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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학 Oct 24. 2019

외로움을 쉐어하세요

[막차 호주 워킹홀리데이] 03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준비해야할 것, 네 가지를 꼽자면 이렇다.


-은행 계좌 만들기

-휴대폰 개통하기

-tfn 신청하기

-그리고 집 구하기.


앞의 세 가지야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집 구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통 워킹 홀리데이에서 집이라고 하면 '쉐어 하우스'를 뜻한다. 쉐어 하우스는 한 집에 여러 명의 세입자가 사는 것을 뜻한다. 보통 한 집에 방 3-4개 정도가 있고, 한 명이 사는 싱글룸, 두 명이 사는 더블룸, 세 명이 사는 트리플룸- 이런 식으로 방을 나눠 쓴다. 비용은 당연히 싱글룸이 비싸고 여러명이서 나눠쓸 수록 저렴해진다. 하지만 시티처럼 집값이 비싼 곳이 아니라면, 세 명 이상 같은 방을 쓰지는 않는다.


또 쉐어는 크게 마스터와 같이 사는 집, 마스터가 없는 집으로 나뉜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마스터와 같이 살면 아무래도 전기, 물 등 소모품 쓰는게 눈치 보인다. 하지만 집관리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마스터가 없다면 소모품 쓰는게 자유롭지만 쉐어 메이트들에 따라 집 관리가 엉망일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어느쉐어에는 마스터 대리 역할을 하는 '매니저'가 있기도 한다.


이외에 직접 집을 렌트 하는 경우도 있고 오페어나 홈스테이도 있겠지만 비율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럼 어떻게 쉐어하우스를 구할까?


물론 '그냥' 쉐어하우스 구하기라면 어려울 것 없다. 하지만 '좋은' 쉐어하우스를 구하려면 여러가지 노력과 운이 따라줘야 한다. 


우선 내가 구하고자 할 때 그집에 빈방이 있어야 하고, 내게 그 좋은 집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워홀 후기에서는 못 봤던 나만의 생각을 몇 개 적어보자면.




'쉐어하우스' 하면 이런 느낌?




보통 4명이서 욕실 하나를 쓰는게 좋다. 이이상 넘어가면 출퇴근 시간 때 욕실 사용이 겹쳐서 곤란해진다. 다른 시간대에 출퇴근 한다고? 그래도 욕실 사용 인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깔끔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욕실과 화장실은 분리된 곳이 편하다. 쉐어하우스들은 대부분 분리되어 있지만 간혹 같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필히 거주 인원이 적어야 한다. 안 그러면 급하게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누군가 사용하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날 거다.


청결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집안 벌레 유무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집주인은 바퀴벌레가 없다 했지만, 혹시나 싶어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저녁 시간에 인스펙션 하길 추천한다. 주방에서 서랍장 문을 열 때 스스슥 소리가 들린다면 바퀴벌레가 거주하고 있는 거다. 개미도 확인해야 한다. 싱크대부터 음식물 쓰레기통 쪽까지 꼼꼼히 확인해보자. 

나도 처음에는 개미가 있는 집에 살았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어느날 헤드셋을 바닥에 떨어뜨린 날이 있었다. 주우려고 했다가 경악했다. 개미들이 나몰래 부족 대이동 중이었는데, 헤드셋이 뚝 하고 떨어지니 그게 길인 줄 알고 기계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거다. 아끼던 것이었는데 맘이 쓰라렸고, 그때 비로소 이사를 결심했다.


주방 식기 상태도 확인해봐야 한다. 프라이팬, 냄비 두 가지는 제일 자주 써야하니 반드시! 상태가 좋지 않으면 요리도 잘 안 되고, 급기야 찝찝해서 새로 사버릴 수도 있다. 주인집에 말하면 바꿔주겠다 할지도 모르지만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또 냉장고 공간은 넉넉한지, 가스렌지 상태도 좋은지 확인하자. 맨 처음에 살던 쉐어에선 잘 달궈지지 않는 인덕션 한 구만 있어서 물 한 번 끓이려면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집주인은 곧 새걸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내게 말했지만 그 '곧'이 한 달 이상 걸렸었다. 이왕 쉐어하우스 들어간 거 부대비용은 줄이는 게 좋으니까 꼼꼼히 체크하자.


