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T 분석표로는 담지 못하는 진짜 당신의 얼굴
"20년을 일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상담실을 찾아온 40대 L팀장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입꼬리는 억지로 올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갈 곳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목소리 끝에 매달린 미세한 떨림이 그녀가 품고 있는 불안의 무게를 짐작게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야근을 밥 먹듯 했고, 주말을 반납하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회사에서 좋다는 리더십 교육, 전략 강의는 빠짐없이 들었다.
처음 상담 통화에서 직장에서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과 진행했던 리포트가 있다고 해서 가져와 보시라고 했었다. 그녀가 내민 파일에는 SWOT 분석표, 역량 진단 결과지들이 가득했다. 빈틈없이 채워진 그 칸들 속에는 강점, 약점, 기회, 위협이 빼곡했다. 그런데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물었다.
"코치님, 분석은 다 했는데... 그래서 저는 이제 뭘 해야 하죠? 이 종이들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나는 그 종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사람이 빠졌네...'
사실 나도 똑같았다.
코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보 시절, 나 역시 내 커리어를 SWOT 분석표에 열심히 채워 넣었던 적이 있다. 강점, 약점, 기회, 위협을 빼곡히 적었다. 그런데 다 쓰고 나서 드는 감정은 오직 하나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5,600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대부분의 도구는 '전략(Doing)'과 '경력(having)'만 다루고, '사람(Being)'은 다루지 않기 때문에 그 노력이 공허함을 만든다는 것이다.
코칭 용어로 'Be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전략이나 방법론 이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가슴이 뛰고,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가.
'사람'을 담지 못한 전략은 마치 엔진 없는 페라리와 같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단 1미터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빠트린 교육들이 성행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편의성 때문이다.
사람을 깊이 있게 파악하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50명을 앉혀놓고 3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기업 교육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1 코칭에서는 다르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기 때문에,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진짜 변화는 전략이 아니라, 그 전략을 실행할 '사람'이 깨어날 때 시작된다.
40대의 커리어 전환은 스펙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싸움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직장에서 '감정'을 지우는 훈련을 받아왔다.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기뻐도 들뜨지 않는 것이 프로라고 배웠다. 그렇게 20년을 버티다 보니, 정작 '나'라는 사람이 언제 행복하고 언제 불행한지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5,600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인간은 '의미감'을 느낄 때만 성장한다. 그리고 그 의미감의 신호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보내주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우리 내면의 가장 정직한 나침반이다. 심리학이나 코칭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스스로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데이터가 바로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L팀장님에게 SWOT 분석표 대신 빈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 연대기 순서가 아니라, '감정의 높낮이'를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펜 끝이 종이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 저 이때 되게 좋았네요?"
그녀의 펜이 2008년에 멈췄다. 만족도 9점.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했을 때였다. 본업이 바빠 귀찮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아... 저는 사람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군요."
또 하나의 지점, 2015년. 만족도 8점.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였다. 모두가 포기하려 할 때, 그녀는 팀원들을 다독이며 끝까지 프로젝트를 끌고 갔다.
"저는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었네요."
건조한 이력서에는 '교육 담당', '프로젝트 수행'이라는 네 글자로만 적혀있던 사실들이, 감정이라는 렌즈를 통하자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사람', '위기를 치유하는 리더'라는 정체성으로 되살아났다.
단순히 "남들보다 뭘 조금 더 잘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언제 어떻게 몰입하는 사람인가"라는 존재론적 강점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코치님, 저 HRD 쪽으로 지원하면 잘할 것 같아요. 아니, 잘하고 싶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상담실에 들어올 때의 그 위태롭던 눈빛은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의자 깊숙이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눈빛은 선명했다.
내가 가장 잊지 못하는 고객은 또 있다.
50대 여성 고객분과 함께 감정 지도를 그렸을 때였다. 그분 역시 수많은 교육과 도구를 경험한 상태였다. 여러 번 SWOT 분석도 해보고, 이런저런 강점 검사도 해봤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다 하고 나서도 아무 감정이 안 들었어요."
우리는 함께 감정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코칭을 받고 질문에 답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코치님... 지금 20년 동안 잊고 살았던 제 꿈이 기억났어요."
그분은 젊은 시절, 특정 분야를 깊이 연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 꿈을 접고 회사에 다녔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그 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감정 지도를 그리는 순간, 그 꿈이 사실은 죽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그분은 박사가 되었다. 논문을 쓰고, 책을 냈고, 지금은 자신이 정말 돕고 싶었던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이것이 '사람(Being)'을 담은 전략의 힘이다. 종이 위의 분석표가 주지 못했던 동기부여를, '자기 이해'가 해낸 것이다.
혹시 당신도 이력서 앞에서, 혹은 화려한 전략 보고서 앞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가?
완벽한 계획을 세웠는데도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잠시 펜을 놓고,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스펙이 아니라, 내가 언제 웃었고 언제 울었는지를 복기해 보라. 그 감정의 데이터 속에 당신이 앞으로 20년 동안 걸어가야 할 길이 숨어 있다.
막연한 고민이 종이에 내려앉는 순간,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지나온 모든 순간에는 의미가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신의 20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직 그 속에 숨겨진 보석을 캐내지 못했을 뿐이다.
L팀장님과, 그리고 50대 그분과 함께 그렸던 그 '감정 지도' 양식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혼자 조용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지난 20년을 마주해 보세요. 30-40분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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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지도를 완성한 후에는 3가지 미래 시나리오 중 선택해야 합니다. 현재 회사 잔류, 이직, 독립... 각각을 심리 관점에서 분석하는 방법을 다음 글에서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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