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으로 출발을 재차 확인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면서도 출발을 미뤘다. 한파가 왔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출과 북한산 종주라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글을 쓰다가 효자동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6시였다. 아침 7시 30분이 넘어야 햇빛이 쨍쨍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기상 정보를 확인하면서도 날씨 어플에 찍힌 -7도를 그러려니 넘겼다.
'시간에 맞춰왔군!'
산행을 곧장 시작하려 차 문을 열자 ‘흡’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차를 탈 때 느껴지지 않던 한파에 절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곧 온몸이 추위에 덜덜 떨리며 이까지 바들거리자 휘리릭 온기가 남은 차 안으로 들어갔다. 산을 오르려 3일 동안 10킬로미터 조깅을 하면서 느꼈던 혹독하게 손이 시렸던 이유가 갑작스러운 한파 때문이었구나. 조깅한다고 몸은 뜨거워서 몰랐으되 나 홀로 손이 그렇게 시리더라니! 서서히 겨울에 적응해가던 신체 리듬이 호들갑스러운 추위에 잠시 기능을 상실한 거였다. 잠시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멍하게 정신이 나갔다가 주섬주섬 옷을 껴 입었다. 겨울이어도 따뜻한 기능성 목티 내의와 방수 하이킹 재킷만 입어도 활동량에 따라 추위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추위는 금방 뼛속까지 스며들어 순식간에 몸을 떨게 만들었기 때문에 바짝 쫀 나머지 경량 패딩과 겨울용 등산 바지를 껴입었다.
나이를 망각하고 사는 것 같았다. 언제나 청춘일 것 같은 정신에 얼추 비슷한 또래와 만나보면 영락없는 아저씨 몰골이었다. 그들에게 물어본 내 나이도 비슷해서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입고 운동을 하거나 등산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뽕짝을 크게 들으면서 스치는 산책객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 고역이었던 탓에, 조깅용 기모 레깅스를 입고 가급적 젊게, 멋지게 꾸미고 유산소 운동을 하는 습관이 나이를 망각하는 것처럼 세월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불쑥 나온 배와 레깅스의 부조화가 더 흉물스러울 수 있음에도, 어느 순간 힘에 부쳐 문득 나이를 따져보니 오호통재라, 일각여삼추인데 정신은 28세에 머물렀구나!
동이 터 오는 배경으로 어둠 속에 갇혔던 산의 실루엣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며 빨간 태양빛이 파란 하늘에 서서히 묻혀가는 밤골 계곡으로 들어섰다. 주변에 쌓인 눈이 녹아 곳곳에 맨땅이 드러났지만 가을 낙엽을 덮고 지난밤을 보낸 추위에 꽁꽁 언 땅이 안쓰러웠다. 눈이 내린 지 이틀이 지났는데, 생각만큼 눈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직 초입이라 실망할 것 없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먼 산에 눈은 정상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그늘이 진 깊은 골짜기 북벽에만 조금씩 보일 뿐이었다. 눈이 내린 뒤 숨은 벽 코스를 찾은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음에도 능선을 타고 올라갈수록 딱 한 달 전에 왔었던 능선과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때는 안개가 끼어, 시야가 고작 3, 4백여 미터에 불과해 숨은 벽 능선의 묘미를 감상할 수 없었다.
구름에 가린 정상
사람들은 이 능선이 북한산 최고의 조망을 자랑한다고 말했으므로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실제로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이유는 미의 관점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아왔던 경험치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면 작고 아담해서 아기자기한 맛이 한국적인 웅장함과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판단했다. 거대하고 장엄하면서도 ‘우와!’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풍경을 한국에서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알프스에서 융프라우나 마터호른, 몽블랑을 보았다고 해서 생긴 오만함이 아니었다. 그곳을 직접 걸어보고 세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느낀 깨달음이었다. 위대한 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겸허하게 스스로 그 웅장함에 감탄하게 만들고 찬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알프스의 아름다움은 살기를 잔뜩 품은 미녀와도 같았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런 미녀의 살기보다 온갖 모양으로 치장하고 아기자기한 귀여움을 풍기는 아리따운 소녀 같다고 생각했다. 깊고 광활한 산세는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속에서 얼마든지 즐거웠다.
사기막봉으로 점점 올라갈수록 햇빛을 등진 어두운 북벽이, 녹지 않은 눈과 함께 우측으로는 까맣고 거대한 백운대 능선이 마치, 왼쪽의 인수봉 능선과 어울려 아기 같은 숨은 벽 양손을 이끌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백운대가 아빠라면 인수봉은 엄마이고 숨은 벽은 엄마 아빠에게 양팔을 내주고 폴짝폴짝 뛰어노는 아이가 햇빛을 등진 가족의 행복한 한 때일까…… 백운대 정상으로 향할수록 능선을 탄 사람들의 발자국은 줄어들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까만 능선의 절벽에 얹힌 눈이 흑백 티비처럼 보색 대비되어 눈 앞에 펼쳐졌다. 겨울의 삭막한 추위 속에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알몸을 드러낸 산맥의 볼품없는 속살이 더더욱 차갑게 다가왔다. 숨은 벽 앞으로 다가갈수록 자주 마주하는 바위 색깔이 마치 언 시루떡 같아 보였고 만지면 바위에 장갑 낀 손바닥이 붙었다. 땀이 묻은 장갑이 얼음이 언 바위를 만지니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것이었다. 마침 가볍게 낄 장갑과 방수가 되는 겨울 산악 전문 장갑도 가져온 터였다.
