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고 싶은 지리산을 일부러 가지 않은 지가 오래되어 항상 가고 싶다는 꿈만 꾸었다. 사실, 2020년 1월에도 기대했던 눈꽃이 가득한 설산과는 달리, 구름과 비만 기억에 남았는데도 다녀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2021년엔 필히 눈 덮인 설산을 다시 가겠다고 벼르고 별러 겨울 등산장비를 완전 준비했지만 오히려 떠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지리산과 설악산의 날씨를 살피는 것이 겨울의 일상이었다. 뉴스를 통해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알려도 하루 이틀이면 녹아버렸기 때문에 가까운 북한산을 찾아가도 하루 만에 눈은 거의 녹아버렸거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난 길에 설산을 걷는 기분이 나지 않았다. 결국 마음만 먹다가 겨울이 지나버렸다. 사실, 나는 지리산에서 마음을 떠나 설악산으로 눈길을 돌린 것 같았다.
울산에서 드론 교육을 끝내고 시간이 생기자 영남 알프스 9봉을 단숨에 올랐다. 재약산에서 본, 드넓은 사자평 억새 평원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풍경을 드론으로 담았다. 나는 마치 한 마리 새가 되어, 인간의 키로 닿지 못했던 조금 높은 곳에서 내가 서 있는 곳을 보고 싶었다. 때문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 포털(HRD-Net)에서 드론 교육을 국가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사를 제쳐놓고 신청했다. 그러나 머리는 굳었고 온갖 기상과 항공 운항에 관한 정보를 배우기에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기 능력은 뛰어나 재미있던 교육은 농촌의 항공 방재용 드론보다 오로지 4등급 2kg 이하의 드론 촬영에 관심이 갔다. 덕분에, 영남 알프스 산행은 육중한 뱃살을 뺄 계기가 되었고 지리산과 설악산 촬영을 위해 다리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이 50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어려운데, 영상 편집으로 유튜브에 올릴 생각에 신났다.
영남알프스 9봉 중 가장 좋았던 재약산 평원이 마치 지리산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 평원을 보는 것 같았다. 재약산과 뒤쪽이 천황산
4번에 걸쳐 오른 영남 알프스 아홉 봉우리 모두 영상에 담질 못했지만 가지산과 운문산은 야간 산행을 했고 구름이 끼어 석양을 넋 놓고 보는 행운을 누리지도 못했지만 마치 마실 나오듯 다니는 사람들의 들뜬 모습에 나도 들떴다. 영남 알프스 봉우리들은 굴곡지지만 아름다운 오솔길에 걷는 걸음 힘들어도 사각사각 능선을 밟는 소리, 길 가에 피어난 야생화가 마치 우리 인생을 닮은 듯했다. 영남 알프스가 끝나자 잠시 목표를 잃은 것처럼 잠시 넋이 나갔다. 폭염이 난리라고 연신 뉴스에서 알렸다. 그 폭염에 산을 탔음에도 더위를 먹지 않은 것은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이었음에도 폭염이란 냄새가 전해주는 땀냄새와 주변의 열기는 기를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운동의 강도를 조금 더 강화해서 10km 조깅에 힘이 붙었고 지리산행을 위해 드론 원스톱 민원서비스에 지리산과 설악산 영상 촬영 신청을 했다.
지리산 칠선 계곡, 천왕봉, 세석 평원, 북한산 숨은 벽, 설악산 지역이었다. 북한산 숨은 벽만이 군부대에서 ***관리자가 나와 동행한다고 담당자 연락이 왔다. 숨은 벽 근처에 군부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PC번호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설명해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의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울 계획에 백패킹 장비를 챙겼다. 영남 알프스에는 백패킹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부러움을 자아냈다. 백패킹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높고 깊은 산에 혼자 자는 일은 신나긴 해도 먹을 음식과 긴 밤, 젖은 옷, 산의 적막과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의 공격 등,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지내고 보면 재밌을 거 같았다. 사람들이 블로그나 유튜브에 올려놓은 영상을 보면 1000미터 이상의 고지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모양인지 레깅스를 입은 여자들 뿐만 아니라 동네 아줌마들도 쉬이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나는 산에서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고 샹송을 부르는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하여 동영상으로 제작할 생각에 혼자 나사 빠진 놈 마냥 배시시 웃었다.
