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날, 빨래를 개다가
나 너무 행복해! 사랑해!
마구마구 외치고 싶은 가을날의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에 가을볕 내리쬐는 테이블 위에 세탁을 마치고 보송해진 수건을 가득 쌓아놓고 수건을 개다가 문득 마음이 몽글몽글 차올라서 옆에 있던 켄지에게 손을 내밀어 허그하고 I love you라고 했다. 그랬더니 켄지는 이유를 묻지 않고 폭 깊이 안아 주었다.
사실 이유를 물어봤으면 대답할 말은 너무 많고, 실은 딱히 없기도 했다.
그냥 오늘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거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좋지?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거지?
그런 질문이 마음 속에서 고개를 스멀스멀 들었다. 그런데 그 질문은 이전과는 달리 불안이 아니라 경탄을 불러냈다. 이 조건없는 사랑과 따스함에 나도 기꺼이 사랑을 가득 담아 품 가득 껴안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이제 아니까. 믿으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다정한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행복이 차올랐던 것이다. 이럴수가!
이번에 진행한 프로젝트들에서 모두 계속 함께 하자는 러브콜을 받았다. 운영하고 있는 여성 아웃도어 커뮤니티 사람들은 서로에게 응원과 사랑을 듬뿍 나누어주느라 매일 분주하다. 준비하고 있는 컨퍼런스를 위한 미팅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내 마음을 위로한다. 하루가 끝나가는 늦은 밤에도 줌으로 새로운 프로젝트 회의를 했다.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지만 소진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좋아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 아침에는 일찍부터 은진이 지난 번 진행한 이니스프리 플로깅이 반응이 너무 좋아서 추가로 편성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여자들 마음에 불을 지피우고 있다며 - 아니 그런 엄청난 칭찬을? 멋진 은진이 그렇게 말해주다니- 쑥스러우면서도 사실 기뻤다. 이 기쁨을 부정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실 이 질문은 현재이자 미래진행형이다. 나의 불씨는 오롯이 내 주변에서 온 것. 나는 불은 잘 붙이지만 계속 피워내는 것에 게을러지는 나를 늘 자책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책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그 에너지를 나와 함께 불을 피워나갈 사람들을 찾고 초대하는데 쓰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설득하는 건 자신있었다. 주의 깊게 누군가를 관찰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와 맞는 조각을 찾아내고, 그 사람과 닿으면 좋을 것 같은 다른 조각들과 애정을 가지고 이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내가 애정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내가 충분히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사람들과의 조각을 찾고 연결하는 일은 나에게 너무 흥미로워서 그것만큼은 지치지 않았다.
그렇게 모아온 관계들이 지금 내 주변에 하나씩 쌓여가고 있다는 걸,
이렇게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날 만들어진 틈에, 본다.
이 모든 게 10월 안에 일어났다니!
햇살은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다정하게 빛을 쬐여 주었다.
물론 감정과 기분은 날씨 같은 거라서 이유없이 왔다가 이유없이 가기도 할 거란 걸 안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지금의 이 화창한 날씨와 행복을 온몸 가득 껴안고 즐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