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아가씨의, 아줌마의 시간을 지난 할머니의 이야기
이 세상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소녀와 아가씨의 시간을 보내고 아줌마의 시간을 지나 이젠 할머니가 되었지요.
아직은 더 섧고,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인내하고, 더 아픈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것들을 부여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끝없이 해나가야 한다.
내가 나이 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낼 수 있는 것, 그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딸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 사흘간 방을 빌려 주고받는 돈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는 사흘 동안 매일 내 집 청소를 하듯이 구석구석 방을 청소했다. 특히 싱크대를 열심히 닦았다.
그냥 여느 엄마의 보살펴주고 싶은 작은 마음뿐이었다.
젊었더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은근히 책임을 전가하며 상대를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늙은이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판단력도 순발력도 이미 둔해졌음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막내아들보다 더 어린 스물하나의 젊은이가 환갑이 넘은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We are all friends"라고 해주었다. 그 말엔 어떤 황홀감이 있었다. 청년의 한마디가 60년 굴곡진 인생에 보상처럼 느껴졌다.
할머니. 할머니라니……. 날 부르는 소리인 줄 전혀 몰랐다. 아무도 몰래 고개 숙여 혼자서 킥킥 웃었다. "아줌마, 아줌마!" 했으면 나는 바로 뒤돌아보았으려나 하고.
"할매 다리 아무도 안 본다."
순간, 내 손바닥이 아들 등짝으로 내리 꽂혔다.
결국, 스타킹을 벗어버리고 집에서 꽤 떨어진 마트까지 찾아가서 새 스타킹을 사 신었다.
그날따라 참 서운하게도, 오래 화가 풀리지 않았다.
예전의 그녀는 어디 있는가? 갑자기 그녀가 그리웠다.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있는 오래된 앨범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곳에도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그리워하는 그녀가 있었다. 그리운 그녀를 만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블로그 이름은 '할매는 항상 부재중'이다.
언젠가 마지막 그 시간이 왔음을 직감하는 날, 나는 '할매는 천국으로 여행 중' 문패를 내걸 것이다. 그럼 내 아이들이 많이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는 여전히 멋진 곳을 여행하는구나,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아침의 무력감과 우울감이 싹 가셨다. 꿈이 있으면 그 두근거림만으로도 인생을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