거제에 와서 오랜만에 만난 프랑스인 친구 장막 디니(Jean Marc DINI)는 대우조선해양에서 드릴 쉽 PM을 맡고 있었다. 삼성중공업에서 드릴쉽 분야 전무를 지냈던 그는 박대영 사장이 물러난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프랑스로 돌아갔던 그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대우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드론 교육이 끝나면 알제리 플랜이 실행되는 내년 4월 이전까진 NEBOSH 안전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도움을 주겠다며 안전 감독관을 제안했다.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설정하고 나머지는 안전 매니저와 협의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기간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고 싶은 일도 명확했다. 장막이 터키 식당에서 저녁을 샀다. 우리는 같이 일한 적은 없었지만 늘 같은 곳에 있었다. 그는 알제리의 하시 마사우드, 아프리카 가봉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회사에서 일했고 나는 알제리 스킥다, 아르쥬, 가봉에서 현대 엔지니어링과 삼성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에서 일했다. 그의 프랑스의 집은 프랑스 외인부대 본부가 있는 오바뉴 근처였기 때문에 통하는 데가 많았는데 60이 가까운 나이에도 나와 친구로 지냈다.
“그래서 저녁 먹고 바로 지리산 간다고? 오늘 코로나 주사 맞았는데도 술 마시고? 무모한 거 아냐?”
“프랑스의 영광이요, 공화국의 명예이며, 외인부대원으로 살자!(Vive la France!, Vive la republique!, Vive la legion!)
*** 칠선계곡
추성마을 등산로 길가의 분위기 있던 조그만 카페가 문을 열었다. 모닝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괜히 지나쳤다.
새벽 두 시,
추성 마을의 대부분의 불은 꺼져 있었다.
낯선 새로운 길에 도착한 설렘이 컸다. 널찍한 공영 주차장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의 불빛이 어둠을 깨고 뒤편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게 적막을 깼다. 어둠 속 주차장 주변엔 관리공단 건물 옆으로 계곡을 건너는 철교가 놓여 있었다. 지리산 칠선계곡을 다녀온 유튜브들이 올린 방송에서 본 건물과 주차장에서 몸을 풀고 가이드 안내를 듣던 광장 주변엔 다른 산 입구와 마찬가지로 식당과 약재를 파는 가게, 커피숍과 펜션이 깊은 어둠 속에서도 불빛을 받은 네온사인에 비쳤다.
잠을 좀 청했지만 신비롭고 설렘으로 남았던 칠선계곡을 왔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불편함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백신 주사를 맞았다는 의식도 없이 편하게 깊은 잠을 자고 싶은 바램은 결국 헛된 바람으로 남았다. 이대로 잠들다가는 늦게 일어나 올라갈지 말지 미적거리면서 고민하다가 어쩌면 되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섯 시까지 결국 잠들지 못하고 배낭을 짊어졌다.
무박 산행을 하거나 주말에 산을 찾는 사람들, 혹은 새벽 세 시에 관리공단 통제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오르는 등산객들 대부분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산행을 시작한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잠 안 자고 피곤한 상태에서 깊고 높은 산을 산행을 하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체력의 원천이 궁금했다. 몇 번 밤을 새우고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산행을 한적은 외인부대 행군 때 외에 한국에서는 기억나지 않았다. 산행은 체력만큼이나 컨디션이 중요했으므로 언제나 넉넉하게 자고 서두르는 일 없이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배낭을 메고 걷는 걸음이 상쾌해야 했지만 오늘은 개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혀 걱정하지 않은 것은 땀 흘려 걷다 보면 피곤함은 잊고 거친 숨소리와 새소리, 계곡 소리, 그리고 가야 할 목적지로의 여정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피곤함은 등산 마지막에 쏠렸다.
30여분 가파른 등로를 따라 올라가자 두지동 마을이 나타났다.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마을 등로는 백무동으로 향하는 길과 칠선계곡으로 향하는 길로 나뉘었다. 눈앞에 보이는 두지동 마을은 여명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등로에서 맞이하는 마을 입구와 현판은 유튜브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마을이 아늑하다고 생각하면서 첫 번째 철교를 건넜다. 계곡 소리와 함께 새들의 울음소리도 우렁찼다. 청량한 신선함에 피곤함도 잊고 아무도 없는 길을 올라갔다. 짙은 초록색 같은 계곡 물소리를 따라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길이 이어지다가 공단에서 만든 데크를 만나 계곡을 끼고 계속 오르거나 계곡 반대편으로 건넜다.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허락된 비선담까지 도착했다. 안전한 탐방을 위해 마련된 공단의 세심함 덕분에 산책하듯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너무 신비감에 젖었기 때문이었을까!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한국 3대 계곡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특징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계곡 물이야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맑은 것은 당연지사고 웅장함이나 신비감은 설악의 계곡들에 견줄 바가 아니었음에도 3대 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 의아했다.
