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실수 찬가

The real numbers

by 맷수달
01209d58-26b6-4d0b-a009-9726e2cbab5a.png 이 이미지는 이 글을 프롬프트로 생성된 AI 이미지입니다.

실수는 수학 세계에서 그냥 숫자가 아니다.


거의 한 편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관이다. 벡터공간이라는 뼈대 위에 내적을 얹으면, 거기서 노름(길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고, 그 길이를 따라 수열이 달려가다 보면 "도착점"이 있어야 한다. 힐베르트 공간이란 바로 그 약속들, 즉, 내적이 주는 기하가 있고, 그 기하에서 코시 수열이 그 공간 밖으로 도망가지 않게 지켜주는 공간이다.


실수는 그 힐베르트 공간을 1차원에서 완벽하게 구현한다.

표준 내적 <x,y>=xy를 주면, 길이는 ||x||=sqrt(<x,x>)=|x|가 되고, 이 노름이 유도하는 거리에서 실수는 코시 완비다.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 있으면, 그 과정은 반드시 실수선 위 어딘가에 착지한다. 즉, "도착해야 할 극한값이 빠져 있는 해석학적 구멍이 없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름 또는 내적이 주는 위상 아래에서는 그 자체로 위상적으로도 단순하다. 모든 점 x를 시간 t에 따라 (1-t)x로 쭉 당기면 결국 원점으로 수축된다. 즉, 이런 공간은 위상적 의미에서 "감겨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멍" 같은 게 없다. 실수선은 그 단순함의 정수다. 시작도 끝도 없이 뻗어 있지만, 위상적으로는 놀랍도록 한 점처럼 단순하다. 바로 수축 가능한 세계!


그런데 실수의 진짜 위엄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간다. 힐베르트적 기하(길이와 극한)만 갖고도 충분히 강한데, 실수는 거기에 "순서"까지 얻어버린다. 크기를 비교할 수 있고, 더 크다/작다를 말할 수 있으며, 그 비교가 덧셈과 곱셈과 완벽하게 호환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순서가 "완비"하다! 위로 유계인 집합은 상한을 가진다. 이 성질 하나가 해석학의 심장이다. 연속함수가 중간값을 빠뜨리지 않는 이유도, 극한과 적분이 "진짜로"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이 완비성 때문이다.


더욱 무섭고도 신비한 사실은 이러한 요구를 동시에 만족하는 순서체는 순서체 동형을 제외하면 사실상 실수 하나로 고정된다. "완비한 순서체"라는 조건은 그냥 성질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실수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 성공한 숫자 체계다.


그래서 실수를 찬양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은 감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냉정한 조건 나열일지도 모른다. 내적이 있다. 길이가 나온다. 코시 수열이 도망가지 않는다. 위상적으로도 단순하다. 그리고 크기 비교가 가능하며, 그 비교는 완비하다.


이 조합은 너무 강력해서, 위대한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실수라는 우주가 허락하는 강력한 법칙 중에 하나로 미적분을 발견/발명한 것이다."


실수는 숫자라기보다, 수학이 극한을 믿을 수 있게 만든 약속이고, 그 약속이 지켜지는 가장 정직한 직선이다.


(주의: 글의 표현을 위해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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