백운과 인수가 숨은 양 손을 잡고 하늘로 향하는 가족의 모습
눈이 내렸다는 이유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특히 겨울산의 묘미는 눈을 밟으며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눈을 보거나 맞는 즐거움은 눈썹에 얼음이 얼고 코와 볼이 빨갛게 얼어 모자에 고드름이 피는 것도 즐거운 유흥거리였다. 특히 겨울산의 최대 묘미는 나무 위에 내린 눈이 피운 꽃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사고에도 크게 다칠 수 있는 겨울산의 특성상, 아이젠을 착용하는 즐거움도 그만큼 좋았다. 겨울 등산이 그만큼 힘들어도 그런 눈 길을 힘들고 지쳐도 계속 가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먹는 라면 한 끼와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에 있었다. 그렇게 고생고생 땀 흘리고 정상에 와서는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떠오르는 새벽 해를 바라보면 세상만사 모든 근심 걱정 다 잊어버리고 해돋이에 정신이 팔려 바램마저도 잊어버리는 것에 있었다.
숨은 벽을 50여 미터 남겨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가지고 온 아이젠이 불량이었다. 불량이 아니라 산에서 착용할 수 없는 부적합한 상품을 팔았다는 실망도 잠깐,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이젠을 산 곳은 최고로 신뢰하는 프랑스 스포츠용품 전문업체 데카트론이었다. 인천 송도에만 있던 매장이 하남과 고양, 영등포에도 오픈해 빙벽 등반용 아이젠을 데카트론 매장에서 사고 싶었으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비치된 딱 한 종류의 아이젠은 한국산에서 흔히 착용하는 철사로 된 볼품없는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택한 거였다. 이미 올해 초 설악산과 지리산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젠을 구하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빙벽용 아이젠을 구매하지 못했다.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나름, 데카트론을 맹신하는 이유는 싼 가격에 비해 산악 전문가들이 직접 만든 이유도 있거니와 전문 등반 장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품질에 있었다.
거기에 비해, 한국에서 파는 등산 용품들은 알록달록한 디자인이 예쁘고 터무니없이 비쌌다. 등산 용품이 일상용품이 될 정도여서 [철사로 만들어진 아이젠을 신느니 차라리 이걸 신겠다]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수도 없이 미끄러지면서 벗겨진 데카트론용 아이젠은 이미 버린 후였고 숨은 벽을 눈 앞에 두고 올라야 하는 가슴 높이의 눈 덮인 바위를 오르지 못해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럼에도 데카트론의 신뢰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전문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했을 뿐!
그리고 겨울 산의 설경을 담고 싶다고 소니 알파 6000 미러리스를 중고로 구매했었다. 배터리를 만땅으로 충전하고 고이 가방에 담아 가져와 백운, 인수, 숨은 가족사진을 보다 멋지게 촬영하고 싶었다. 기대에 부풀어 몇 컷 담아보니 휴대폰에서 느낄 수 없던 정교함이 느껴져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하고 익혀 사진을 좀 아는 사람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구입한 카메라는 그러나 배터리 방전으로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영하의 날씨에 사용할 수 없는 카메라라니! 40만 원 거금이 아까웠다. 그동안 뭘 했는지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처럼, 눈 앞에 작은 시루떡을 극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숨은 벽 상부가 보이는 곳에서 허리만큼 오는 바위를 오르지 못하고 한참 넋이 나갔다.
이 곳을 올라가야 비로소 숨은 벽 능선의 하이라이트를 만날 수 있는데도 이곳을 올라갈 수 없었다. 순간, 한 달 전에 왔을 땐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낮고 허접한 높이의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언 시루떡에 불과했다. 눈 앞에 보이는 옅은 눈, 역시나 데카트론에서 산 전문가용 등산 바지 안에는 내복까지 껴입은 상태라 움직임이 둔했고 비로소 남들과 같지 않은 남산만 한 배를 가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둔한 다리를 들어 발 디딜만한 곳이 없었고 언 시루떡 덕에 그토록 신봉하던 릿지화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이젠은 성가셔서 버린 상태에서 비로소 한창때의 내가 아닌 것을 깨달은 듯 고개를 푹 떨궜다.
실은, 못생긴 악마가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 듯 음흉한 미소를 짓는 바위 아래 넓은 암장을 오르겠다고 온 거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그곳을 올라가겠다는 생각은 깔끔하게 지웠다. 아이젠도 없는 데다, 있어도 이런 빙벽 구간엔 쓸모가 없었고 빙벽용 아이젠도 효과적이지 않아 보였다. 한동안 같은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하산을 결정했다. 평택에서 새벽같이 북한산으로 와, 백운대도 올라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시헙에 지고 링을 내려오는 권투 선수같은 심정이었다. 등산로가 펼쳐진 휴대폰 앱으로 가장 빠른 코스로 계곡 길로 접어들어 사람들이 다닌 길을 찾으면 하산하지 않고도 정상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10시가 못된 시간, 돌아가야 할 길을 계산해봤다. 차는 북한산성 입구, 효자동 행정복지센터 근처에 세워두었고 어쩌면 그곳으로 돌아가 무미건조한 정상을 다시 올랐다가 내려올 플랜 B와 밤골계곡을 타고 백운대를 우선 점령하고 보자는 의견 대립 속에 하산길을 가로질러 밤골 계곡 등산로에 합류했다. 지도 어플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등산로는 웬만하게 위험한 절벽이 아니라면 조금만 수고하면 다른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길을 모르고 다녔던 옛날이야 아는 길만 다녔지만 지금 세상에야 길 잃을 염려는 한국 어디에서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