비선담에 도착하면 만나는 데크와 오른쪽 계곡, 왼쪽 정면이 천왕봉을 오르는 길을 막아놓았다. 가이드제 운영이라고 적혀 있는데 7,8월은 없다. 등산인들이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드론 촬영을 끝내고 영상을 확인하니 만족스러웠다. 입문용으로 산거지만 가성비에 만족했다. 드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제품들이 중국산이라는 것에 놀랐고 그 산업에 IT 강국 한국이 끼이지 못하는 것이 의아했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드론 촬영과 편집은 내게 완전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고 그동안 발로만 찾았던 내 키 이상의 것을 새처럼 날아서 본다는 것에 아이마냥 설렜고 그 덕분에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드론은 내 인생에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그러나 내가 산 Cfly사 Faith 2 제품은 타사 제품과 비교할 경험이 없었으므로 여러 불편함이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촬영을 하면서 녹화된 영상이 곧장 휴대폰에 저장되지 않고 다운을 받거나 SD 카드를 꺼내 저장해야만 했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또한 5KM 영상 전송이 가능하다는 성능도 사실, 아직 500m만 벗어나도 신호가 끊겼으므로 장애물이 많은 계곡에서는 시야에서 벗어나면 잃어버릴 염려 때문에 극도로 조심했다.
드론 촬영을 하는 동안 등산 동호외인지 그룹으로 온 사람들이 비선담에서 잠시 쉬어갈 생각도 없이 [칠선계곡 특별보호구역, 가이드제 운영]이라는 눈 관리 표지판이 붙은 울타리를 넘어 바위 넘어 계곡 속으로 빠져들었다. 벌써 세 팀이나 지나갔는데 여자 두 명이서 소풍 가듯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어! 과태료!!!”
공단 관리법 86조에 의거해서 과태료를 물린다는 경고가 여기저기 있었으므로 다시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과태료 명분을 찾아보았다.
‘석궁을 휴대하거나 설치한 자...? 상행위? 지정된 장소 밖에서 흡연?(대피소에도 흡연장 없는 곳이 많던데?) 시설 훼손? 지정된 장소 밖에서 야영, 취사?(후덜덜(상업시설외 야영 허가된 곳이 없는 걸로 암), 금지된 지역 출입하거나 차량 통행한 자라…... 대부분 27조 1항의 금지사항은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인데, 그럼 가이드제 운영 기간이 아닌 7, 8월엔 어쩌라는겨?’
그에 대한 규제사항은 찾아봐도 없었다. 또한 칠선계곡에서 천왕봉 구간은 금지된 비법정탐방로 구간도 아니었으므로 한동안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주저 없이 울타리를 넘어 숲 속으로 진입했다.
지리산은 성삼재에서부터 전왕봉까지 주능선은 25.5km에 이르고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중산리, 대원사, 추성마을은 대부분 9km에 달해 총, 34km 정도에 이르나 정확한 수치는 제각각이다. 필자의 지리산 종주는 화엄사에서 대원사이나 성삼재 휴게소까지 차가 올라가니 종주는 성삼재에서 시작한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계단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 때문에 지리산 제일 힘든 길로 기억했다. 그러나 성삼재에서부터 천왕봉까지 좌우로 펼쳐진 드넓은 능선이 산청, 함양, 하동을 나누고 전라남도로 구례와 남원으로 나누었다. 그 도시들을 따라 조그만 산골마을을 지나면 뱀사골, 피아골 등의 이름을 가진 골짜기를 타고 주능선에 닿으면 모든 길은 천왕봉으로 향했다. 하나뿐인 길,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은 밤차를 타고 새벽에 성삼재에 도착하거나 인월을 거쳐 백무동으로 와서 천왕봉에 올랐다.
허벅지 높이의 울타리를 넘어서자 비로소 진짜 칠선계곡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둠처럼 깊고 무서워 보이던 숲은 마치 어두운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간 듯 금방 탁 트인 하늘을 드러냈다. 곧 계곡 공사 구간을 지나 계속 올라 계곡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 길들은 좀 오래되고 사람들의 흔적이 많지 않을 뿐, 예전에 못 보던 신비감을 자아내거나 특별하다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가끔 조그만 폭포가 나타나면 길은 앙탈을 부리듯 야만적인 본색을 드러냈다. 그런 길이 지쳐가는 내게 힘을 다시 솟게 했지만 설악산에서 본 계곡들만큼 웅장 하지도 다양하지도 않은 단조로운 길이라 생각했다.
