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으면서 생일은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는 식상하고 의미 없는 날이 되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도 어색해진 어른의 나이 딱히 갖고 싶은 선물도 없는 그저 일상 중 하루인 생일.
내 생일은 외할머니 제사 다음 날 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따로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미역국 대신 북엇국을 먹었고 케잌 대신 시루떡을 먹었었다. 전날 제사를 지내고 남은 전, 갈비, 잡채 각종 나물 반찬에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거한 생일상이었다. 단지 생일상 주인공이 따로 없었을 뿐, 시골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나면 아침부터 마을 이장 목소리가 온 동네로 울려 퍼진다.
"동네 분들 어제저녁 개똥이네 제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음식 대접을 하고자 하오니 마을 어르신들은 개똥이네 집에 가셔서 아침 식사를 함께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침부터 집은 북적북적 마을 어르신들이 상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끌벅적 북새통을 이루었다.
셋째아들 며느리인 엄마가 내 생일을 챙길 수 있는 경황도 상황도 아니었을 거라는걸, 할머니 돌아가실 때 엄마는 만삭에 나를 품고 있었다는 걸, 출산 후 몸조리도 제대로 못 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산후풍까지 앓고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저 케잌하나 없는 아침상이 원망스럽더니 지금은 그 시절 무거운 몸으로 할머니 장례까지 치러야 했던 엄마의 고단한 하루가 안쓰러울 뿐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하더니 반찬 투정하는 아들. (욘석 엄니 미역국 한 그릇 끓여주고 반찬 투정을 해라) 뭐가 못마땅한지 아침부터 뿌루퉁한 딸. 나의 섭섭한 마음은 욕심이 낳은 감정이려니, 뿌루퉁한 딸과의 대화가 유쾌하지 않은 아침. 이런 날 남편의 전화 한 통이 기다려지지만, 전화기마저 침묵 중이다.
대반전,
글쓰기 글벗이 글쓰기 대화방에 생일 축하 멘트를 남겼다. 그 후로 다들 축하 인사 물결이다. 낯설고 부끄럽고 몸이 요리조리 꼬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모처럼 느껴보는 묘한 기쁨이랄까, 내가 태어난 날 누군가의 축복이 두 손 모아 눌러 담을 만큼 쌓이고 쌓여 갔다. 새벽 수영 후 돌아오는 길목에서 깊은 바닷속 심해까지 파고드는 기분을 들어 올리려 '잘될 거야' '행복하다' '오늘 너는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수 없이 되뇌며 돌아왔다.
마법처럼 오늘은 그런 생일이 되었다.
나를 울린 글귀
좋은 말 듣고 자란 꽃은 더 예쁘게 핀다고 하더니 저는 이분의 응원으로 사람답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 아래 기쁨을 주는 바스락 소리처럼 아름다운 작가님 생일 축하드려요! ♡(내 마음)
글을 보는 내 마음이 예쁘게 웃고 있었다.
답신 : 작가님 덕분에 예쁘게 고아지고 있나 봅니다. 움츠리던 마음에 아침 햇살 같은 미소로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 마음)
좋은 글귀와 축하 메시지, 하루 동안 쑥스럽게 톡방을 바스락으로 물들였다. 어디 가서 이런 찐한 축하와 관심을 받을 수 있겠는가, 글을 쓰고 삶이 조금씩 변하더니 행복의 날도 많아지고 있다. 라라크루 글 벗님들 감사해요! 태어나 이런 격한 축하는 처음입니다. 한분 한분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오래오래 작가님들 곁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 봅니다.
오래전 퇴사한 후배가 퇴근길에 찾아왔다. 수척하게 살이 빠진 모습으로 예전과 다른 분위기의 후배.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생일 축하를 건넨다. 그 마음이 고마워 또 행복하다. 오늘은 잠들기 전까지 마법처럼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글을 쓰면서 나의 행복과 행운은 시나브로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