집을 여러개 비교해볼 여유가 된다면 세탁기도 확인해보면 좋다. 어느 집에서는 세탁만 하면 그렇게 먼지가 묻어나왔다.


또 그외에 이 집에서 기본 제공해주는 용품은 뭔지도 물어보자. 침대 시트, 휴지, 주방 세제, 수세미 등등. 쉐어별로 천차만별이다. 빌 포함, 본드비 같은 것들은 다른 데에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이니 생략하겠다.


여기까진 쉐어하우스 구하기에 대한 이야기고, 이제는 내가 살았던 이야길 해보고 싶다.






내 첫 쉐어하우스는 '하우스'였다. 하우스가 무엇이냐면은 아파트 말고, 목재로 지어진 단독주택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위에서 살짝 적었듯이 우리 하우스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우스메이트들이었다. 대만, 중국, 중국, 말레이시아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살았었는데 나빼고는 대부분 장기 거주자였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온 여자애가 그랬다. 그래서였을까, 본인이 관리자인 것마냥 몇 번 나를 훈계했다. 처음에야 내가 어떤 규칙을 어겼나보다 싶어 넘어갔는데 갈수록 그녀가 너무 히스테릭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터진 사건은 이거였다. 


쉐어하우스에 새로운 인덕션 한 구가 들어왔다. 사용 후에는 자동으로 쿨링시스템이 가동되는데, 이때 소음이 발생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쿨링시스템이 멈춘 후에 전원을 꺼달라고 벽보에 적어놨기 때문에 그전에 끌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요리를 마치고 쿨링되길 기다리는 사이 그 여자가 나와서는 내게 화를 냈다. 시끄러운데 왜 끄질 않냐는 거였다. 나는 황당해서 바로 벽보를 가리켰다. 그것은 인덕션 바로 위에 영어로 붙어있었으니 그 여자도 이해할 수 있었을 거다. 다만 읽지 않은 것뿐이겠지. 그녀는 뒤늦게 그 벽보를 보고는 'okay'만 말하고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사과 한 마디 조차 없다니 황당 그자체였다. 그런 그녀가 저녁시간만 되면 다른 쉐어메이트들과 중국어로 떠드는 소리를 듣고있음 이게 뭐지, 싶었다.


그 날 이후로 내가 느낀 감정은 뭘까? 외로움이었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일도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친한 사람이 없었고, 쉐어 친구들은 나 빼고 모두 중국어로만 대화하고, 한국 친구들에게 말하자니 어디서부터 털어놔야할지도 모르겠고, 깊게 공감을 주고받기엔 어려운 문제로만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가끔 외롭다 느낀 적은 있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했다면 이곳에서는 고립된 느낌이었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구, 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다.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바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호주에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쯤되니 한국에서 친구와, 자매와, 혹은 연인과 같이 온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혼자 온 것을 후회하지도 않고, 혼자 오는 것이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내 목적에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나도 저들처럼 감정을 공유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내게 이상한 친구가 생겼다. 룸메이트 Zoe. 


중국에서 온 여자애. 뉴질랜드에서도 1년 워킹 홀리데이 경험이 있는 친구. 케언즈에서는 4개월째 리조트잡 중이었는데, Zoe는 데이오프날에도 바빠서 나와 자주 마주치진 못했다. 이곳 생활이 나보다 훨씬 길었으니 당연히 그녀에겐 친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그녀에겐 취미도 많았다. 처음 입주한 날 눈에 띄었던 것은 좁은 방 안에 놓여있던 통기타였다. Zoe는 시간이 나면 그 통기타를 메고 라군lagoon으로 나가 연습하곤 했다. 또 한 번은 방 안에 수영장비와 책 몇 권이 널려있었다. 무엇이냐 물어보니 스쿠바다이빙 라이센스를 받기 위해 교육 중이라 했다. 그녀가 일하는 리조트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 있는데, 직원할인이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다이빙이나 스노쿨링을 할 수 있다 했다. 나보고도 같이 가자 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물이 무서워서 덥석 알겠다 하진 못했다. 어쨌든 Zoe는 일할 때는 일하느라 바쁘고, 일 안 할 때는 취미생활 하느라 바쁜 친구였다.


