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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Sep 25. 2021

설악산 일장추몽 Final, 토왕성 폭포

등산 어린이 설악 겉 핥기


*** 등산 어린이(등린이)


 새벽 3시, 

죽순봉, 권금성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보름달이 환한데 랜턴을 켠 등산객이 비선대를 향하고 있다.

마등령과 천불동 계곡으로 향하는 비선대 탐방소의 철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 어두운 소공원을 걸었다. 어제 너무 무리했던 탓에 잠을 제대로 잤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게 발길은 비선대를 향했다. 소공원엔 이미 숱한 등반객들이 이마에 랜턴을 켜고 비선대를 향해 돌진하는 시간은 새벽 두 시, 사람들의 걸음이 원체 빨랐던 탓에 점점 뒤처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줄 서서 산을 탄다는 것과 즐기면서 올라가는 것보다 경쟁하듯 산행을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느릿한 발걸음 때문에 바람으로만 남았다. 이미 앞장서 간 사람들이 많았다. 나와 얼추 보조를 맞추던 여자도 원체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기 때문에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비선대를 향하는 이미 숫자를 알 수 없는 인파에 휩쓸렸다. 넓게 잘 다듬어진 길이 계곡을 끼고 달 밝은 보름달 밤에 사람들은 마치 마라톤 경주라도 하듯 비선대 통제소를 향해 올랐다. 



 와선대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배가 고팠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배가 고팠기 때문에 뭘 좀 먹어야겠다고 와선대 바위 어딘가에 앉았다. 배낭을 뒤져 김밥 한 줄과 당 보충을 위해 초콜릿 바를 꺼냈다. 세 시가 넘은 것 같은데 비선대 통제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등반객들이 비선교 위에 줄지어 섰다가 문이 열리면 일제히 출발선을 통과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새벽 두 시와 세 시, 혹은 해가 뜬 후에 입산하는 것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행정 집행부라는 권력 앞에 괜한 앙탈이란 생각을 했다. 결국 1년의 시간이 지나 2021년 추석이 다가오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여러 불법과 과태료, 국공직원들의 폐륜적인 언행 관련하여 공개 질의했고 얻은 답변이 가관이었다. 이어지는 비법정탐방로 탐방 편에 상세히 기록하겠다.


 추석 4일째, 

느닷없는 허기를 달래면서 여유를 부리며 산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을 보자, 도대체 어떻게 체력을 관리했길래 이런 꼭두새벽에 잠도 안 자고 산을 오르는 것인지, 산을 오르는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해돋이를 보려고 3시간 만에 대청봉을 오르는 것은 꿈에라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두 갈래 길 뿐, 마등령에 올라타서 공룡능선을 탈 것인지, 천불동 계곡으로 곧장 대청봉으로 갈 것인지의 길 뿐, 이들로 인해 한바탕 추석 잔치를 벌일 설악산 곳곳이 대목을 맞은 시장통마냥 북적거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런 도전과 열정이 부럽고 대단했다. 


 나는 랜턴을 켜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초콜릿 바로 당도 보충을 하자 주섬주섬 봇짐을 쌌다. 그런데 이번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갑자기 쏟아졌다고 할까, 온몸에 힘이 빠지고 의식은 이미 잠 속으로 빠져든 듯, 넓은 바위 구석에 옷가지를 꺼내 깔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 신기하면서도 산행 계획은 깔끔하게 잊었다. 그 자리가 신선이 거문고를 튕겼다는 와선대 근처였고 나는 계곡 소리와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웅성거리는 소리에 아랑곳 않고 그야말로 필름이 끊겼다. 


 햇빛이 뜨거웠다. 뒤집어쓴 옷가지를 걷고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니 바위 곳곳에 앉은 가족과 연인들이 한가로운 계곡 놀이를 하고 있고 두 중년의 여인은 이제 막 잠에서 깬 나를 바라보았다. 흠칫, 거리의 노숙자처럼 일어나 깔고 잤던 옷가지를 챙겨 배낭에 집어넣고 비몽사몽간에 배시시 웃으며 계곡 물에 세수를 했다. 누가 보기에도 딱 미쳤다는 소리 듣기 좋은 노숙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두 여자의 시선이 들어올 리 없었다. 와선대 계곡 주변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자연이 조화로워 잠깐 천국에 온 듯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오전 11시였다. 8시간이나 잤네. 주말은 잠이 보약인데 말이지! 어제의 수고도 있었고 아무래도 잠을 설쳐 깊은 잠에 들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산행을 하다 보면 자연경관과 수행해야 할 목적 달성이라는 목표에 의해 피곤함을 잊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산행을 강행했는데 이렇게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황망하게 잠에서 깨고 나니 용아장성까지 다녀올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젊어 한때 날아다녔다는 얘기는 젊으면 누구나 하는 얘기였으므로 운동화 신고 조깅하듯 다녀와도 상관없었지만 실제로 해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그런 수고는 체력에 자신 있거나 느닷없이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것이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하라마라 할 것이 아닌, 할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도전정신과 진취적 기상을 심어주는 방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불동 계곡을 내려와 비선대 통제소를 지나면 비선대가 한눈에 보이는 비선교를 만난다. 2021년 09월 21일 영상


