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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Feb 19. 2020

성장의 비밀

모유 먹는 거 아님

육체적, 지적, 정신적 능력 그 어느 것도, 성장을 위해 스스로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시간당 천만 원짜리 수학 과외를 받아도 학생이 공부를 안 하면 수학적 지식을 그의 머릿속에 몰래 구겨 넣을 방법이 없고, 연예인 누구누구의 몸을 만든 트레이너가 운동을 알려줘도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는 조각 같은 몸을 기대할 수 없다.  


한 가지를 붙잡고 오랜 시간 공부하다 보면  더 나은 수준으로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방향에서 요구되는지 알게 된다. 작은 깨달음을 얻어 기쁘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를 다시 상기하면서 희망을 갖다가, 작은 일에도 이내 용기를 잃고 방황하기를 반복한다.




일단 ‘실력’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자.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갖추고 있는 힘이나 능력’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실제’라는 것을 ‘내 세상’이 아니고 ‘우리 세상’에서의 ‘실재’로 보는 것이 맞다. 결과적으로 ‘외부에 입증할 수 있는 힘이나 능력’만을 ‘실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 독일어의 완벽한 문법과 수많은 단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한국인 여자가 있다. 우리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녀가 그것을 말이나 글을 통해 외부로 증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녀를 ‘외국어 실력자’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아직 외부로 증명되지 못한 것은 설사 그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식할 수 없으므로 외부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내 세상에만 '실재'한다.




‘성장’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시간적 순서를 갖지 않고 서로 작용하며 이루어진다. 의미 있는 성장은 외부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A : (사실과 관계 없이) 내가 평가하는 나의 능력

B : 실제 내가 외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C :  (사실과 관계 없이) 외부가 평가하는 나의 능력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B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면서도 놓치는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가 A와 C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 역시 갖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이 성장의 중요한 비밀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이뤄낸 사람들은 이 점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아주 적절히 실행에 옮겼을 확률이 높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따위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아주 일찍부터 의도치 않게 3가지 옵션들이 최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 또는 시스템 있었을 것이며 운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떠한 분야에서 '성장'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경우라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각도의 노력을 고려해볼 만하다.




'B - C - A' 또는 'B - A - C'는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장의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퍼포먼스(B)를 향상 시키는 노력에 총력을 다 하고 소위 ’실력‘이라는 것이 생기면, 그 후에 권위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 줄 것(C)이라 생각한다. 그 후에 세상에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는 지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결정(A)한다. 또는 자신의 능력(B)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오면 스스로 그에 걸맞는 가치평가(A)를 한 후 타인의 평가(C)를 성취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는 (B)에 대한 결정권만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실력을 쌓는 일’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A)와 세상의 평가(C)가 객관적 기준이 있다거나, 실재하는 능력에 비례할 것이라 여기고 모든 결정권은 외부에 일임한다.



 

1. 내가 평가하는 나의 능력(A)의 최적의 위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 소녀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미술 시간에 남들과 다른 사자를 그렸다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후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녀의 A는 더 주도적으로 앞서 나아갔어야 했다. 내가 믿어주지 않는 나의 능력은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짓눌려 내 잠재력은 발휘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반대로 나에 대한 나의 평가(A)가 실제 나의 능력(B)과 외부의 평가(C)와 전혀 관계를 맺지 못하고 터무니 없는 공상에 그칠 때도 문제는 있다. 그런 경우, 어떠한 반성도 없으며 고무될만한 자극도 받지 않는 ‘고립’의 상태가 된다. 결론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늘 외부와 내부의 기준에서 줄타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너무 독단적이어서도 안되며, ’실재‘라는 함정에 매몰되서도, 타인의 평가에 기가 죽어서도 안된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좋은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장'은 연료가 끊긴 기관차처럼 이내 멈춰버린다.



2. 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C)를 위한 로비스트


'C - A - B' 형태로 성장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일 먼저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평가 또는 기대를 무슨수를 쓰던 끌어내고 그 에너지를 통해 일종의 자신감 또는 자존감 같은 것을 얻어 실제 퍼포먼스가 좋아지는 경우다. 보통 ‘평가’라고 하면 ‘실재’ 혹은 ‘실행’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와 관계없이 세상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 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예를들면 당당한 태도나 적극적인 자세, 호감이 가는 말투나 외모. 약간은 근거없는 자신감같은 것으로 미리 자신의 가치를 올려 놓을 필요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나의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실제 성장 과정중에 아주 중요한 기폭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칭찬'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지만 'C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의 범주에 있다는 것은 쉬이 간과되는 부분이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준비시키는 노력이다. 나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서 내가 보여주지 못하는 나의 잠재력까지도 볼 수 있도록 상대의 마음을 최적화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은 태도일 수도, 기획력일 수도 있으며 로비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의 실체와 관계없이 나의 가치를 높이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두 인물 '기택'과 '충숙'이 있다. 둘의 A와 B는 동일하며 같은 정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택'은 항상 자신감 있는 태도로 상대방의 눈을 보고 얘기하며, 심지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시 물어볼 때조차 늘 당당하다고 여유 있는 반면 '충숙'의 태도는 다르다. 항상 경직되어 있고, 완벽하기 위해 주저하는 모습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기택'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의 표정과 태도를 통해 단지 'Hello'라는 인사만 했을 뿐임에도 그가 영어를 꽤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지하지 않아도 무의식이 그렇게 반응한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리와 마음은 '기택'을 웬만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때로는 '기택'이 틀린 단어나 문법으로 얘기하거나 논리적 비약이 있어도 그들이 알아서 고치고 조합하면서 잘 알아듣는 마법이 작동한다. 마치 한국인이 한국어로 된 문장을 읽을 때는 의도적으로 오타들이 들어가 있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올바르게 내용을 이해하는 것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관찰자가 맞춰주는 것이다. 그들은 '기택'을 평가절상하게 되고, 그런 상대의 태도에 마음이 더 편해지고 자신감이 생긴 '기택'은 더 좋은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되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빠른 성장의 기폭제가 된다. 반면 '충숙'을 대하는 사람들은 왠지 그녀가 영어를 잘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대화를 시작한다. 상대의 마음이 닫히고 뇌는 고장 난 8비트 컴퓨터처럼 돌아가다 보니 '충숙'이 꽤나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조차도 잘 못 알아듣게 된다. 상대방의 뇌는 '충숙'이 영어를 못한다는 선입견에 이미 단단히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불편한 표정, '충숙'이 말만 하면 What?! 을 해댄다. '충숙'은 자신감을 잃었고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 할수록 말은 더 꼬이고 상황은 더 악화된다.




더 나은 실력을 갖기 위해 누구 못지않게 노력했지만 더딘 성장에 발목이 잡힌 느낌이 들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내 마음도 모르고 너무 자주 찾아온다. 때로는 이상적인 위치에서 때로는 객관적인 위치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유연함,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나뿐 아니라 상대의 몸과 마음까지도 준비시키는 치밀함과 여유가 필요하다. 만약 ‘실력’을 끌어올기기 위한 노력에 시간과 열정을 충분히 쏟았음에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런 시도를 해봐도 좋을때다. ‘


‘세상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을 결정하는 것 역시 결국은 나다’





이미지 : https://pixabay.com/ko/photos/생활-likeforlikes-520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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