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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Sep 24. 2021

설악산 일장추몽 3, 안락암

화채능선


*** 미지의 길


 등산 어플을 사용하다가 그만둔 지 꽤 됐다. 뭔가 애착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스스로 구속되는 것 같았는데 운동을 시작하면 무조건 10km 기본으로 채워야 한다는 집착 때문이었다. 디자인, 기능성, 사진이나 동영상 등록과 설명 수준, 혹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반응 등이 등산이나 운동 어플의 주요한 선택점이었지만 그러한 집착은 어플이 동작중임에도 화면이 닫혀 기능이 꺼지면 지나온 길이 직선으로 나와 모든 기록이 사라지는 이유로 애착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어플이 삼성 헬스였다. 그것도 역시 다른 어플과 다를 바 없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안티 삼성으로써 삼성폰을 사용해본 적이 없음에도 집착에 상관없는 도전과 경쟁, 기록 등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어플은 당근 마켓에서 산 순토를 사용하면서 비교 분석한 결과, 어플 목록에서 깔끔하게 지웠다. 


순토 어플에 기록된 등산 흔적. 1년이 지난 2021년 추석 무렵에 토왕성 폭포를 세 번이나 올랐다. 중간에 끊긴 흔적이 두 번 있었지만 대부분 만족스럽게 기록되었다.  


 휴대폰 배터리 용량을 잡아먹던 여러 운동 어플 대신, 몸을 구속하는 답답한 시계를 구입함으로써 새로운 근심거리로 애를 먹어야 했다. 주요 기능을 설정하는 버턴이 손등과 접촉하면 기능이 꺼지거나 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운동 완료 후에 휴대폰 어플로 전송된 운동 기록과 위성사진은 신세계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카카오 맵이나 네이버 지도의 위성 송출 사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행 방향, 위치, 전체 진행방향까지 하루하루마다 기록된 루트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알아왔던 어플의 장애를 깔끔하게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르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네이버나 카카오 맵을 이용 해야 했다. 카카오 맵은 동선과 봉우리, 골짜기와 폭포 이름이 정확하게 기록된 것에 비해 비법정탐방로가 없었고 빨간 점선으로 비탐 루트가 기록된 네이버 지도에 비해 정확도가 나았다. 그러므로 정식 등산로인 초록색 선으로 된 길이 아닌 모든 비탐 길은 하얀색으로 표시가 됐고 그것이 계곡이란 것을 지도가 나타내는 미지의 길 앞에 들어서자 알게 됐다. 


 길이 쉬워도 어디선가 분명히 위험한 구간이 있을 것이란 확신에, 계곡은 거대한 바위나 절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므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일은 없었다. 어플이 없던 시대에 주요 등산로만 다녔던 등산 어린이 수준은 그나마 알프스를 경험하고서야 벗어났고, 쉽고 우습게 여겼던 알프스 산맥의 길들엔 언제 사고를 당해도 이상 없을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것에 비해 높은 산, 깊은 골의 지리산과 설악산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 막연한 신비감과 더불어 위험을 예감했다. 그것은 곧 설렘이면서도 세상 경험이 미천하다는 현타로 다가왔다. 약속 시간 놓친 사람 모양 초조한 마음이 적지 않은 나이에 세상 잘난 체했던 과거가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계곡엔 등산로가 있었다. 눈에 보기에도 선명한 등산로가 분명 사람들이 다닌 길이었는데 지도 어플엔 비탐의 흔적도 없이 계곡으로만 나타났다. 여러 등산 어플도 비탐 길이 나와있지 않거나 디자인, 어플 활용성이 낮으면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FAT MAP이란 3D 어플을 알프스 산맥 트렉킹 때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활용해보려 했다. 거기엔 비교적 표시되지 않은 비탐 길이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행여 모르는 길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네이버 지도보다 조금 나을 뿐,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여러 길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어렵지 않은 길을 한참을 올라가자 암벽 등반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이 깨지면서 이렇게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국립공원에서 전문가 수준의 암벽 등반을 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국공사이트에서는 허가를 받는 절차를 찾기도 어려웠고 비선대에서 보았던 등반가들이 어떤 절차로 허가를 받는지 몰랐기 때문에,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런 계곡에서 단순한 릿지가 아닌 암벽을 타는 도전적인 사람들을 보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너무 많은 규제와 통제는 안전을 위한 게 아니란 것은 유행가 가사로 느꼈다. 