 목적을 잃어버리고 할 일이 없어져버리자 모든 시간은 여유로웠다. 울산 바위를 가볼까 하다가 북적거릴 사람들 생각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주변에 다른 비탐로가 지도에 보였지만 모르는 길이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악산 '악'자가 '악'소리 나게 힘든 길이라고 붙여졌다는 말이 치악산, 월악산 등과 함께 유명세를 탔지만 설악산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주변 경관이 너무나 빼어나 모든 수고를 잊게 해 주었고 정말 지칠 때즘이면 어려운 길이 끝나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산 길은 무조건 어렵고 힘이 들기 마련이라 꾸준히 올라 능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모든 수고를 보상해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코스들을 장애물 통과하듯 하나씩 극복해가는 재미도 있고 보면 '악'자 들어가는 산이 오르는 재미가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러나, 체력 소비가 심하고 체력 고갈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체력 안배를 잘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깊고 높은 산을 당일치기로 일반인들이 해 낸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운동화나 슬리퍼를 신고 산행하는 사람들 중엔 정신마저 무장해제하고 다니는 무모함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변에 하루를 보낼만한 거리의 목적지를 탐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사실, 마땅한 곳이 없었다기보다 아는 곳이 없었다는 게 맞았다. 가방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대 여섯 시간 동안 다녀올 곳이 많았음에도, 여러 번 와봤고 체력에 자신이 있었음에도 주변 지리를 몰랐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주변 정보도 아는 게 별로 없어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고 찾아가는 게 유익했다. 대부분의 유명한 글들은 모두 가본 곳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보지 못했거나 느끼지 못한 부분들을 보고 들으면서 정보를 얻었다. 그러다 이름이 낯선 곳을 다니는 사람들의 영상도 몇 개 보았는데 모두 비탐로에 관한 것이라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속엔 토왕성 폭포 바로 앞까지 가서 팔을 벌리고 선 사진이 신비하고 멋지게 보였다. 그것은 토왕성 폭포 전망대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길을 모르니 갈 수도 없었다. 산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알아도 직접 같이 가지 않으면 들머리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립공원 관리소는 그런 곳에 들어가면 불법으로 과태료를 물린다면서 입구에 직원들을 배치해서 못들어가게 했다. 위험요소를 없애 안전하게 만들고 왕복 시간 등의 정확한 정보를 주기보다 무조건 ['출입금지'에 공원법 86조에 의거 과태료 처분]이라고 고지하며 취사와 야영을 금지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한 곳으로 몰리기만 하고 불필요한 일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이 허가제로 들어가서 암벽을 타는 것처럼, 비탐길도 허가제와 인원 통제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훌륭했고 애매한 구간은 리본을 달아놓으면 될 일이었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이 통신두절로 구조요청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도 개소리였다. 정상 탐방로도 비탐처럼 통신 두절 구간이 많았지만 네이버 지도에 위치는 떴다. 주요 구간에 통신 시설을 마련해두거나 통신 불가 지역이라고 하면 알아서들 판단하고 보고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저런 고민과 아이들의 모습을 넋 놓고 보다 보니 오후 1시를 넘어섰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토왕성 폭포 전망대로 목적지를 정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설악산의 진면목을 못 볼지도 몰랐다. 사진에서 보는 멋진 기암괴석들의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설악산의 신비와 자부심을 가질 어떤 명분도 없이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게 끔찍한 추석이 될 것 같았다. 다양한 계곡과 폭포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토왕성 폭포 전망대로 가는 길 마지막에 있는 비룡 폭포를 보고 사람 우롱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폭포를 사람들에게 내놓고 등산로를 만들었단 생각에 어이를 상실했다.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내는 웅장한 폭포도 아니었고 주변 환경이 빼어나 마음을 앗아간 폭포도 아닌,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폭포와 등산로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나을 뿐, 도저히 자랑삼고 내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토왕성 폭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비록 폭포를 보지 못했어도 그 신비감과 주변의 풍경이 넋을 놓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이번엔 설악산에 온 최소한의 소득을 가져가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여러 번 비선대를 지났음에도 장군봉과 적벽을 몰랐던 것처럼 부주의함이 주변의 절경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첫날, 구름에 뒤덮였던 폭포를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그 신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둘렀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여전히 테이프로 막아놓았다. 45년 만인지 폭포 전망대를 개방했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했을 때, 전망대를 오르는 입장료를 3500원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꽤 높은 전망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가파르게 하늘을 향해 계속 뻗어있었고 몇 번씩 숨을 몰아 쉬면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럼에도 금방 닿을 것 같던 전망대는 쉽게 그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긴장 않고 올라갔다가 다리 풀려 개고생 했다는 고백에 함박웃음을 날린 적이 있는 계단이 900개나 된다고 했다. 어쨌건 아무 생각 없이 깊은숨을 몰아쉬면서도 체력과 끈기에는 자신이 있었던 필자는 곧 아무도 없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구름이 살짝 끼었지만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내 눈으로 직접 신비한 폭포를 본다는 설렘이 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려 두 팔로 무릎을 잡고 허리를 숙여 깊은숨을 몰았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힘들고 답답하던 가슴을 쓰다듬으며 땀을 식히자 금방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마치 숨바꼭질하듯 조심스럽게 토왕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내가 그쪽을 바라보는 것을 들키기라도 할 듯, 돌아보면 도망이라도 갈 듯, 조심스러웠다. 옅은 구름에 가려 더더욱 신비감을 나타내던 폭포가 하늘로부터 곧장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며 절벽 아래로 쏟아졌다가 2단의 뭉툭한 둔덕을 지나며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CG로나 등장하는 듯한 장관이 현실에서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와닿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렀다.