대신 무거운 배낭 때문에 발바닥에 피곤이 가중됐다. 최근에 자주 느끼는 발바닥 피곤이 등산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스포츠 전문점 ‘데카트론’에서 구매한 꽤 값비싼 제품이었음에도 릿지로서의 기능도 부족했고 발바닥의 피곤함이 심해 거의 신지 않았는데 전문 릿지화를 신고 있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배낭의 무게 때문인가 싶었지만 정확한 원인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나이 먹으면서 느끼는 세월의 무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느낀 피로감이 계속되었다.
칠선 계곡을 따라 완만한 계곡을 따라온 어느새 정상 능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도에 보이는 정상은 가까운데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고 점점 지쳐 갔다. 키 높이까지 자란 건강한 나무가 빽빽한 좁은 길을 뚫고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계단을 만나니 반갑고 정겹다. 잠시 가로막던 나무를 벗어났다는 즐거움도 컸다.
네이버 지도는 설악산에서 계곡의 이름들이 일일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카카오 맵은 소소한 폭포의 이름이 기록됐다. 내가 밟고 선 바위나 계곡에 이름이 있으면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는데 카카오의 꼼꼼함은 그러나 도시로 나가면 너무 복잡하거나 정작 중요한 비법정탐방로를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네이버에 비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휴대폰의 네이버에서 알려주지 않는 이름들이 지리산에 와서는 완전히 반대였다. 카카오와 네이버가 둘이 설악산과 지리산을 나눠 먹었는지 설악에서 친절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네이버가 오히려 통신이 닿지 않아도 위치 파악은 가능했으므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덕분에 계곡을 따라가고 싶은 곳을 잘라먹고 가기도 했고 가다 보면 이미 다녔던 사람들의 통행로가 나오기도 했다. 정말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나처럼 새로운 길을 찾아 횡단한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시간은 오후 두 시를 넘었고 나는 거의 지쳐 기진맥진한 상태였음에도 짧아 보이던 정상은 그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키높이만큼 자란 나무들이 길을 막고 가는 걸음을 힘들게 했지만 흐린 날이라 품고 있던 물기가 계속 정신을 맑게 했다. 공단에서 공들여 훼손된 자연복원이 그 성과를 보는 듯, 넉넉하고 건강한 등로 숲이 여느 산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풍성하다고 느끼면서도 발바닥의 피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새로울 것 없이 정상을 다 와가면서 점점 이렇게 칠선계곡이 끝난다면 정말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만큼 특별한 것이 없었다. 어릴 적 신비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다른 좋은 곳을 봐버렸거나 설악에서 보았던 비선대와 토왕성폭포, 그 계곡에 비교가 되지 않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죄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다고 생각될 때, 천왕봉 능선에 닿았다. 그곳엔 올라오면서 한 명도 보지 못했던 등산객들이 저마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천왕봉을 향하거나 내려왔다. 이제 죽어도 더 걸을 힘이 없었다.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힘을 끌어모아 100미터도 남지 않은 천왕봉 정상을 향해 엉거주춤, 누가 보기에도 걸음에 이상하다고 느낄 만큼 느리게, 게다리처럼 끙끙거리며 영혼을 끌어모았다. 어째, 의식이 아직 있는지 신기했지만 정상에 도착하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누군가 가지고 온 태극기를 들고 구름이 가득한 천왕봉 표지석 앞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서 한 명씩 천왕봉 표지석 앞에 서서 기념 촬영을 했다. 사람들의 수다를 귓등으로 즐기면서 거의 바닥난 물을 마셨다. 가져 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바위 위에 널브러지면서 구름 가득한 천왕봉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천왕봉 꼭대기, 불편한 암석 위에서 잠깐 졸았음에도 꿀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개었다. 암울했던 기분이 구름 걷히듯 사라지고 가져온 드론을 꺼냈다. 너무나 거대해서 웅장하고 넓어 보이던 천왕봉 위로 날아오른 드론 속의 천왕봉을 한 바퀴 돌아보니 중봉과 하봉, 법계사에서 올라오는 절벽처럼 가파르던 길, 제석봉 넘어 연하봉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능선을 타고 길게 뻗어 있는 산맥의 줄기가 뻗어나가 산아래 마을과 닿아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에 갇혔던 시야에 주변 풍경을 구경하지 못한 등산객들의 하산을 아쉬워하면서 드론 촬영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사람들은 올라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진맥진했고 사진 찍는 소리도 피곤이 역력했으므로 저들은 필히 늦은 하산을 할터인데 아직 하산할 체력이 남아 있을지 염려가 됐다.
"오늘 하산하시나요? 야영할 장비신데?"
파란색 옷을 입은 괘 나이 든 여자가 태극기를 들고 내게 물었다. 군살 하나 없이 전투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정비된 무거운 배낭만으로도 예사로 보이지 않아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