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도 괜찮았어, 네가 있어서

친구라는 운명에게 보내는 도착하지 않을 편지

by 마타이

35, 36.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너와 나의 출석번호야. 그땐 다들 두 개의 번호가 있었지. 하나는 가다다 순서대로 한 출석번호, 하나는 키순서 번호로 체육시간이나 자리를 배정받을 때 쓰는 번호.


'ㅅ'으로 시작하는 너의 성과 'ㅇ'로 시작하는 나의 성 덕분에 우리는 마주칠 일이 많았어. 몸만 컸지 아직 취향이란 것이 한껏 자라지 않은 우리에게 이건 가까워지기 충분한 특별한 인연이었지. 심지어 우리는 키도 169cm, 171cm로 앞뒷자리였고, 둘 다 제법 예뻤잖아.


아 또 한 가지! 너는 내 옆집에 살았지. 우리는 이 사실을 늦게서야 알았는데, 그건 니가 니 얘길 잘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서만은 아냐. 어쩌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아파트 살이가 우중충하게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아.


"첫날부터 무슨 비냐"

"그러게..." 우산을 쓰고 한 발 뒤처져 걷던 동생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어. 아닌가. 원래 원내 내동생 다문 입술은 양끝이 살짝 쳐져있지. 너도 기억나지?

"그래도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좋네"

동생과 나는 처음으로 주공아파트로 귀가하고 있었어. 나는 내 사이즈보다 큰 '무궁화' 브랜드의 옅은 회색 교복, 동생은 딱 맞는 짙은 회색의 '아이비' 브랜드의 교복을 입었지만, 우리는 엄연히 같은 학교에 2년째 같이 다니고 있었지. 보통은 서로의 동네 친구들과 각자 등하교했는데 이날만큼은 함께였어. 니가 바로 옆집에 산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아직 단지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어.


동생 앞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주변머리 없기론 동생보다 조금 나은 나 역시 이 동네가 낯설고, 길도 모르겠고,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무섭더라. 넌 그 전에도 아파트 살이를 했다고 했지? 난 그전에도 아파트가 좋은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정말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어.


아빠가 대금 대신 받은 부도수표를 해결하지 못해 우리도 부도가 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 나라 경제가 내 팔자도 좌우할 수 있다니. IMF는 유치원 때부터 살던 집에서 우리 가족을 복도식 아파트로 이주시켰지. 다섯 식구는 미닫이 거실 하나에 딸린 작은 주방과 작은 방 안으로 삶을 구겨 넣었어.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은 부부 외에도 성년이 거의 다 된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었고, 그중 한 명은 고3 수험생, 바로 나였지.


아파트가 싫었어. 이 무렵엔 다들 좀 망연자실 하고, 당황스러운 가운데 각각 새로 펼쳐진 환경 속에서 적응하느라 바빠서, 이사 가기 전, 그러니까 진짜 망하기 일보직전의 우리보다는 서로 덜 싸웠는데 좁아터진 집 안에서 부딪히다 보면 그래도 가끔은 싸우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을 거야.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절망 어딘가엔 자꾸 가느다란 빛이 보이는 법이고, 나 역시 그 아파트에서 보냈던 다정한 시간들이 종종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네. 아마도, 나이가 들고, 처지가 달라졌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일 거야.


어쨌거나 딱 이사 가고 얼마간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어. 주위를 둘러봐 봤자 나만큼이나 불쌍한 내 동생들만 보였거든.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듣게 된 거야, 너에게.


"우리 집 망해서 이사 갔다. 저기 주공아파트 있잖아"

"어 그래? 나돈데. 나도 망했어. 넌 몇 동이야?"

"106동"

"대박 나도 106동인데"

"우와 넌 몇 층이야"

"3층"


너는 복도식 아파트의 코너집이고, 우리 집은 그 집 바로 옆집이었어. 우리 집 사람들과 다르게 너네 집 가족들이 얼마나 조용했던지 이사를 온 것도 옆 집에 살고 있던 것도 전혀 몰랐어.


요새말로는 메타인지, 주변머리가 없는 나는 너를 만나고서야 드디어 세상에 망한 건 우리 집만은 아니라는 것. 나랑 내 동생들만 망한 집 자식이 아니라, 다른 집 애들도 망한 집 자식이 될 수 있고, 겉으로 보기엔 하나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너를 보며, 아니 어쩌면 부유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우리들의 집은 정말로 많이 가까웠는데, 작은 평수의 집이다 보니 너네 집 현관에서 우리 집 현관까지의 기역자 공간은 채 여섯 걸음이 되지 않았지.


"마타이야~ 놀자~~~~~"

네 방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 복도에 붙은 내 방에서 네 목소리가 들렸어.


네 부름을 받아 너의 집에 가면 먹다 흘린 라면 면발이 잠옷에 붙은, 돌돌이 안경을 쓰고 머리띠로 미모를 숨겨서 엄청난 추녀가 된, 날 것 그대로의 너를 만났어. 노래를 같이 듣거나, 선생님 욕을 하거나, 도저히 문과는 수학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말을 하거나, 좋아하는 남자애 얘기 같은 것들을 하며 딱히 뭘 했다고 하기엔 뭣한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자주 놀러갔지만 바로 옆이다 보니 오히려 밥을 같이 먹은 기억이 적은 것 같아. 그래서인지 더 선명해. 너네 집에서 감자탕을 먹은 날이. 너네 엄마가 커다란 냄비에서 커다란 뼈를 떠서는 자꾸만 너한테 먹으라고 하셨잖아. 물론 토실토실한 나보다 마른 네가, 아니 자기 자식이 더 많이 먹길 원하셨을 수는 있지. 그치만 우리 집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우리 집은 항시 손님이 우선이었거든.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 나는 수년동안 곱씹고 또 곱씹었어.


