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말을 실감하며 살진 않는다. 다만, 언젠가 이별한다는 것에 실감하며 오늘 더 사랑하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에 도사리고 있던 이별에 점점 애통해하다보면 허무주의에 빠지고 만다. 그 이유는 '언젠가' '어차피'라는 단어 때문이지 않을까? 어차피 모든 것에는 끝이 있으니 시작해야 하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도태된 사람의 얼굴은 회색빛이고 바라보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럴 거면 어차피 죽을 테니 살아갈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닌가.
어렸을 때 죽음이라는 건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지만 지난 2년 동안 나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하늘로 보내며 죽음을 실감했다. 구태여 나의 죽음까지도. 하지만 그것에 일말의 두려움조차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죽는 것보단 다시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느끼는 것이 무서웠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은 초연해진다.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이라는 말을 입안에 머금고선.
완연한 어른이 된 당신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때때로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참고 있던 욕구를 마구 풀어헤치곤 했다. 거기에 후회를 하더라도, 내가 내일 살아있더라도 나는 오늘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가끔씩 꿈에 아버지가 나와 나를 바라봐주고 길거리에서 쭈쭈와 닮은 강아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그들을 떠나보낸 게 맞을까. 결국엔 내가 그들의 곁으로 가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나는 현실을 산다. 이별의 상처는 시간에 의해 새살이 돋아났고 애석하게도 나는 웃으며 지난날을 보냈다. 이제 여기에 남은 내 소중한 사람들과 앞으로 빛날 인생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부디 웃으며 안녕을 고할 수 있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지만 모든 걸 남기고 갈 수 있는 게 인생이니.
잊히지 않는 자는 진정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직은 그들을 놓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
p.s
사람들은 죽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
미친 듯이 산다.
-박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