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벨리에서 느끼는 기회와 사람
최근 학교에서 만난 B형님이 다니시는 스타트업 P에서 만든 모 IoT컨퍼런스의 booth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일과 숙제 등으로 엄청나게 늦게 참여를 했는데 마침 정리중이셔서 도와드리며 간단히 제품도 볼 겸 서니베일에 위치한 사무실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공동 창업자 두분과, 도합 다섯 명 정도의 직원이 커다란 테이블 하나를 두고 둘러앉아서 일하는 모습이, 아 여기가 실리콘벨리의 동력이 발생하는 공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10년 전 내가 가산동에서 창업했을 당시의 그것과도 많이 비슷했다. 간이벽으로 방을 만들고, 나름 내부에는 탁구대도 있는 등. 예전에 우리 회사에도 내가 탁구대와 헬스기구, TV 쇼파 등을 들여놨었는데. 정말 추억이구나. 비슷한 환경과 열정 속에서, 하지만 이곳에서는 인력과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 비용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크게 느끼고는, 스타트업과 사람에 대해서 보다 더 깊게 생각한다.
이곳(실리콘벨리)에 있다보니 사람 하나를 뽑는 자체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아직 유라임을 법인 전환을 하지 않아 회사로서의 면목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내가 딱히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연봉도 도저히 여기 평균 임금은 못맞춰 줄 것 같고, 내가 줄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크게 와닫는 것이 없다. 예전에 창업했을 당시에는, 세상에 없는 게임을 만든답시고 면접 자리에서 기획서를 문득 내밀었을 때 우리 아이템이 마음에 든다며 합류한 (그리고 끝까지 갔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뭐랄까, 스무살의 아주 어리고도 어렸던 나는 그저 열정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뽑았을 뿐이다. 아마 지금 사람을 뽑는다 해도 내가 줄 수 있는건 세상에 없는 멋진 것을 만든다는 것 하나가 아닐까.
그 후 10년이 지났다. 미국에 왔는데 아직 영어도 부족하고, 네트워크도 부족하다. 학교를 다니지만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고군분투하지, 별다른 혜택없이는 스타트업을 보지는 않는다. 이곳에 있다보니 대기업들은 언제나 채용의 길이 열려있고, 굳이 대기업을 가지 않더라도 워낙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모든 부분이 하나같이 비즈니스로 열려있다. 즉 일자리가 많다. 그리고 전 세계의 IT기업들이 이곳에 몰려있다 보니, 그저 내가 관심있고 즐거울 수 있는 곳에 체류문제만 해결된다면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여기 Docker Inc.,도 있고, 플레이를 개발한 Lightbend도 있고 Slack도 있고.. 샌프란에는 스타트업이 몰려있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주로 인프라나네트워크, 데이터, 엔지니어링 쪽에 초점을 준 스타트업이 즐비하다. 나도 워낙에 가고싶은 회사가 많다 보니 가끔은 그곳에서 하는 일이 부럽고, 언젠간 참여하고 싶은 생각도 크다.
하지만 일단 스타트업을 시작했으니,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이곳에서는 창업자던 인턴이던 무조건 개발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규모가 되지 않는 한, 다들 바쁘다. 서론에 언급한 P회사의 경우도 두 분의 창업자 분들도 개발을 하시고, 꽤나 잘하시는 편이다. 심지어 영업직도 개발을 한다. 아니, 개발자가 영업을 해야한다는 게 맞을까. 사람 한 명 뽑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투자를 받아도 대부분 사무실 임대료나 인건비로 나가게 되는데, 만약 샌프란 같은데서 사업을 한다면 리스크는 정말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 불보듯 뻔하다.
작년에 비행기 안에서 봤던, 폴그레이엄의 스탠포드 강의를 보면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성공을 위한 길은 분명한데 그걸 회피하고 일종의 ‘스타트업 소꿉놀이’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젊은 창업자들 중 일부는 ‘스타트업 창업 과정의 겉동작’만 따라 하고 끝나버리죠.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후 좋은 벨류에이션에서 투자를 받고, 샌프란시스코 중심지에 근사한 사무실을 구한 후 친구들을 대거 고용하지요. 그 다음 단계는… (웃음) 서서히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X됐는지를. 왜냐하면 스타트업의 온갖 겉모양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가장 필수적인 한 가지,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을 등한시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죠.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투자받고 샌프란에 사무실 구하고 직원 뽑고 결국 망조에 이른다. 요즘에 뭐 WeWork나 HackerDojo같은 co-work 플레이스가 많아졌다고 한들 어쨌든간에 회사답게 뭔가를 한다는 자체는 리스크가 너무나도 크다. 샌프란에서 '사는' 비용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최근 일년간 나는 샌프란에 사는 그 '비용'을 생각하고는 도시에 살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져버렸다.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토니스타크가 정말 천재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만든다. 하물며 아이언맨의 참조가 되었던 테슬라 창업자인 Elon Musk도 생각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게 가능한 것은 그가 프로그래밍에 대해 이해를 하니깐. 10살때부터 베이직 등을 시작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았던가.
