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OO당님께 여쭌다. 나의 미래를.
긴 추석 연휴입니다. 긴 호흡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간만의 쉼을 즐기기에 맞춤한 기간이었나 봅니다.
저만 빼놓고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빨리 가자."
나이는 먹어가는데,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회사일은 도무지 진전되지 않는 것 같고,
시골집의 아빠는 더 많은 지원과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제대로 피어본 적도 없는 내 인생인데, 부모의 허물어짐과 제 시듦이 겹치다니요,
얼마 남지 않은 내 리즈,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보낼 수 없습니다.
회사일로 답답해하는 걸 본 친구가 찾아가 보라고 한 사주카페에 찾아가기로 합니다.
시간 약속을 해놓고 마음이 급해 결국 동생에게 서둘러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제 채근에 못 이겨 세탁조 안에 빨래를 담가놓고 따라나선 동생과 사주카페로 향합니다.
사주카페는 목동에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절대 가지 않는 동네입니다. 너무 멉니다. 서울은 왜 이리도 큰가요.
목동에만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보통의 어려움은 사주카페보다는 술집에 가는 게 더 익숙합니다. 살아가는 얘기 하다 보면 술맛 납니다. 내가 사주는 몰라도, 술은 잘 사줍니다.
고민은 두 가지입니다.
저 회사 옮길까요?
저희 가족 어떻게 할까요?
역시 듣던 대로 뛰어난 사주 선생님입니다.
묻기도 전에 선방을 날립니다.
"생년월일생시는 알죠? 관상은 나쁘지 않네. 옆에(동생은) 결혼할 상이네. 결혼했어요?"
"못했습니다."
"자랑 아니에요."
"아.. 네."
1분도 못 버티고 기세에서 눌렸네요.
생년월일생시를 가지고 노트에 한자 몇 개를 적은 사주 선생님은 저에게
"앞으로 4년간 운이 아주 좋네. 대운과 소운이 같이 들어왔어. 연애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이직을 하든 이 안에 해야 돼"합니다.
아니 선생님 저도 제 커리어 수명이 길게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찾아온 겁니다.
4년 안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고민해 봐."
아니 선생님 저도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요,
아직 이전 펀치에 얼얼한데 선생님은 다시 쨉을 날리며 들어옵니다.
"연애도 그 안에 해결해야 돼. 만나는 남자, 관심 가는 남자라도 없어?"
"없는데요, 고추잠자리도 없어요."
"자랑이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소개해달라고 하세요"
아니 선생님 저는 부끄럽지도 않지만, 지금 남자가 문제가 아니고요,
저는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찾아왔는데요,
"보는 김에 타로도 봅시다. 본인 마음을 들어봐야겠어요"
선생님은 사주에서 타로로 옮아가며 계속 질문을 던지고,
저는 계속 카드를 뽑습니다.
아차! 타로는 질문이 늘어갈수록 추가 과금식이 아니던가요?
듣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 듣고 막연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생각했던 저의 불안감은
"향후 4년간"으로 명확해진 상태로 저는 결국 물러섭니다.
"남자 생기면, 본격적으로 연애하기 전에 꼭 생년월일시 들고 와요.
이미 진전된 다음엔 나도 말 안 해주니까. 꼭 그전에 와요."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서 갔는데
남자 얘기만 잔뜩 듣고 오니 영 뒷맛이 찝찝합니다.
"세상엔 정말 팔자 좋은 사람 많은가 보다. 먹고살 걱정 없으면 남자 얘기나 하고 시간 때우는 건가?"
말은 했지만,
저도 얼마나 팔자가 좋습니까. 굳이 남에게 안 물어도 빤히 내가 풀어야 할 고민을 돈 내고 그 멀리까지, 심지어 동생네 집 세탁조에 빨래까지 담가두고 와서 들을 일이랍니까.
대충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잠시나마 기대했던 제가 한심하네요.
X 됐습니다.
제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위해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4년 안에 어떤 노력을 할지,
지금 당장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무한한 자유를 느낍니다.
이 인생, 진짜 온전히 내 것이구나.
부모님 꺼, 가족 꺼, 회사 꺼 아니고,
나에겐 무한한 책임을 가진 여러 선택들이 있고,
이게 내 인생을 만드는구나.
X 됐는데...이거 왠지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