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는 딱히 없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한 결심이 흔들려서도 아니고,
내가 마음이 변심한 것도 아니고, 코로나 때문도 아니다.
갑작스럽게 직장에서의 업무 분장이 변경됨에 따라 하루 왠종일 일을 해도 도무지 일이 줄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된지 4-5주가 된 듯 하다.
3-4월은 재택근무로 어영부영 보내다가 갑자기 팀의 대리하나가 퇴사를 하면서 된 업무조정이었다.
하는 일이 없어 스트레스 받던 시기가 끝났고 이제는 그 반대의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왼쪽 눈이 계속 충혈 되기 시작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목부터 어깨까지 스트레스로 꽁꽁 뭉쳐있어서 목을 좌우로 돌리기도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내가 야근을 10, 11시까지 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성향 자체가 매우 예민하고 완벽주의적 기질이 있어서 생각한대로 일이 안 되어 가는 시점부터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4살, 정확히 말하면 인턴 생활을 할 무렵부터 지금껏 항상 이래왔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런 것이다.
이번주도 고난의 한 주였다. 그 마무리를 금요일에 술로 끝냈고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과음은 하지 않았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독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를 12시 반에 만나서 웨딩홀에 가서 식 일자 변경을 하기로 했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겨우 겨우 12시 50분 즈음 밖에 나가서 2시에 웨딩홀에서 식 일자를 7월에서 12월 20일로 변경했다.
애꿎은 위약금만 지불하게 된 남자친구지만, 일자 변경하러 같이 와줘서 고맙다는 말만 하더라.
끝나고서 갈비를 먹으러 갔다. 사귀는 동안 한 번도 갈비는 먹으러 온 일이 없었고 남자친구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먹으러 가보자 싶었다.
그리고선 신혼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둘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집에 오니 10시.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로 결국 식 일자를 변경했다.
그 즈음 되면 내가 직장에서 좀 더 자리를 잡고 있을 거라는 믿음과 희망이 가장 큰 이유다.
나는 더 이상 무모하게 회사를 퇴사하고 더 좋은 데를 들어가길 갈망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회사에서 뿌리를 잘 내리는게 가장 큰 급선무다.
결혼도 중요하고 남자친구도 중요하지만, 남자친구랑 같이 갔던 점집 할머니 말씀이 맞더라.
나는 이번 해 내내 이렇게 불안해하고 오락가락해 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직은 직장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견뎌야 하는 과정이고 해내야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과정이 끝나고 결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