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내리는 비를 막아줄 우산은 왜 없나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오후다. 야간근무 일이라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I believe in you"의 사운드가 내 손을 잡는다.
발신자는 지인이다.
"형!! 내가 형, 좋아하는 거 알지?"
"알지, 뭔 일 있나?"
"나 요즘 우울해, 외로워"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가 같이 들린다.
"노래방이나?"
"아니 노래 틀어서 그래. 여기 진짜 좋아 나중에 한번 와봐"
"오 그래"
통화를 끝내고 출근하는데 비가 솔찬히 내린다. 차량 앞 유리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계속 원을 그리고 와이퍼는 계속 원을 지운다. 라디오에서는 김호중의 우산이 없어요가 흘러나온다.
"비가 와요. 비가 와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지인은 동료들과 술 한잔 걸쳤으리라. 술 한잔 걸친 핑계로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한 거다. 후훗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술자리에서 선배들과 얘기를 하다가 "내가 형 좋아하는 거 알지?" 하며 선배의 두 손을 꼭 잡았던 기억이 난다.
남자에게 그런 고백은 한 번쯤 경험했을 수 있다. 마음 한구석에 좋은 사람으로 각인되어 따르는 선배가 있다. 그 선배에게 맨 정신으론 쑥스러워 말 못 하다 술의 힘을 빌리는 거다. 그러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진실하게 대한다.
난 형이나 누나가 없다. 간혹 누군가에게 마음을 의지하고픈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장남이고 가장이라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난 행복하다.
가족에게 의지하는 마음과 결이 다른 것이다. 뭐라고 명료하게 설명치 못하는 마음이다. 전화를 준 지인은 현재 마음이 제자리에 앉지 못하는 나비 신세일 것이다. 남자는 어쩌다 그럴 때가 있다. 진짜 외로워서 외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마음인지 잘 몰라서 그냥 외롭다고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가 왜 그런 전화를 했을까 부끄러워질 수 있다. 들은 나도 언제 그런 전화를 받았느냐고 딴청을 피워줘야 지인은 거뜬해질 것이다. 그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