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을 가르친다는 것

여행에서 깨달은 통제와 믿음의 경계

by 심원장

자율성을 가르친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내가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지난 주말 중2 아들과 아들 친구 넷 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와 이동만 내가 정하고, 그 안에서의 일정과 식사, 놀이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나는 안전만 책임지는 보호자이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이 시작되자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아이들은 별다른 계획 없이 비슷한 놀이를 반복했고, 익숙한 음식만 찾았다. ‘이럴 거면 왜 여행을 왔지?’라는 생각이 조용히 따라다녔다. 나는 통제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미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은 이어졌다. 내가 여행사 가이드처럼 일정을 짜주고, 놀이 순서를 정해주고, 식당을 미리 예약해두었다면 더 알찬 시간이 되었을까.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겉으로 보기엔 훨씬 ‘잘 다녀온 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든 여행이지, 아이들의 여행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면 거창한 계획은 나오지 않는다. 모험적인 일정도, 특별한 체험도 잘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을 한다. 어른의 눈에는 심심해 보이고, 발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아이들은 의견을 조율하고, 다수의 선택을 따르고, 작은 갈등을 스스로 해결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나이의 방식으로 사회를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 내내 마음에 남았던 찜찜함은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일부러 안 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주도성이 강하지 않은 아이라면 부모는 더 개입하고 싶어진다. 방향을 제시해주고, 기준을 세워주고,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여행이 끝난 뒤, 아이 친구가 “진짜 재밌었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재미의 기준이 내 기준이었을 뿐, 그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율성은 방임과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틀은 어른이 만들고 선택은 아이에게 넘기는 일이다. 안전은 책임지되 방향까지 통제하지 않는 것. 그 안에서 아이는 조금 느리게 배우고, 조금 서툴게 결정하지만, 대신 자기 선택의 결과를 경험한다. 그 경험이 쌓여야 진짜 주도성이 생긴다.


교실에서도 나는 늘 이 고민을 한다.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모든 계획을 세워주면 성적은 빠르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혼자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아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맡기지는 않지만 조금씩 선택권을 넘긴다. 숙제의 순서를 고르게 하고, 복습 방식을 선택하게 하고, 시험 준비 일정 일부를 스스로 조율하게 한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근육은 그때 생긴다.


이번 여행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한 걸음 물러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시간을 채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배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율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를 훈련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싸우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믿는다는 말은 거창하지만, 실은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아주 작은 용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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