[내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린이 수준의 등산객들은 차림새만 보아도 표시가 나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마치 이마에 '나 막가'라고 써놓은 것처럼 표시가 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도전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비탐으로 가는 사람들은 이미 길을 아는 사람들이고 없다 하더라도 도전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등린이 수준으로 과도한 통제와 규제(과태료)하는 수준이 딱 책상 행정이었다. 그 모든 규제와 통제를 '안전'과 '자연보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지만 국공 직원들의 '안전'과 '자연보호'에는 '책임 없는 권한'만 가득해서 무지몽매하고 안하무인 격 명령이 횡행했다. 그 경험은 국공직원을 만나면 어떻게 하든 지지 않고 싸우고 싶은 마음도 한쪽에 가득했다. 그만큼 국공직원들을 만났을 때의 충격이 컸으므로 어떡하든 피하고 싶었다. 


 새벽 세 시에 모든 국립공원의 통제소가 오픈되면서 설악산을 찾은 사람들의 입산이 시작됐다. 마치, 마라톤 경주를 하듯 통제소를 들어선 사람들이 '악'소리 나는 설악산을 경쟁하듯 치고 올라 각자 원하는 목적지를 등산하고 하산하는 길은 거의 체력이 고갈되어 온몸이 정상이 아닐 무렵, 일상생활에 경험할 수 없는 체력을 소비한다. 높은 산, 깊은 골,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둠이 깊은 시간, 곳곳에서 구조요청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일반 등산로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비탐로를 보여주겠다며 술을 들고 들어간 사람들이 자연에 취하고 술에 취해 실족한 사고도 눈에 선했다. 건장한 구조대원들이 렌턴을 밝히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위험에 처해, 구조 즉시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사고 당사자'를 구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눈에 선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부러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람은 없으며 위험에 빠진 사람의 무모함에 눈에 선하다 하더라도 국공 직원들은 그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 그들을 비난하거나 질책할 어떤 권한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숙하고 프로페셔널한 의식의 소유자를 나는 국공에서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 슬펐다.


 두 명의 암벽 등반가를 지나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넘기고 있는데, 금방 닿을 것 같던 능선의 빨간 점선과 계곡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소공원의 그 많던 사람들을 피해 혼자 호젓하게 즐기는 길이 신났다. 그러다 네 명의 장년 남녀가 내려오면서 처음 사람을 봤다고 반색을 했다. 나이도 지긋한 사람들의 비탐 탐방은 진작에 다녔던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라 산을 잘 아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어쩜 짝짝이 다람쥐처럼 재빠르고 날렵한지 마치 빨치산들을 보는 것 같아 볼 때마다 신기했다.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바위 위에 새겨진 사람들의 흔적도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희미해졌다. 그럴 때면 길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사람들의 흔적이 없고 잘못 왔다고 판단되면 어김없이 지도 어플을 켜고 위치를 확인했다. 분명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지역임에도 잠시 버벅대던 어플이 위치를 나타냈다. 길을 잃고 알바를 하며 제대로 가는 길인지 의문이 들다가도 희미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매어놓은 오래된 줄이 있거나 리본, 혹은 길이 나타났다. 그럴때 만나는 리본은 구세주 같았고 그가 옆에 있는 것 같아 위안과 힘이 됐다. 국공에서 그런거라도 제대로 해놨더라면......

 이제 집선봉 위쪽에서 만나는 비탐로와 교차점이 눈에 띄게 가까워진 것이 보였고 나는 가파른 절벽에 붙어 있었다. 절벽은 곧 높은 폭포 상부에 다다랐을 때였다. 


폭포 상부를 통과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별거 아닌거 통과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진이 보여주지 못하는 위험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4미터 거리의 계곡은 완만한 경사도에 암릉 위로 고인 물이 아담하게 흘렀다. 폭포도 직각으로 떨어지지 않고 암릉에 붙어 있었으므로 굉장한 폭포라고도 볼 수 없었는데,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길도 살펴보니 없었고 꼭 그 길을 건너야만 했다. 처음엔 완만한 경사도라 쉽게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판단과 달리, 막상 붙어서 일어서려고 하니 등산화가 자꾸 미끄러졌다. 비싼 등산화인데도 릿지화에 비해 안정감이 덜하다는 것을 느끼며 이대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건너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릿지 친구들과 수락산 등반 때 신었던 릿지화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진퇴양난이었다. 길은 분명히 건너편으로 나 있었다. 지도상으론 이 계곡을 올랐다가 안락암으로 내려오는 길은 아주 가까워 보였다. 늦은 시간이긴 해도 해가 있을 때까진 하산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을 자신이 있었지만 점점 어두워가는 하늘이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 잠시 한숨을 돌렸다. 서둘러서 될 일은 없다. 


