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 이루어진다. 아주 가끔.
택시를 탔다. 드문 일이다. 팀원들이 회식 후 택시를 집어타고 바람처럼 사라질 때,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천둥처럼 뛴다. 술집에서 거꾸로 서는 요가 자세, 머리서기를 시전 하는 자타공인 '꽐라'는 지하철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를 친다.
하루는 술냄새를 풍기는 것이 민망해서 가방에서 선물 받은 고급 디저트를 꺼냈는데, 혼자 먹기 아쉬울 정도로 너무 맛있는 거다. 그래서 나눠 먹었다. 누구랑? 먹기 싫다는 옆자리 승객이랑. 예의상 거절이 아니라 명백한 거절이었는데, 강권하여 하나를 먹이고, "어때요? 드셔보니 맛있죠?" 하며 세 번이나 더 먹였다. 너무 죄송합니다. ㅜ ㅜ
지하철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비상식적인 행동, 그러나 하고 싶었던 충동 때문에 벌어진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남의 강아지를 쓰다듬고, 사람들이 보든 말든 춤을 추는 일 같은 것들. 맨 정신에는 타인과 눈 맞춤도 꺼려서 책에 얼굴을 파묻고 다니는 이가 참도 할만한 짓이다.
술 깨고 나면 이불킥 백만 번을 하면서도 한사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택시비를 모으면 3차도 갈 수 있다는 실용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전남친은 나를 두고 서울쥐라고 했다. 시골쥐보다 세련되고 부유해서가 아니라 어두컴컴한 지하로만 다니니, 남들, 잘 사는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도통 물색이 없어서란다. 그러니 지하철은 내가 속한 세계이며, 내 사상이다.
그러니 택시를 자주 안 탄 것은, 도착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멀미가 나서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어서도 아니고, 택시기사님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선고일에 택시를 타면서도 당연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택시 기사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이 많이 속상하셨나 보다. 자살하는 사람도 있으니... 아 네네 하며 듣고 있다 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줄 좋은 정치인이 없다로 흘렀다.
나는 남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건지 아니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지, 빨간 당을 지지하는 택시 기사님들이 내세우는 논리나 근거 같은 것들이 생소해서 재미있기까지 한 편이다. 그래 저런 얘기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한번 들어나보자 하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기사님은 뭔가 더 나간다.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인물로, 국민학생때까지 멋진 군인을 꿈꾸었으나 키가 도통 자라주지 않아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했다. 십 대 때 이미 자신의 직업을 결정한 그는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한 결과, 아버지에게 소 한 마리를 받았고, 이는 우리나라 축산업 발달에 이바지한 위대한 농장의 시작이었다.
본디 머리가 비상하고 기지가 있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책을 고쳐 부강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처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던 그는 진짜 서민을 위한 정치인으로 한때 G군에서 출마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의 꿈은 좌절된다. 동네 부녀자들이 그를 끌고 가, 몸을 포박하고, 국민학교 밖에 못 나온 게 무슨 정치냐고 맨발로 입을 문질렀다고 한다. 그는 모진 발마사지를 당한 후, 저런 자들을 돕기 위한 정치를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그때부터는 생업에만 전념했다.
기사님은 이 대목을 세 번 반복하며 급기야는 눈물을 흘리셨다. 15년간 집사람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왜 오늘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동네 부녀자들을 여러 차례 강조하시는 바람에 일전에 만났던 다른 택시기사님이 오버랩되어 순간 힘겨웠다.
2007년, 택시비 카드 결제가 처음 실시되었던 그때, 그 택시기사님은 택시비를 카드로 내는 손님은 죄다 젊은 여자들이라며 그런 개념 없는 젊은 여자들은 성폭행을 해버려야 한다며 백미러를 통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되갚지 못한 폭력은 어딘가에 새겨져 여즉 생생하게 기억된다.
자 다시 오늘의 택시기사님으로 돌아가자. 왜 저 기사님은 하필 윤석열이 파면 선고받은 화창한 오늘, 자신의 좌절된 과거인지 헛된 꿈인지를 처음 본 딸뻘의 여자에게 말하며 울고 말았을까. 저녁까지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설마...정말일까. G군, 2000년대 선거 관련 기록을 검색했는데 딱 마주쳤다. 득표율 0.87%를 달성한 기호 9번 무소속의 젊은 그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울게 하는. 다 털어도 0.87%였던 실력과 노력, 그리고 운. 어쩌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꿈, 어쩌면...어쩌면...
최근 down to earth라는 표현이 자주 떠오르는데 마흔 중반에서야 내가 뜬구름에서 내려오려고 이러는지, 성공한 인생이라면 누구나 응당 품어야할 야망을 단념하고 있어선지 모르겠다. 꿈꾸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미신이 아니라, 이루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꿈꾸고 노력해 봤다는 사실이 아름다워지는 사회여야 할 텐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본디, 매우 드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