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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Dec 10. 2020

라퐁텐 우화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절한 연령대를 규정할 때 내용보다는 장르나 카테고리로 단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애니메이션이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이 특히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및 만화를 단순히 만화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어린이용으로 구분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우화, 설화 등은 교훈을 주기 위한 용도로 많이 인용되서인지 역시 어린이용 문학으로 쉽게 분류가 된다. 나도 어렸을 때 탈무드, 이솝 우화 등을 읽으며 자랐다. 그렇다면 라퐁텐 우화는 어느 범주에 속할까?

라퐁텐 우화에는 단순한 도덕심, 권선징악, 교훈보다는 뭔가 좀 더 현실적이고 허무하면서 날카로운 결말이 들어있을 때가 많다. 어른이 읽으면서도 섬찟할 때가 있고 어린아이들이 이 내용을 과연 이해할까 의문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접한 라퐁텐 우화는 온라인에서 우연히 읽게 된 전갈과 개구리였다.


<전갈과 개구리>
헤엄을 못 치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개구리가 전갈에게 말했습니다.

"안 돼. 널 믿을 수가 없어. 네가 날 해칠 거 같아."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내가 널 해치면 우리 둘 다 물에 빠져서 죽게 될 텐데 그럴 리가 있겠니? 날 믿어봐."

전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 한가운데 다다랐을 때 전갈은 갑자기 독침으로 개구리를 쏘았습니다. 심한 통증을 느낀 개구리는 전갈을 원망하며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이제 우리 둘 다 죽게 됐잖아."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전갈이 말했습니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게 내 본성이야."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굉장했다. 노력하고 반성하고 지혜를 얻으면 누구든지 변화할 수 있고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교훈과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우화"라는 틀 속에서 발견하다니. 나이 먹을수록 여기저기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사람 절대 안 변한다"는 말이 우화의 메인 테마라니.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낀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애매했다. 이 이야기를 어린이들은 이해할까? 이해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뭘 배우게 될까? 남을 돕지 말라고 해야 하나? 믿지 말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다른 교훈적인 이야기들처럼 친구끼리 서로 돕고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과연 옳은 교육일까? 무엇보다도 그런 교육이 험한 세상에서 안전하기는 할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들들의 장난감과 책은 지인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많아 가끔 나도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뜨일 때가 있다. 라퐁텐 우화도 물려받은 동화책 세트 속에서 발견했는데 예전에 읽었던 전갈과 개구리가 생각나서 호기심에 한번 읽어보았다.

이 책에는 전갈과 개구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린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문장이나 단어들이 단순했고 어떤 이야기들은 라퐁텐이 정말 그렇게 쓴 것인지 엮은 이의 문장력 탓인지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라퐁텐스러운 내용들은 여전했는데 특히 깜짝 놀란 이야기는 올빼미와 독수리였다.

같은 숲 속에 사는 올빼미와 독수리는 서로 원수지간이어서 먹이와 영역을 놓고 싸움이 잦았다. 어느 날 이 둘은 화해하기로 하고 한 가지 조건을 세우는데 사냥을 하더라도 서로의 새끼는 잡아먹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약속은 했지만 서로의 새끼를 어떻게 알아보고 잡아먹지 않을 것인지가 문제였다. 올빼미는 독수리에게 자신의 새끼들은 아주 예쁘고 잘생기고 깨끗하다고 설명하며 이 점만 기억하면 분명 올빼미의 새끼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독수리는 허름한 둥지에 있는 못생기고 지저분한 올빼미 새끼들을 발견하고 절대 올빼미의 새끼들은 아닐 거라 생각하며 잡아먹어 버리고 말았다. 분노와 슬픔에 찬 올빼미가 통곡하며 배신자 독수리에게 큰 벌을 내려달라고 신에게 기도하자 신이 대답한다. 네 새끼를 죽인 것은 독수리가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라고.



한숨이 나왔다. 전갈과 개구리를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지도 싫지도 않고 그저 묘했다. 살아있다면 라퐁텐이라는 사람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재미있으면서도 염세적인, 아주 흥미로운 사람일 것 같다.

부모 노릇도 어렵고 상식적이면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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