 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앞만 보고 힘들게 올라오면서도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뒤의 풍경이 거친 숨결 앞으로 환하게 펼쳐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단풍이 화려하지 않아 올여름은 햇빛이 그다지 강열하지 않았는가 했다. 10월 초면 단풍이 절정일 거란 예상과 달리 끝물인 것 같았는데도 행여라도 못 볼까 봐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긴 계곡을 지나오면서 단풍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곡의 바위를 걷기 위해 집중을 해서인지, 아니면 주의력이 부족해서 주변 사물에 대한 관찰 능력이 없어서인지 기억에 저장해 두는 법이 없는지도 몰랐다. 그런 현상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번 경험했던 터였다. 어릴 때, 큰어머니는, 


[우찌 그런 걸 벌로(그냥, 신경 쓰지 않고) 보고 다니노!]


 라고 말했던 것이 관찰력 없는 내 인생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각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포기하고 내려가야 하는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되돌아가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해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암릉 위에 용캐 자란 나무와 풀을 의지해 이곳을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윽고 가파른 그 암릉을 풀과 가녀린 나뭇가지를 붙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 아니었지만 노동으로 그나마 근육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산을 찾아 그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대청봉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산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싫어하므로 한적한 비탐이나 예전에 누군가와의 추억이 섞인 호젓한 길을 선호했다. 나 같은 사람은 혼자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좋아했으므로 일상을 살면서 등산 근육을 키울 일은 거의 없었다. 먹고살기 바쁘다가 산에 와서 쓰는 근육량이 대단했다.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부터 나처럼 배불뚝이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용을 쓰며 다니는 산길에서 제일 신기한 것은, 산과는 전혀 멀어 보이는 장년의 여자들이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옅은 향수를 뿌리고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그 어려운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은벽길이니 희야봉이니 하는 릿지 산행을 우습게 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던 것은 물론, 한 번도 도전한 적이 없고 해 볼 의지도 없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회의감은 북한산 인수봉에서 생겼다. 숨은벽이야 간단하게 올라가지만 인수봉에서 로프를 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고 꼭 오르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설악산에선 인수봉은 애기 수준이란 것을 굽이굽이 기이한 형상을 드러낸 기암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기암들은 대개 그럴싸한 이름과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한국에 없던 20년이란 세월 동안 계속 역사를 써 내려갔으며 오늘도 누군가 그 암벽을 기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는 그 그룹에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이 화사하고 여린 여성들이 어찌 그리 힘들이지 않고 산을 타는지, 정말 여우가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도 절벽 등반을 하는 모습이 나를 자극했다. 결국 나는 기술적인 능력이 전혀 없이 단지 의지만으로 산을 오르는 뚜벅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암릉에 올라서자 다른 암릉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계곡 상부에서 내려온 로프가 반대편으로 건널 수 있게끔 매어져 있었기 때문에, 암릉을 피해 계곡을 건너는데 쉽게 성공했다. 그러면서 미리 이 길을 다녔던 선등자들은 미리 어려운 곳을 감지하고 생명줄을 하나씩 묶어두는 지혜를 베풀었고 잘못 온 길이 아닐까 싶었던 깊은 계곡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혼란 속에서도 결국 모두 그렇게 혼란을 겪으며 올라온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과 비탐로가 만나는 지점엔 백패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알맞게 준비되어 있어 이 길이 비탐이 아니었을 때는 많은 등산가들이 야영을 했을 것 같아 정감이 갔다. 


집선봉 정상에서 바라본 거대한 공룡능선이 공룡인지 몰랐다. 그 줄기를 타고 내려와 천불동 계곡을 이루는 거대한 암봉들의 이름도 몰랐다.


 5시 30분이 다되어 곧 집선봉 정상에 섰다.

까마귀들이 정상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이방인의 등장에 깍깍거리며 머리 주변을 선회했다. 적당한 바람이 지친 육신을 포옹하며 위안을 주는데 눈앞에 계곡 저 멀리 거대한 능선이 버티고 있었다. 그 능선에서 갈라진 암릉지대 세 줄기가 계곡으로 흘러내리면서 이루는 장관에 저절로 탄성이 일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능선이 공룡능선이라는 것을 몰랐다. 오른쪽으로 내려온 암릉 선두가 금강굴을 간직한 장군봉이라는 것도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최근까지 1275봉을 몰랐으며 그 앞으로 범봉이니 희야봉, 왕관봉은 물론, 저곳을 사람들이 갈 수 있고 암벽등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진정으로 나는 설악산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시시했던 기억만 가득했던 기만자였던 것이다. 


