서 등을 어렵게 밀었던 이야기, 외판원으로 일하다가 개에게 물렸던 이야기, 버스에서 문신한 아저씨에게 '아줌마'라는 말을 듣고 기사 아저씨에게는 '할매'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 보니 어느새 남은 책장이 얇아지고 있는 게 너무 아쉬웠다. 책을 읽다 말고 그녀의 블로그에 찾아가 살며시 이웃 신청을 했다.(그녀의 세 번째 책이 나올 날을 기다리며 할머니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응원해야지)


내 블로그 이름은 '할매는 항상 부재중'이다.


언젠가 마지막 그 시간이 왔음을 직감하는 날, 나는 '할매는 천국으로 여행 중' 문패를 내걸 것이다. 그럼 내 아이들이 많이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는 여전히 멋진 곳을 여행하는구나,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아침의 무력감과 우울감이 싹 가셨다. 꿈이 있으면 그 두근거림만으로도 인생을 살 만하다.


이제 원희 할머니가 남은 그녀의 시간을 오직 그녀만을 위해, 그 누구의 싱크대도 닦아주지 말고 그 누구의 밥도 차려주지 말고 더 신나게 여행하며 살아주시길 바란다. 고로, 나는 80살, 90살, 100살 원희 할머니의 행복한 여행기를 더욱 기대하는 바이다.




원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가 드러누워 티브이만 보고 시간을 무상하게 흘려보내기에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이제 쉬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시에 막 환갑을 넘긴 아주 젊은 나이였고, 좀 편하게 누워서 몸을 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우리 할머니는 지금 구순이 넘으셨지만 허리도 굽지 않으셨다.


그들은 지금도 가족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산삼을 캐오고 도토리묵을 만든다.


우리 엄마가 처음 할머니라고 불렸을 때가 언제였을지, 아빠가 길에서 할아버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지, 우리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가 아니었을 때는 어떻게 불렸었는지. 할머니가 아줌마로 불렸던 적이 언제였는지. 물어보고 싶어 졌다.


결혼 1년 차인 나는 아직도 '친정'에 내려간다는 말보다 '우리 집'에 간다고 말하는 게 익숙하다.(남편이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지금 35살인 내가 30살까지 살았으니 그렇다고 말하면 이해해주겠지) 다음에 우리 집에 내려가면 엄마, 아빠, 할머니가 열심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을 눈에, 핸드폰에 가득가득 담아와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집 귀여운 할머니 둘, 할아버지 한 명의 소중한 지금을 내가 기억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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