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슬로~ 퀵! 퀵!
“여보! 나 브런치 작가 됐어!”
“오~~~ 근데 그거 대단한 거야?”
“그럼! 자기소개랑 활동 계획에다가, A4 2장짜리 글까지 써 보내고 합격한 거야!”
“오~~~ 그래? 그럼 오늘 삼겹살에 소주 파티?”
우아한 브런치와는 거리가 먼 삼겹살에 소주라는 다소 생뚱맞은 대화로 마무리된 짧은 자랑과 축하. 그 순간에는 저녁 메뉴 고민을 덜었다는 현실적인 기쁨이 더 컸다. 오가는 삼겹살 속에 “오~ 작가 된 걸 축하해!” 같은 부류의 아름다운 말이 오갔을 거라는 건 오산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브’ 자든, ‘작’ 자든 그 비슷한 말이라도 누가 꺼낼세라 우린 지극히 평범한 식사를 했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아서 일 테고(왜 우리가 삼겹살을 먹는지 기억이나 했을까), 나는 쑥스러워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난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달았고 늘 그렇듯 다음 날 새벽 첫 루틴으로 책을 편다.
이쁘고 사랑스러운 노랑 표지의 에세이 책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말랑말랑 거린다.
책이 좋아 책을 읽는다.
특히, 에세이가 좋아 에세이를 읽는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 안에는 나도 있고, 내 가족도 있고, 내 친구도 있다.
70%의 내향인답게 혼자의 시간을 미치도록 찾고, 30%의 외향인 답게 드물게 사람을 찾는 나에게 에세이는 찰떡이다. 그야말로 절친 중의 절친 되시겠다.
내 마음과 똑 닮은 구절을 만날 땐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필사를 한다. 필사를 하는 동안은 그 필력이 마치 내 것 같고, 나는 이미 작가가 된 듯하다. 신데렐라의 기분이 이런 걸까. 그 기분에 도취되어 책 없이 내 마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감히 스멀스멀 올라온다. ‘뭘 쓰려고?’ 스스로에게 묻고 ‘글쎄, 딱히’라고 답한다.
‘글쎄, 딱히’이지만 살면서 문득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마음으로다가 시댁 흉도 좀 보고, 남편 흉도 좀 보고, 몽글몽글했던 첫사랑 얘기도 해 보고 싶고, 간질간질거리는 생각과 꿈들도 토해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이때, 글쓰기가 그렇게 간절해진다. 수다보다도. 그 마음이 브런치 작가 도전을 부추겼다. 감사하게도 글을 더 써보라고 응원받았다. 열심히 쓰고는 비밀글 처리 해 버리고 마는 글이 아닌 읽힐 수 있는 글을 써보라고 허락받은 듯했다. 지금은 대나무 숲이 간절하다. "여러분~! 저 브런치 작가 한 방에 합격했어요오오오". 부디, 삼겹살에 소주라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기를.
쓸데없는 공부를 할 때의 뿌듯함, 쓸데없는 것들을 향한 열정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당장 먹고사는 일과 거리가 조금은 먼 공부를 동경한다.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기운다. 때로 밉깔스러운 행동을 해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응원하고 존경한다. 늦은 나이에 영어가 좋아 영어 공부를 시작한 분이 있었다.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아주 열심히. 외국 여자한테 새 장가가게?라는 주변의 놀림 담긴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의 4년여간의 영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영어 학원 취직으로까지 이어졌다. 적어도 그에겐 쓸데없는 것이 쓸데 있는 것이 된 것이었다.
나에게 읽기와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일과 관계가 없어 다소, 아니 많이 쓸데없어 보이는 일. 어느 날 말다툼 중 남편이 물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데 그거 다 어디 간 거야?"라고. 쓸데없는 공부가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찔린 나는 "그렇게 책을 읽어서 이 정도인 거야. 안 그랬음 나 오빠랑 진즉에 안 살았어! 쳇!"이라며 당차게 대답했다. 그리곤 속으로 '잘했어'라고 토닥였다.
나의 읽기와 글쓰기는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잘 쓰는 사람 수두룩 빽빽 많아 어디에 내놓을 만한 실력이 아님이 분명하기에 끝내 쓸데없는 것으로 남을 가능성이 아주 짙다. 하지만 나만이 아는 그 쓸데없는 것이 주는 희열이 있다. 그것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남편에게 했던 말 "책을 읽어서 이 정도인 거야"라는 말이 영 거짓은 아닌 것이다. 읽지 않고, 쓰지 않는 나는 아마 지금보다는 못나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것을 향한 열정이 나의 삶을 춤추게 한다. 하루 단 10분의 읽고 쓰는 삶일지라도 말이다. 하루 종일 내내 춤을 추려면 그건 고통이지만 잠깐씩 짬을 내어 추는 춤은 쉼이 될 것이기에.
오늘도 늘 그렇듯 첫 루틴으로 책을 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작가니까 영감 수집 메모지도 챙겨 옆에 두고, 노트북도 켠다.
이제 글과 함께 춤을 추려고 한다.
때론 슬로~ 슬로~
때론 퀵! 퀵!으로.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