 집선봉에서 권금성은 손에 잡힐듯한 거리였다. 뛰어가면 10분 만에 도착할 것처럼 가까운 거리여서 이미 해 질 녘인데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 밑에 있는 처음 보는 안락암은 불심의 경이로움을 느낄 만큼 절벽 위에 위태롭게, 그러나 너무도 평온하게 자리 잡고 있어, 마치 뒷동산 정자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하나 해냈다는 기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권금성을 향해 내려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탄성을 지르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고 잘하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금방 닿을 것 같던 거리는 다가갈수록 한 발짝 물러서는 것처럼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고, 숨어 있던 봉우리가 하나둘씩 나타나며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을 쉽게 지치게 했다. 어렵사리 권금성에 도착했을 때는 6시 반, 산행을 막는 통제소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지킴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케이블카는 문을 닫아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았다. 

권금 성터에 이르러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산하는 마지막 손님들이 케이블카로 향했다.


 케이블 카를 타고 하산할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비박과 취사 장비가 없었고 체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야영을 겸하며 긴 산행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깝게 다녀올 길을 택한 계곡 길이었다. 그러나 소공원에서 올려다본 권금성과 노적봉 암릉들이 금방이라도 소공원을 향해 쏟아질 듯 높이 솟았는 데다, 소공원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화채능선의 굴곡이 예사롭지 않았음에도 암릉의 화려함에 취해 속살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실수는, 사실, 설악을 우습게 여긴 자만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알프스에서 그렇게 큰 코를 다쳤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죽을 위험까진 감수할 일이 한국의 어느 산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혹시 늦은 산행을 할지도 몰라 랜턴을 준비했다. 늦으면 서두를 것 없이 석양을 보고 내려온다는 생각이었다.


영업을 종료한 권금성에 도착했다. 앞의 봉우리가 집선봉이고 왼쪽이 화채능선 숙자바위와 칠성봉이 이어지는 암릉, 오른쪽이 공룡능선이다.


 권금성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갔다. 혹시 직원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마디 말이 오늘의 즐거움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범죄자 취급하듯 역겨운 눈초리와 명령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를 만큼 증오가 컸다. 가파른 숲에 들어서서 안락암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내려가자 제법 굵은 파이프가 나타나 암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곧 평탄한 지반에 암자의 넓은 초록색 지붕이 나타났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암자의 촛불이 밝은 실내는 잠겨 있었다. 체력을 거의 소비한 상태라 문이 열렸으면 자고 갔으면 했다. 아무도 없는 깊고 높은 죽순봉에 위치한 안락암은 무엇이 두려워 문을 걸어잠궜을까! 부처의 자비가 좀도둑의 손길이 두려웠을까, 부처의 품에 기진맥진한 등산객의 침입이 불쾌했을까? 지도 어플에 나 있는 빨간 점선은 암자 뒤편으로 나 있었다.


 죽순봉을 휘도는 바람 소리가 거셌다. 소공원의 불빛이 훤한 안락암 뒷자락으로 난 ‘출입금지’ 표지판 뒤로 가파른 계단이 폭이 좁고 이끼가 잔뜩 낀 채 불 밝힌 랜턴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길 주변으로 키만큼 자란 나무들이 거칠게 지친 나를 할켰다. 뜻하지 않게 야간 산행을 한 적이 많았으므로 깊은 산속에 홀로 있다는 것이 적막한 고요와 더불어 무념무상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에 지친 기색에도 두려움이나 위험 의식은 없었다. 짧고 단순해 보이던 지도 어플의 길은 걸을수록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아 그제야 소공원을 향해 쏟아질 것 같이 웅장한 암릉들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느 산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의식은 아직 팔팔한 이십 대인데 현실이 오십을 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을 겪었던 것이다.


안락암에서 내려가는 소공원 하산길에 만나는 계단이 불자들의 정성과 열정을 보는 듯, 스스로 겸허한 마음을 갖게 했다.
죽순봉 뒤에 숨은 안락암자의 파란 지붕 뒤로 소공원과 울산 바위, 그 오른쪽으로 달마봉이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았다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갈수록 안락암을 찾아 기도를 하려던 불자들의 정성 어린 마음이 한 발짝씩 이동할 때마다 내 마음에도 와닿았다. 가파른 계단이 발 하나 온전히 걸치기도 좁고 가파른 계단이 기어올라야 했고 내려올 때면 행여 미끄러져 넘어질까 두려움에도 불자의 마음은 어떤 고난도 달게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것을 행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산에서 만나는 스님들의 이마가 유난히 빛나고 기름진 얼굴엔 해탈의 열반에 이르는 수행의 모습은커녕, 불자의 간절한 소망과 교차됐다. 온갖 잡념을 담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고즈넉한 숲에 도착했을 땐 바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적막감만이 주변에 남아 거의 탈진한 발자국 소리만 낙엽을 쓸었다. 그때 갑자기 마이크로 큰 소리가 들렸다.


[이 지역은 등산 금지구역이오니......]


 갑자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니 토왕폭으로 향하던 길 위에 도착했다. 내일은 필히 용아장성을 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막걸리에 도토리묵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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