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학수고대했던 토요일이다.
어제 밤에는 중국집에서 저녁을 시켜먹고 8시반부터 잠들었다.
남편은 월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3시 퇴근이라, 회사로 데리러와줬다.
이번주 내내 버스타고 출퇴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고 짜증났던터라 금요일 하루여도 집에 편안히 오게 되어 너무 좋았다.
날씨가 후덥지근하거나 비가 오거나 습하거나 흐리거나 중 하나다.
오늘도 일어나보니 맑은 날씨가 아닌 것 같다.
유일하게 사용하는 커뮤니티 앱에는 러브버그에 대한 고충 글이 많이 올라온다.
목요일에는 약 5개월간 대화를 일절 금하던 엄마랑 다시 연락을 했다.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잘은 기억이 안난다. 내 남편의 이직 소식, 내 올에이쁠 소식, 회사와 학교 소식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다. 기억이 안나는 이유는 그날따라 지쳐서 집에 오는길에 12900원에 3캔들이 오리온 맥주와 레몬 사와를 사왔고, 남편은 남편대로 내가 술먹고 싶다고 하는 말에 내가 좋아하는 기린 파란 맥주를 4캔사온 것이다.
나는 요리하면서(정확히는 밀키트 조리) 이미 맥주와 사와를 한캔씩 비웠고, 당연히 그 이후로도 쭉 먹었던터라 9시 경에는 술에 취해 맥도날드 신메뉴를 시켰을 정도니 기억이 안날만하다.
냉장고 한 가득 채워졌던 맥주는 그날 밤에 온데간데 다 사라져버렸다.
다음날 아침인 금요일에 나는 무슨 정신으로 출근을 했던건가 싶다.
그래도 꾸역꾸역 출근을 했고 운동을 했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고 일을 했고 또 하는 척을 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버텨낸 것이다.
오늘은 6시반에 눈을 떴고 맥모닝을 먹을까하다가 목, 금 내내 배달을 시켰던터라 남편이 만든 아침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배가 많이 고픈줄알았는데 소세지 한 개를 먹고나니 금방 배불렀다.
매주 토요일마다 8시반에는 먼길을 출발했던 부부가 집에 그대로 짱박혀 있으니 강아지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우리가 나가고 나면 못잤던 잠을 자는 모양인데, 지금은 우리 둘다 집에서 부산을 떨어대고 있으니 잠을 못자고 있다.
이번주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권태', '할 것 없음', '기다림'과의 싸움이 지속되는 나날이었다.
회사가 점점 더 싫어졌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학교 생활에 골몰하는 동안은 회사에 집착하지 않았으나 방학이 된 이 시점부터는 회사 외에 생각할게 없던 것이다.
게다가 모든 과목 점수는 월요일인가부터 다 떠서 조회가 됐는데, 1과목만 목요일까지 안나오고 있어서 새로고침을 도대체 몇 번을 한건가 싶다.
그렇게 고대해서 마주한 주말 아침인데, 특별할 건 없다.
남편은 그동안 미뤄둔 자격증 실기 공부를 이제야 시작했다.
어찌저찌 필기에서 딱 1 문제를 더 맞추어서 합격을 한 남편. 신기하다.
커피는 결국 스타벅스 배달로 해결했다.
저가 브랜드는 가서 사마시는 것보다 1000원에서 1500원 정도 비싸게 팔아서 차라리 원가 그대로 받는 스벅에서 주문을 했다.
아메리카노와 내 트렌타 콜드브루 나눠준 컵 두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공부하는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남편은 나로 인해 항상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빡빡 머리같이 잘라둔 머리를 하고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둔 모양새가 꼭 고등학생 같다.
오늘이야 아마도 어찌저찌 쉬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것 같다.
워낙 이번주 내내 이날만 기다리기도 했고 나도 한 학기 끝나고 처음으로 온전히 쉬는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다음주부터는 몸이 근질거릴 것이다.
트렌타 콜드브루는 커피 맛이 좋으나 너무 강한 맛이어서 물을 좀 탔다.
예전 회사 다닐땐 스벅 콜드브루를 참 자주 마셨던 기억이다.
그땐 항상 같은 팀 누군가가 사줬었는데.
이번주는 할일이 없어서 그런건지 평소와 달리 과거의 인물에 대한 회상이 잦았다.
참 쓸데없는 짓이다.
그것 또한 내가 이 방학이란 것에 익숙해질때면 또 잠잠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