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크루 화요갑분 (모든 곤충)
이십 대에 유난히 산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지리산을 무척 좋아했다.
여름휴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해외여행 준비를 할 때 나는 지리산 코스를 확인하고 숙소 예약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슬쩍 묻는다. 산이 그렇게 좋아? 아니 지리산이 그렇게 좋아?
그런 물음엔 그냥 '씩' 웃어주면 그걸로 대답이 되었다. 달리 뭐라고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의식 저편에서 스스로 행동했고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었다.
지리산은 나의 이십 대의 여름과 가을을 몽땅 추억하고 있다.
지금처럼 등산 장비가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배낭 하나에 운동화만 잘 챙겨 신었다면 언제든지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짧은 바지에 민소매 셔츠를 입었지만, 신발만큼은 당시 등산화로 유명했던 K2 두어 컬례를 사두었던 기억이다.
지리산은 등산코스도 여래 갈래여서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었던 것 같다. 전북 남원 뱀사골은 산이 울창해서 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고, 함양 백무동은 계곡이 많아, 새벽이면 안개가 자욱해서 신선 놀이가 따로 없었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깔딱 고개는 짧은 코스였지만, 가장 힘든 난코스, 숨이 깔딱 넘어갈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유난히 그 깔딱 고개를 좋아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금방이라고 숨을 토해내고 쓰러질 것 같은 헐떡거림, 이미 다리의 감각은 사라지고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쪽 왼쪽 발이 교차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무아지경 산을 오르는 동안 머릿속 산만한 생각들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오르고 또 오르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좋았다. 떨리는 다리의 근육들을 부여잡고 정상을 향해 걷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그 여유와 그 시간이 좋았다.
총 8번 천왕봉 등정을 했다 이십 대의 여름이 고스란히 추억되는 곳이다. 지리산의 날씨는 번덕스러워 천왕봉정상에서 맑은 하늘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지리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잠자리 떼의 행방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잠자리 떼가 나타나면 비가 올 징조라고 기억한다.
지리산을 오르다 보면 종종 잠자리 떼를 마주할 때가 있다. 울창한 숲길을 벗어나 평지가 나올 때쯤 이미 잠자리 떼가 한발 먼저 도착해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마주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날씨가 흐려지기 전, 비가 오기 전에 천왕봉을 향해 속도를 내어야 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잠자리 떼를 마주한 날은 산을 오르다 보면 이슬비가 내리기도 하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때도 있었다. 후드득 몇 방울의 빗방울이 내리고 나면 지리산은 한 폭의 수묵화로 변신한다.
자욱한 안개의 운무,
구름이 바다처럼 밀려오는 운해의 한가운데 세상이 아닌 곳 같은 곳에서 산을 바라본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자연의 신비 그 무엇에 매료되어, 그렇게 지리산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천왕봉은 매번 다른 얼굴과 다른 모습으로 나를 품어줬고, 그 길목에 이름 모를 꽃과 나무와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잠자리 떼 추억이 가득하다.
지리산 운해를 다시금 마주하고 싶다. 유유히 하늘을 날던 잠자리 떼를 다시금 만나고 싶다.
한 줄 요약 : 문득 생각나는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게 하는 요소들, 추억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오늘도 감사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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