구름이 살짝 정상을 가린 토왕성 폭포 정상이 멀어 보인다. 그 왼쪽으로 암벽 등반인들이 사랑하는 '별을 따는 소년', '솜다리봉', '경인대길'과 그 왼쪽으로 은벽이다.
2020년 추석에 촬영한 이 영상은 토왕성 폭포만 아는 진짜 설악산 등린이었다. 2021년 추석에야 왼쪽 은벽길 능선과 암벽 릿지길 '별을 따는 소년', '솜다리봉'을 알게 됐다.



"오오오!!! 세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전망대를 전세 내고 이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풍경을 혼자 감상한다는 것이 아쉬워 연신 탄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많았다면 모두들 이 경이로운 자연에 신께 감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비로소 샤모니 몽블랑을 오르는 몽땅베르 전망대에서 보았던 광활한 '빙해'와 거대한 첨탑처럼 하늘을 찌르는 3천 미터 이상의 봉우리들 속에 3대 북벽 '그랑 조라스'의 위용에 비길만한 한국의 비경을 발견한 듯 가슴이 벅찼다. 해가 저물 때까지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 전망대에 앉아 설악의 봉우리들이 시작되는 곳에서 석양이 저무는 황금빛 물결을 보는 것은 축복 이리라! 그동안 비선대의 장군봉을 올려다보지 않고 작은 계곡을 보고 실망했던 외눈박이 등산 어린이가 이제 설악의 문 앞에서, 고작 대문을 보고 감탄하는 순종적이며 순박한 어린이가 되어, 그동안 비웃던 어리석은 마음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속죄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기에 설악 깊숙이 진짜 모습을 알현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부푼 마음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데 테이프를 넘어 올라오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멈칫, 국공 직원인 줄 알고 잠시 곤혹스러운 모습을 짓던 여자들이 내 옷차림을 보고 안심했다.


"위에 아무도 없어요?"


"네, 없습니다. 즐추 하세요!"


 만족감에 잔뜩 부푼 마음으로 하산하고 테크닙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강릉으로 이동했다. 와선대에서의 낮선 잠과 비선대 위에서의 추몽 속에 설악산이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설악 깊숙이 속살을 연구하기로 하며 저런 곳을 '비법정 탐방로'란 괴상한 이름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과태료를 징수하는 국립공원을 비난했다.


강릉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와 내 고향 진주에서 영어 쌤을 하는 코코와 강릉에서 만나 파티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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