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미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첫날부터 정강이가 깨졌다. 배에 올라타려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았는데 그가 나를 붙들고 휘청하다 다친 거다. 다친 건 다친 거고 어쨌거나 여행에 집중했다. 어릴 때 숱하게 무릎이며 얼굴이며 까지고 피나고 해보지 않았나.
5박 6일 여행이 끝나고 현실 복귀. 10센티가 되려나. 상처부위가 심상찮다. 쓰리고 부어올라 진물이 차오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상처에 계속 바닷물도 닿았고 넘어질 때 쇠도 닿은 것 같다. 파상풍은 녹슨 못에 찔렸을 때 걸린다고 했었나?
내내 태평하다가 갑자기 불안해진다. 이러다 휴가 잘 다녀와서 다리 잘라야 하는 거 아냐? 무지에서 시작된 불안은 결국 시골 아빠집에 가서 폭발한다. 연휴에 문 연 당번병원을 찾았다. 내과다.
이 지경까지 두다가 왜 이제야 왔어요?
파상풍 이런 거는 아니겠죠?
파상풍을 아는 사람이 이랬어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그 말이면 무조건 다되죠
항생제와 파상풍 주사 처치를 했다. 딱지 앉은 상태로 고름이 차오른 상처 부위를 드레싱 하다 좀 더 불려서 내일 잘라내고 생살을 소독해야 한다고 했다. 내일 꼭 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기에 서울에 올라가 당번병원을 찾아가리라 다짐했다.
연휴 마지막날 서울 집 근처. 당번병원을 찾을 수 없다. 시골에서는 문 연 약국에서 당번 병원도 알려주던데 도통 그런 게 없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자꾸 에러 페이지로만 연결된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다 포기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어차피 못생긴 다리다. 게다가 몇 년째 오글거려서 치마를 안 입은 지 오래다. 치마가 뭐냐 반바지도 안 어울린다. 그러니 내 다리는 오직 기능을 위해 존재한다. 흉이야 상관없다. 그렇지만 만약 다리가 없다면.. 없다면...
불안한 마음에 출근한 첫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근 병원으로 향한다. 성형외과다. 째고 꿰매는 데는 여기가 최고다. 처음 간 병원이라 쓰라는 게 많아 한참 후에야 의사를 만난다. 의사가 상처 부위를 보더니 경악한다.
지금 이거 부어오르고 빨갛게 피부색이 변했네요. 고름도 나오고 이건 여기서 못하는데
아니, 이건 살이 타서 그렇고요, 이건 연고예요 고름 아니고
이건 정형외과 가야 해요
네에?
난색을 표하는 의사 옆에 있던 간호사가 소독하고 재생테이프 붙이면 될 것 같은데 하더니 재빨리 눈으로 의사의 컨펌을 요한다. 마스크 위로 눈만 빼꼼히 내놓은 의사가 승인한다.
일단 처치는 해드렸지만 정형외과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어요.
뼈는 멀쩡한 것 같은데.. 뼈가 다녔다면 쓰라린 느낌에 그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냐 내가 의사냐.. 의사가 제일 잘 알겠지.
불안한 환자는 결국 다음날 회사 인근의 정형외과로 향한다. 어떻게 됐냐고?
상처가 너무 심하네요.
이건 정형외과가 아니라 성형외과에 가보셔야 하는데, 째고 꿰매고 상처 보는 데는 거기거든요. 저도 정형외과는 아닌 것 같았지만 여기로 가라고 하서서...
뼈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엑스레이는 찍어보시죠.
역시 뼈는 아니네요.
소독이라도 하고 가시죠.
소독을 마친 의사는 이윽고 한마디 한다.
이건 딱지를 긁어내고 소독을 해야 뒤탈이 없는데 피부과를 가보시는 게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