물론 사람이 정말로 중요하다. Elon Musk가 테슬라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수 많은 핵심 엔지니어를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합류하여 멋진 전기차를 생산했다. 하지만 최소한, 제품이 만들어 지는 데 까지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은 맞다. 우리가 굳이 정말 화려한 아이언맨이 될 필요는 없을 지언정,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코드를 이해하고 일단 시작에 앞서 어느정도는 된다/안된다 를 판가름 할 정도는 되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면, 즉, 사람이 정말로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열번 백번 고민하고 뽑으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생각은 순전히 필자의 '생각', 아니 '전략'일 뿐이다. 분명 모든 사람들이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만약 재력이나 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면 타인을 통해 구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금력도, 말도(영어) 잘 안된다. 그래서 오로지 내 실력만 키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일단은 내가 열사람의 몫을 하자는 전략.
앞에서 언급했지만 필자는 10년 전 사업을 한번 경험해 보았다. 당시에는 스무 명 넘는 사람을 고용했다. 게임개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그래픽 리소스가 절실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렇다 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데모 조차도 나오지 못했으니, 그럼 함께했던 1년간 무엇을 했던가, 돌이켜 봤을 때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오류 때문에 일이 거의 진척이 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이는 것도 하나 둘 큰 충돌에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그래픽도 모르고, 하물며 3D 게임 프로그래밍은 지식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회의를 중재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다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내게 큰 상처가 된 것은 사람이었다. 그저 정직하게, 사람을 믿고 나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틀렸으니깐 말이다.
그 뒤로는 SI와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내 실력만 키울 생각을 했다.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실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배우고 싶었고, 계속해서 자극을 받고 싶었다. 조금 뭐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살다보니 소위 Nerd, Geek가 되어버린 것도 크다. 석사로 공부를 연장하니 논문 읽는 법과 학회도 익숙하게 되어 많은 석학들의 생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세상에는 배움의 길이 끝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되새김을 하고 짬을 내어 논문을 읽곤 한다.
그래서 유라임을 만드는 데에는 거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기술적인 조언은 받았지만, 일단 나도 이 정도의 어느정도 규모 있는 내 생각을 실현해보는 데이 있어, 내가 과연 가능한가? 를 평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4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는 생각은 무려 1년이나 걸리게 되었고, MVP에 집중한답시고 많은 핵심기능을 잘라낼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부족해도 내가 생각한 그것이 어쨌든 나오긴 했다. 그래서 살짝, 나 혼자 개발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개발을 했다 해도 사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엄청나게 많은 자동화를 가져다 쓰니 QA나 CI CD, 모니터링, LB등등 많은 부분에서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연 사업을 하는 데에 개발이 전부인가? 라는 생각을 했을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라임 시제품을 처음 만들고, 몇몇 주변의 친구와 와이프에게 소개해주고 나서도 버그가 한 10개정도 발견되었다. 거기다 어떤 부분에서 불편하다는 소리와 함께, 이게 대체 무엇하는 서비스인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한두번 들은 것이 아니다.
피드백과 더불어, 앞으로의 사업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미국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미국 사회에 정통한 것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나 스스로가 이곳 사람이 되어서 생각을 해보려고 수십번을 노력해도 하루가 다르게 내가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영어도 그렇고 해서, 그래서 최근에는 co-founder의 존재가 그렇게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서론에서 언급한 P회사에 방문했을 때, 그곳 대표님을 나를 보시자마자 시연을 보자고 하셨다. 정말 대뜸 하신 말씀에 너무 당황을 하였다. 한글이면 몰라도, 그곳에 백인, 인도인 등의 개발자들 앞에서 영어로 시연을 하다니, 대본은 커녕 영어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다행히 최근에 Batch지원을 위해 랜딩페이지와 제품 소개자료, 데모동영상 등을 만들어 둔 것을 통해 마침 가방에 있던 맥북으로 무사히 시연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제품 핵심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빅데이터 프로세싱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에 대한 매서운 질문을 받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이디어와 UI/UX가 너무 좋다는 긍정적 피드백도 받았다. 솔직히 나로써는 엄청난 것을 얻고 간 셈이다.
사실 다음달에 이곳 Plug&Play에서 진행하는Pitch에 초대받아서 안그래도 준비를 해야하는 판국에 좋은 경험이 된 것은 맞지만 이렇게 뜬금없는 자리에서 내 제품에 대해 소개할 기회가 생기니, 개인적으로는 정말 이러다 지나가다가도 내 제품에 관심을 보이면 즉석해서 소개할 수 있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마전에 랜딩페이지를 완성하고 angel.co나 크런치베이스 등에 올려두니 약 5군데의 VC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pitch에 초대받기도 했다. 정말 앞으로 그런 곳에서 발표를 하며 얼마나 많은 피드백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 내가 사람이 필요한 이유가, 내가 볼 수 없는 그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서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면 기회가 찾아온다라는 것 만큼 이곳에서 정직하게 통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지난 5년간 나는 유라임이 나 스스로 왜 필요한지, 나와 같은 자기관리에 대헤 철저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이것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구체화 하고 이를 만들기 위한 실력을 정비해 나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기회가 생긴 것을 틈타 그저 묵묵히 만들고 있을 뿐이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회들이 점차 찾아오는 것 같다.
예술가는 모두가 보는 그 똑같은 시각 속에 배치와 컬러, 질감과 느낌 등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 영감을 표출한다.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자체가 예술적 행위라고 본다. 지금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그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하지만 우리들이 갖게 되면 한 차원 더 깊은 보편적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그런 것에 대한 사명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보편적 삶을 만든다는 가치를 공유하는, 그런 사람들이 언젠가는 내가 만든 로켓에 합류할 수 있는 생각을 오늘도 하게되는 것 같다.