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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Aug 25. 2022

초등 야간 자율학습

삐뽀삐뽀 초등수학 119

2년전의 일이다.

재이의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받았다. 상담 내용은 가방속에 고이 묻혀 있는 비 내리는 수학 학습지에 관한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했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초등수학 별거 있겠어. 내가 수학교육 짬밥이 얼만데...'

교만했다.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다가 겸손해졌다.

자기 자식 가르치는거 아니라는 명언이 가슴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문제집에 핸드폰만 들이대면 몇번이고 웃으면서 설명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재이는 친절한 선생님의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강의를 재생하면 어느샌가 영혼은 사라졌고, 문제집을 펼쳐주면 열심히 멍을 때렸다.


 "이래서 뭐가 될래" ,"다른 애들은 학원에서 몇 시간이나 공부하는지 알아'

10년차 수잔엄마*답게 잔소리로 조져준다. 

하지만 뭐, 잔소리를 하면서도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할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잔소리로 될 거 였음 우리반 애들 전부청소의 달인이게.

(*수잔: '수없이 잔소리'의 줄임말 )


방법을 찾기 위해 재이를 관찰했다. 

그렇지 얘는 돈을 좋아하지.  

'문제집 한권에 5000원!!'

재이는 기꺼이 움직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영악해지는 모습에 나의 시름도 깊어져 갔다. 

곧 5만원으로 딜을 할 것 같다. 학원 보내는게 더 싸게 먹히겠구나.


인터넷에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왜 그 모든 방법은 우리 아이에게는 먹히지 않는가.

인터넷에는 잘하는 아이가 넘쳐나는데,

왜 우리 아이는 그들처럼 수학머리를 타고 나지 못했는가.

결국...?

내 탓이다.

 

무수해 해왔던 '집공부는 포기해야 하나' 종류의 고민을 다시 하며,

어디 믿음직한 학원이 있는지 사방팔방 알아보던 중,

우연히 운명같은  '삐뽀삐뽀 119'의 저자이신 하정훈 박사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k6iwoKbXmlk

육아는 트렌드가 아니다.
자꾸 문제점을 짚어내려 하지 마라.
전세계 엄마가 하듯, 우리 조상이 해왔듯, 시스템에 적응하게 하라


빛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박사님이 말하는 그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2년만에  꿈꾸고 바라던 '수학자립'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저녁 7시가 되면 다 같이 앉아 각자 스스로의 수학 공부를 하는 시스템.

(그동안 해온 야자 감독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ㅠ)

그동안의 1대1 코치로 수학에 조금은 익숙해졌기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재이와 진이가 성장해서 일수도 있고, 뇌가 자라나서 일 수도 있겠다.

암튼, 이젠 된다.


물론 처음에는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한숨을 쉬고, 머리를 책상에 처박기도 했다.

괜히 엄마 아빠가 하는 문제집에 시비를 걸고 문제의 양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모르겠다며 울고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 순식간에 되지 않는 일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에 가능한 일임을.

지금 만들어 두면 결국은 자립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 시간은 다 같이 공부하는 시간'

'집중하는 다른 가족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는 시간'

'멍 때리면 안되는 시간'을 원칙으로


'너가 문제를 틀린 것'과, '너가 얼마나 풀어냈는지'에는 엄빠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열심히 알려 주며 

시스템은 서서히 정착해 가고 있다.





집중시간이 많이 늘었다.

물론 아직도 아이들은 여전히 타이머를 여러번 돌려보며 몇분이 남았는지 확인을 하곤 하지만,

그 횟수마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오늘의 감사제목이다.



가르치지 말고, 경험하게 하라


잔소리로 아이는 바뀌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 공부할 때는 시간이 빠~알리 가게 해주시고, 놀 때는 시간이 아주 아주 천천히 가게 해주세요."

진심이 느껴지는 초2의 간절한 기도. 

나도 엄청 아멘이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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