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가방
현재 저는 두 개의 가방을 번갈아 쓰고 있는데요. 하나는 2년 전 치앙마이를 여행할 때 선데이 마켓에서 산 가죽 가방이고 하나는 8년 전 대학 입학 때 사촌 누나가 사준 잔 스포츠 백팩이에요. 이상하게 가방이라는 것에는 욕심이 나질 않아 참 징그럽게도 이 아이들을 메고 있는데 사실, 너클이 하나 둘 빠지고 속 가죽이 다 벗겨졌는데도 그건 저만 볼 수 있는 것이라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아침에 어떠한 물건을 가지고 나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으면 저는 그 물건들과 가방의 크기를 가늠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봅니다. 그리고 준비한 순서대로 차곡차곡 물건을 넣으면 테트리스처럼 잘 맞아떨어져 기분이 좋아요. 오래 쓴 만큼 수납공간도 잘 이용하거든요. 예를 들면 앞쪽 공간에는 선크림과 무선 마우스. 위쪽 작은 지퍼에는 렌즈통과 에어팟을 넣은 것처럼. 가방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한 달 전부터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지 않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가방도 없고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그리고 통장잔고)
오늘 카키색 잔 스포츠를 등 한쪽에 메고 교보문고를 가는데 저랑 똑같은 가방을 멘 학생이 보이더라고요. "오오" 하며 뒤돌아보는데 이 가방과 함께 한 시간이 무려 8년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어요. 그때 저는 아주 묘하고 몽롱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잔털이 서고 왠지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무런 투정과 물욕 없이 묵묵히 이 가방을 사용했던 제가 썩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촌스러운 것을 떠나 저의 시간을 머금은 이 아이들은 저에겐 참 편하고 좋은 물건입니다. 디지털 기계는 누구보다 빨리 바꾸려고 하면서 이런 것에는 왜 이리 무색한 지 어찌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써보려고요. 나중에 우리 아들내미가 학교 갈 때 준다고 하면 너무 아저씨틱한가요. 아무쪼록 20년 뒤에 친구 놈들과 등산을 할 때 부디 건강한 몸으로 이 가방을 메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낡으면 고칠 의향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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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팔 월의 첫 클래스를 가야 할 시간이네요. 오늘 제 어깨에는 이 아이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 모든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