너네 엄마 나 미워하셨나? 종종 야자 끝날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가 데리러 오셨었잖아. 나를 마주치시면 항상 "너는 왜 교복을 안 입고 체육복을 입고 다니니?"라고 퉁박을 주시는 것이나, 너만 챙겨 떠나시는 것이나... 아무래도 날 나쁜 친구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 어머니는 사근사근하고 본투비 수다쟁이인 나를 엄청 예뻐하셨는데...


하지만 커다란 뼈를 안 주시고 내 힙한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셨지만 난 괜찮았어. 니가 내 친구이자 동네이웃이 되며, 내 자존감이 한껏 높아졌는데 그건 앞서 얘기했듯 망해도 멀쩡한 애가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니가 얼마나 날 좋아했는지 알기 때문이야.


시간관념이 워낙 없었던 나는 아무 때나 오고 가기 일쑤였어. 인문계 고등학생이면 다 견뎠던 남들 다 하는 0교시엔 제대로 참석해본 적이 없지. 늦어서 허구한 날 교탁에 나가 회초리를 맞았어.


야간 자율학습은 어쩐지 자유를 억압받는 것 같아서 달리 갈 곳도 없는 주제에 열정적으로 꾀를 냈다. 담임선생님의 도장을 지우개에 조각해 외출 허가증에 찍고 나갔고, 들킬 것 같으면 4미터 높이의 학교 담장을 넘어 아파트 놀이터로 넘어가는 바람에 이웃 주민들에게 민원을 받기도 했어. 결국 산 쪽으로 난 철조망 담 아래에 개구멍을 파서 다니다가 현타 와서 그만두기까지 자유를 향한 열정만큼은 맘껏 불살랐지.


시간 관념은 직장 가서 남의 돈을 벌고서야 겨우 생겨서, 지각은 대학에 가서도 그대로 이어졌지. 학비를 버느라 바빴던 것은 핑계이고, 약속 시간 30분을 넘기는 것은 대수였어. 헐레벌떡 달려가면 너는 항상 집에 가서 읽으라며 편지나 강의노트를 쭉 찢어 쓴 편지를 건네주었어. '매번 30분씩, 1시간씩 늦게 나타나는 너와는 친구가 될 수 없으니 이제 안녕'이라고 써있을까 봐 늘 두려웠지만 열어보면 항상 나를 만나지 못한 동안 너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들어 있었어. 나는 덕분에 네 새로 사귄 대학친구들을 질투하지 않고, 너를 좋아한다는 어떤 오빠,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는 막다른 마음, 이상하게 행동하는 학교 조교 선배, CC 몇 번 했다고 같은 여자 동기에게 걸레라고 얘기한 남자 동기 같은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지. 너는 늘 나에 일상과 생각을 공유해 주었어.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꽤나 다른 형편이라는 것. 너에겐 너만의 방이 있다는 것, 너네집은 가짜 부도 상태여서 곧 공덕의 신축 대형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것을 알아도 괜찮았어. 우린 이미 통했으니까. 우리는 친구니까.


대학 여름방학,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너와 제주도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어. 한정된 예산으로 움직이는지라 배를 타기로 했는데 "늦지 마. 절대. 알았지? 배는 늦으면 못 타는 거야" 네가 하도 강조하길래 조금은 신경질이 났어.


"아 안 늦어. 내가 아무리 맨날 늦어도 제주도 가는 배를 못 타겠냐?"

"진짜지? 나 그날 너한테 모닝콜도 안 할 거야"

"아 걱정말래도. 자꾸 이러면 짜증 날 것 같아"


그치만 그날도 배 시간을 넘겨서 인천항에 도착했지. 숨을 헐떡이는 나를 보며 너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어. 내가 도착하자 어머니는 네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배낭을 걱정 반 대견함 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셨지. 네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너는 어떻게 이런 날도 늦니?"하고 퉁박을 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어.


그래. 네가 출항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이르게 말한 덕에 우리는 무사히 제주로 여행을 갈 수 있었어. 가면서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어쩐지 하나도 초조해 보이지 않더라니. 넌 나보다 날 잘 알아. 그렇지만 10분도 30분도 아닌 1시간이나 이르게 말한 것이 내심 서운했다. 내가 그 정도로 개념 없는 인간은 아니지 않아?


벌써 못 본 지 10년이 지났어. 영국 남자를 만나 20대 후반에 일찍이 이민을 간 네가 한동안은 정말 미웠다. 그렇게 가버릴 줄 알았다면 너랑 우정 따위 쌓지 않는거였다고, 내 지나간 청춘은 누가 이야기해주는 거냐고 했었어.


그런데 J야. 자라고 나니 내 미숙함으로 소중한 인연을 잃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 아직 써보지 못한 너와의 에피소드가 아직 많이 남았네. 근데 왜 이 얘기들을 쓸 생각도 누구에게 말로 할 생각도 한 번도 못했을까? 아무래도 다 내 잘못이었던 것 같다.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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