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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Nov 26. 2018

천문학과가 궁금한 당신에게: 프롤로그

낭만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대학원생이라고 신분을 밝히면 (지금은 아니지만), 무슨 공부를 하고 있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천문학이요'라고 말하면 모두들 놀라워한다. '천문학이요? 너무 멋있어요, 대단해요!'. 고등학교 동창은 '너는 아직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편지를 생일 때 전해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을 낭만이 넘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물리학에 낭만을 끼얹은 느낌?'이라는 말도 들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차에 망원경과 캠핑 도구들을 싣고 교외로 떠나 별을 볼 것만 같지만, 나는 대학이라는 건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망원경으로 별을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다 (천체관측 동아리를 하는 친구들은 나보다는 많이 봤을 거다). 밤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것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지도 않다. 요즘엔 별자리 어플이 참 잘 되어 있어서, 우리도 별자리 어플로 확인한다. 특히나 나처럼 관측이 아닌, 시뮬레이션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나 별 볼 일이 없다.


영화 <컨택트> 중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대학(원) 생들이 콘택트나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등 여러 우주 영화들을 보고 입학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고등학생 때 콘택트를 보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천문학자가 조디 포스터 마냥 저렇게 멋있는 자태로 우주에서 온 시그널을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시그널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거다), 꿈 깨시라! 천문학자들은 궂은 날씨로 인해 관측을 못하고, 천문대에서 풍경 사진만 (운치 있는 구름 사진) 찍다 돌아오기도 하며, 힘들게 관측해서 얻은 데이터가 저장된 노트북을 공항에서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도둑맞기도 하며 (만약 백업하지 않았다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털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보름 이상 돌린 시뮬레이션 결과를 교수님께 보여드리기 전, 잘못 돌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덜 혼날 수 있는 변명 거리만 생각하고 있으며, 매 회의마다 제대로 한 것이 맞냐는 교수님의 의심과 싸워야 하며, 밤하늘에 뜬 저 별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가 대답하지 못해서 천문학과에서 도대체 뭘 배우고 있냐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도 요새는 별자리 운세를 봐달라는 사람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과 대학원에 와서 괴롭고 슬픈 일만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가족들보다 더 오래 보는 연구실 동료들 사이에는 어느덧 '전우애'가 피어나고, 가끔은 연구실에서 작은 파티(술판?)가 벌어지기도 한다. 연구실 생활 역시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나름의 사회생활을 겪으며 배우는 것들도 많다. 또, 몇 날 며칠 (또는 몇 주, 몇 달)을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학회 발표 후 다른 연구자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을 때, 변비 같던 논문이 드디어 출판되었을 때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해외 학회에 참여하며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을 방문할 수도 있고, 논문에서만 보단 저자들을 실제로 만나 대화도 할 수 있다.

대학원생의 삶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딱히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특히나 천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착하고(?) 연구 이외의 것엔 소극적인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후배에게 얘기하듯 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참고로 나는 더 이상 대학원생이 아니며, 그렇다고 박사도 아니고 석사도 아닌, '석박사 통합과정'을 5년 간 밟다 수료 딱지만 붙이고 나온 사람이다. 뭐, 남들이 요즘 유행하는 '퇴사'를 할 때, 나는 퇴원을 한 셈이다. 지난 5년의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앞으로 몇 년만 더 있으면 박사가 될 수 있었겠지만, 조금 더 늦기 전에 다른 길도 한 번 가보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덕분에 조금 더 마음 편하게, 그리고 더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관계자분이 이 글을 읽고 학회에 소문을 내진 않겠지... 그렇다면 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대학과 대학원은 학교마다 그리고 연구실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내가 겪었던 삶을 산다고 할 순 없다. 그러니 참고용으로만 받아들이길 바란다. 부디 이 시리즈가 꾸준하기를 바라며, 천문학이나 우주를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문학과라는 곳이 궁금해 이 글을 클릭한 당신에게도.



덧. 참고로 이 글은 네이버 포스트에서도 연재되었다. 글을 좀 더 각색하여 천문학과와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신랄하게) 다룰 예정이다.

https://post.naver.com/my/series/detail.nhn?seriesNo=419082&memberNo=28197961&prevVolumeNo=1255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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