그래도 시간이 맞으면 가끔 대화를 나누었다. Zoe는 처음에 내가 일자리 구하느라 고민을 하니 자신이 일하는 회사 사이트도 알려주고, 자신의 커버레터도 참고하라며 보여줬다.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이 얼마나 개인적이었는지 떠올리면, Zoe는 정말 친절하고 이타적인 친구였다. 그런데다 비슷한 문화권과 비슷한 나이, 같은 성별이었던 덕에 우리는 워킹홀리데이에서 느끼는 점이 비슷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서로 핸드폰 번호도 모르고 같이 밖에 나가 놀아본 적도 없는데, 가끔 마주쳐도 쉽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나이에 워킹 홀리데이를 오면 주위에서 얼마나 걱정하는지, 하지만 우리는 왜 왔어야만 했는지, 그렇게 호기롭게 왔는데도 고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하루는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곳 사람들은 어린 나이부터 독립한대. 부모님도 지원 안 해주고. 대신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자식들도 부양하지 않아도 돼.

-우리랑 다르구나. 우리는 부모님의 지원을 많이 받고 대신 나중에 부양을 해야하잖아.

-응. 그래도 형제자매가 있으면 낫지. 난 없어서 혼자해야해. 그래서 워킹 홀리데이 올 때 고민도 됐어. 내 커리어가 끊기는 거니까.


또 이런 이야기도 기억난다.


-오늘 길 가는데 인종차별 당한 거 같아.

-왜?

-지나가는데 누가 차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나도 그런 적 있어. 지나가다가 클락션 울려서 놀래키기도 해.

-역시 내 느낌이 맞구나. 왜 그러는 걸까? 지들이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점점 친해지다 내 이야기도 꺼내게 됐다.


-난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해서 혼자 워홀을 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아예 혼자이니까 외로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밥먹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어.

-진짜? 그럼 나랑 먹자.


그로부터 얼마 안 가, 그녀는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거를 대접해주었다. 내 인생 최초의 훠거이자, 내 인생 최초로 외국인 친구가 나를 위해 해준 음식이었다.


우리는 호주에서 겪는 하루의 작은 소동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각자의 고민, 때로는 아시아에서 태어난 우리의 고민, 또는 여자로 태어난 우리의 고민 등을 나누다 잠들었다.


이상한 일이지.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기에 쉐어메이트에게 스트레스를 받지만 동시에 쉐어메이트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Zoe는 그렇게 내가 워킹 홀리데이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되었다. 워홀 극초반, 위태롭고 건조했던 그 시기에 내 그런 감정을 공유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얼마나 든든했든지.


하지만 동시에 집은 점점 더 최악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이사를 결심했다. 내 이사소식에 Zoe가 실망할까봐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랑 지내면서 불편한 것은 전혀 없었어. 오히려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지. 다만 내게는 책상이 필요한데 이 방안에는 둘 수 없고(너무 좁았다), 집이 청결하지 않고, 쉐어메이트 중 하나가 너무 예민해서야.

-아, 나도 전부 동의해.


알고보니 Zoe도 그 쉐어메이트를 불편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겪은 일을 한참이나 털어놓았다. 그때 나도 Zoe도 많이 웃었다.






시간이 흘러 Zoe는 호주를 떠나게 됐고, 나는 케언스를 떠났다. 지금도 연락하는 좋은 친구 사이라는 해피 엔딩이 되면 좋겠으나, 이후 우리는 SNS를 통해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끊기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의 화제거리가 없으므로. 가끔 네가 생각나서 연락했어, 뭐하고 지내, 이런 가벼운 안부는 물을 수 있겠으나 그때의 우리처럼 공통으로 공유할 게 없으니 길게 대화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그녀는 여전히 친근한 존재고 고마운 존재다. Zoe와 보냈던 시간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때 우리가 방안에 누워 까만 천장을 보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나를 위해 양손 가득 훠거 재료를 잔뜩 사왔던 모습. 자신이 연습한 통기타 연주를 들려주던 모습. 출근한다며 조용히 짐을 챙겨 나가던 모습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잊히지 않아 지금도 나를 위로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외로웠지만, 내 외로움을 나눠 가져주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운이었다고. 사람이 너무 절실했던 시절, Zoe가 나의 사람이 되어주어서 정말로 고마웠다.


비록 내 첫번째 쉐어하우스는 최고의 쉐어하우스는 아니었으나, Zoe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이후 여러 하우스를 돌아다니며 느낀 거지만, 좋은 집 찾기보다 더 힘든 것은 좋은 하우스 메이트를 만나는 거였다. 여러모로 나는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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